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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May 15. 2023

마음의 문은 잠그지 말길

사춘기. 그분이 오시는 걸까

11살. 초4 남자아이. 키 145센치. 몸무게 37킬로


사회에 통용되는 수치로 내 아이를 소개하자면 이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밖에 없듯

아이라는 우주는 생각보다 광활하고 시시때때로 다르며 변화 무쌍한 존재다.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마음을 수치로 표현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 사회성, 공감능력.. 사랑까지. 이런 감정들이 수치로 객관화된다면, 조금은 덜 조바심을 내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가는 아이의 속도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보다 혼자있는 것이 더 좋은 아이.

주말이니 안방에서 다 같이 자게 해주겠노라며 생색 낸 제안을 거절하며, 혼자 자는 것을 택하는 아이.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가장 편안해보이는 아이.

사진 올린거 알면. 난리일텐데..;;개인정보와 초상권 보호에 진심인 첫째와 그저 해맑은 둘째.


그런 아이와 며칠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갈등의 시초는 얼마 전 생일을 맞아 바꿔준 핸드폰.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통에 아이와 나 사이의 갈등의 불씨가 계속해서 지펴졌다. 불씨가 꺼졌다 싶다가도 한번 갈등이 생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큰 불로도 이어지곤 했다. 키즈폰 제어 어플은 왜 그리도 허술한건지. 설정을 해놔도 한참동안 바뀌지 않곤 해서 더 큰 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핸드폰 사용 문제로 옥신각신 하다가 삐지거나 화 나거나하면 갑자기 자기 방으로 돌진해서 문을 잠그곤 하는 아이 때문에 나는 말그대로 불타오를 지경이었다. 아이도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난 불을 끄고 싶었나본데, 그렇다고 문을 잠궈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 화가 날때마다 그렇게 마음의 불을 끌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와 단단히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어르고 달래고 혼내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들며 겨우 문을 열게 한 다음 이야기를 나누고 문 잠그는 버릇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있을 거라고 통보했다. 무려 핸드폰 일주일 압수!!! 막상 그 상황이 오면 엄청나게 반항할 아이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져,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만. 일단은 단단히 고지를 했으니 당분간은 아이도 조심하리.


아이와 실랑이를 마치고, 검색창에 "문 잠그는 아이"를 쳐본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사춘기'의 길목에 있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부모님들이 많았다. 문고리를 빼버렸다, 문짝을 떼어버리고 커튼을 해줬다 등등 나보다 더 쎈 캐인 부모님들의 글을 읽을때면 나도 모르게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ㅎㅎ

이게 시작일텐데.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아이가 그럴 때구나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월령별 발달 과업들이 지연 되고 있진 않은지 하는 걱정이 막연히 있었다. 제때 뒤집는지, 제때 기어다니는지, 제때 젖을 뗐는지, 제때 말을 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아이 앞에 남은 발달 과업이 바로 그 '사춘기'인가보다. 언제나 그랬듯, 그 과업을 해내고 다음단계로 가는 아이 옆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몸과 마음의 밥을 조금 더 챙겨줄 뿐.

 



"문 열어! 빨리 안열어!"


하며 집안이 화염에 휩싸였다 겨우 진압되는 상황을 다 지켜본 둘째를 재우는 시간.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있잖아 진우야. 형아가 나빠서 그런게 아니야. 형아는 지금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크려다보니까 힘들어서 그런거야. 그러니까 너무 형아를 미워하지마. 진우가 엄마랑 형아 때문에 많이 기다려줘서 미안하고 고마워.


엄마 괜찮아. 근데 있잖아. 나는 그렇게 안 클게. 나는 사춘기라도 안그럴거야.


하는 둘째의 말에, 울컥했다. 엄마와 형아가 갈등을 겪는걸 보면서, 엄마를 또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살피다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좋아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 엄마가 좋아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마음을 풀어주려 애쓰는 아이가 고마웠지만 동시에 짠하고 미안했다.


왜. 육아는 11년차인데도 여전히 미로를 헤매는 느낌일까.

어느 순간, 조금 쉬운 미로가 나왔다 싶으면 캄캄한 먹구름이 머리위를 지나고 답답한 안개가 눈앞을 가로막는 걸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 역시 내 인생이라는 미로를 이렇게 탐험하는 것이 맞나 싶은데 말이다.

이제 곧, 아이가 스스로 미로를 헤치고 나갈 수 있게 손을 놓아야 될테다. 아이가 그 미로를 스스로 헤매이고 그러다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왜 잘 안될까.


아들아,

문은 잠그지 말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잠시 방에서 쉬다 나오렴.

언제든 다시 이야기 나누자.

너와 나는 남북관계가 아니란다. 엄마도 제재했다 해제했다 하는 이런 관계가 지칠 때가 많아.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더 찾아보자.

부디 엄마가 문고리를 뜯어내는 일이 없도록. 네가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는 일이 없도록. 엄마도 너도 노력하자.

그리고 사춘기 너!! 우리 아이도, 나도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잠깐 왔다가 빨리 지나가길 바래. 훠이훠이~~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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