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가 지나면서 사랑이는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유치원 친구들과 대화도 나누며 많은 정보와 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비행기 타보고 싶어요."
응? 넌 이미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탔는데?
안타깝게도 사랑이의 기억 속에 비행기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이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19개월 아기 때 가족 모두 함께 갔던 대만 여행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부모 품에 안겨, 혹은 유모차를 타고 이리저리 끌려다녔으니 기억이 날 리 없었다.
두 번째는 자기 가족 셋만 일본 후쿠시마에 다녀왔다 만 세 살 때였다. 어렴풋이 엄마 아빠와 놀러 간 기억 정도는 하는 거 같지만 그것이 해외여행이었다는 개념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이는 쑥쑥 자라났다. 자의식도 커져갔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비행기에 대한 환상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사랑이의 유치원 방학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며느리가 내게 부탁을 해왔다.
"어머님, 사랑이 방학 때 같이 해외여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부쩍 노래를 하는데 저흰 그럴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유치원생 손녀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세 명. 가장 어리거나 가장 나이 많거나. 흔하지는 않을 거 같은 조합의 첫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분주하게 여행 사이트를 뒤졌다. 유치원생 아이와 갈만한 곳은 어디일까? 사랑이 기억상으로는 처음 타는 비행기이다. 너무 오래 타면 힘들 테니 선택할 수 있는 후보군은 뻔했다.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 정도.
사랑이가 유난히 냄새에 민감해서 첫 여행지로 낯선 향이 많은 중국이나 태국은 곤란할 거 같았다. 베트남도 좋지만 멀었다. 결국 첫 여행지로 가장 무난한 나라는 일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음은 일본의 어디를 갈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나는 열심히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대며 다른 사람들의 여행후기도 보고 홈쇼핑에서 나오는 여행상품들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여행의 중심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흥미를 가질 곳, 사랑이의 방학 기간일 것, 그러면서 가격대는 적당할 것. 그런 여행지를 두루 찾아보다가 마침내 정했다.
모*투어에서 내놓은 오사카, 나라, 교토를 묶은 3박 5일의 상품이었다. 그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오사카의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이 상품에 들어있어서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시설들이 잘 갖춰진 그곳, 사랑이와 같이 가기에는 가장 맞춤한 여행지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즉시 계약금을 걸었다. 그리고 메일을 보내 아이가 있어서 세 명이 한방에 자고 싶다고 했지만 이인실 기준이라며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한 방에 있는 게 더 재미있을 텐데 어쩔 수없었다. 추가 비용 10만 원을 내고 방은 두 개로 잡았다.
마침내 출발일이 되었다. 사랑이는 설레서 전날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공항 안, 그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 속에 속한 자신을 기뻐했다. 사랑이가 아는 최초의 해외여행이었고 스스로 자의식을 가지고 간절히 원해서 가는 여행이기에 그 기쁨은 매우 큰 거 같았다.
비행기 트랙을 오를 때는 흥분으로 뺨이 발그스름 홍조를 띠었다.
"제가 비행기를 타다니! 저, 정말 기뻐요."
비행기가 출발하자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내 귀에만 대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비행기가 날아요!!!
눈 아래로 솜이불 같은 구름이 펼쳐졌다. 비행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사랑이는 기쁨에 들떠 계속 말했다.
"정말 기뻐요! 너무너무 좋아요!"
사랑이는 일본으로 가는 2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다. 그리고 신발까지 벗고 잠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렸다. 내 상의가 색깔이 많아 힘들었다며 보여주는데 할빠가 입고있던 옷색깔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다. 정말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내 발은 저 정도로 크진 않다. 곰발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냥 남들보다 쪼오끔 클 뿐이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