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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Aug 26. 2024

천등을 날리며

4, 첫 해외여행(대만; 2018년 9월 23~ 26일)

 


다음날 간 곳은 스펀(十分) 역이었다.  스펀역은 원래 석탄 운송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탄광은 문을 닫고 지금은 남아있는 기찻길이 새로운 관광 코스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두 갈래 쭉 뻗은 철로 양쪽에는 일층, 이층, 심지어 삼층 높이로 보이는 상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그 사이로  실제 기차가 다니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당연히 위험하겠지. 열차가 오는데도 우물대다  못 피하면 사고도 나겠지. 

물론 익숙해진 루틴이라 잘들 피하고 있겠지만.


철로길에 사람들은 북적대고 상점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위험을 담보로 한 스릴감을 맛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래전 우리 모두가 가진 적 있던 아련한 추억을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라는 동요도 있을 만큼 우리에게도 기찻길 옆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레트로 감성은  기차만이 바깥세상과의 유일힌 소통통로일 때의 애틋한 시절을 경험해 본 나이 든 사람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이고 젊은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로 이 스펀역을 찾는다.  기차가 지나간 철도 위에서, 그리고 다음 기차가 오기 전에 얼른, 그 사이에 천등을 날리는 독특하고 스릴감 있는 이벤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 개의 면을 가진 천등에 각각 원하는 소원글귀를 써서 하늘로 날리는 건데 색깔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빨강은 건강, 노랑은 금전과 사업번창, 

분홍은 애정과 결혼운, 보라는 학업성취,


우리 가족은 빨간색 등을 선택하여 각각 원하는 글들을 적었다. 글씨를 쓰고 사진도 찍고 천등을 날리고. 그 모든 것들을 1시간 간격으로 오는 다음 기차가 오기 전에 모두 끝내야 한다.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 우리는 모두 환한 미소로 하늘로 우리들의 소원들을 둥둥 날려 보냈다. 천등 덕에 소원이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만 우리 가족들이 모두 같이 모여 여행을 오고 한자리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것만로도 우리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랑이는 제 아빠 목 위에 앉아 천등이 날아가는 걸 보았다. 하늘로 올라가는 수많은 천등은 장관이었다.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하기는 아직 어리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들을 보는 것처럼  천진한 탄성을 지르며 사랑이는 즐거워했다.

 그런데  나는 하늘로 올라가는 천등을 보며 무작정 행복해하기엔  세속과 현실의 때가 너무 묻었나보다. 

눈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저 눈을 어떻게 치우지 라고 생각하던 것처럼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올라갔던 천등이 다시 내려올 때는 쓰레기가 되어 떨어질텐데. 그 많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지?



 단체 관광객들과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아기를 데리고 와서 혹시 다른 여행객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신경 쓰였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 동안 사랑이는 늘 웃거나 자거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여행에도 익숙해졌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면 사랑이는 신발을 찾으며 나름대로는 내릴 준비를 했다. 쉬고 있던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면 곧 내릴 때가 된 거라는 것을 터득 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랑이를 보고 같은 버스에 아기가 타고 있는 줄 처음 알았다는 분도 있었다. 우는 건 고사하고 단 한번 보채는 소리도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는 이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는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스스로 터득한 듯 누구에게나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그러니 귀여움을 받을 수밖에.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두 돌도 안 된 아기가 눈치는 100단이니 걸어 다닐 때쯤엔 어디든 같이 여행할 만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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