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영어사전
도서관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한다. 별난 사람, 민폐인 사람, 신비로운 사람 등. 그중에서 유독 이 사람 "뭐야~"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내 시선이 끌린 것은 두꺼운 영어사전 때문이다. 그는 몸이 왜소하며 혈기가 없어 툭 받치면 쓰러질 듯한 30대쯤 돼 보이는 남자이다. 평일인데 출근하는 곳이 도서관이라면 나와 같은 처지인가? 자격증 공부, 아니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프린트해 온 몇 장의 A4용지와 두꺼운 영어사전이 있다. 이 시대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종이 사전이다. 사전은 적당하게 닳아 끝부분이 말려 올려가 있다. 그는 프린트물을 보고 사전 책을 이리저리 들치고 그리고 쓰기를 반복한다. 그것도 아주 느릿느릿하게.
네이버 입력창에 몇 자만 '탁탁'치면 뜻도 소리도 유사어도 꼼꼼하게 방출하는 편리한 세상에 굳이 종이 사전이라... 궁금하다. 만약 그가 내 친구에의 친구에의 친구였다면 말 한마디 붙여 슬그머니 물어보았을 것이다. "왜 종이사전을 보시는지요.?"라고. 참 다행이다. 내 친구가 없다는 것이.
딱 1년 전에 서울로 이사 오면서 수십 년간 애지중지하던 사전 책 서너 개를 폐지로 버렸다. 중학교 때 구입한 동아사전책부터 미국에서 구입한 3권의 사전 책까지, 학교를 졸업하고는 딱히 볼일도 없었지만 컴퓨터랑 친해지면서 볼일이 없었다. 보관만 해 오던 터라 이사를 핑계로 버렸다. 아직 새것인데 하면서 무심하게 버린 책은 이미 소각처리되었을 것인데 그 남자의 사전을 보니 새삼 아련함이 밀려온다. 특히 귀퉁이가 말려 올려간 사전책은 내 기억도 돌돌 말린 채 같이 버려진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