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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14. 2024

8, 학대받는아이?

                                                             (수채물감, 48개월)


느리와 함께 제 외가를 다녀온 사랑이가 자랑스레 그림을 내밀었다. 수채 물감을 사용해 그린 그림이었다.  켄트지 자투리 두장이 붙여진 화면 한 중간에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뺨에는 온통 붉은색 계열의 색이 칠해져 있었.  

 색연필로  끼적대던   사랑이가  수채물감이라는 또 다른 그림도구를 사용했다는  그 체로 일단 대견했다. 하지만  사랑이에 대한 사전 지식 전혀 없는 사람이 이 그림을 보면 학대받는  아이의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빨간 물감까지 흘러내려 마치 핏물이라도 흐르는 듯  분위기가 강렬했다. 그 와중에 그림 속의 사랑이 표정은 웃는 얼굴이었다.

그림 심리 치료를 하는 친구가 조언을 해준 적 있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잘 그렸다 못 그렸다 결과를 가하려 들지 말고  왜 그 그림을 그린 건지, 그림을 두고 아이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고 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나는 사랑이에게 물어봤다

"멋지구나. 근데 뭘 그린 거니?"

사랑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아. 이거요. 제가 모기에게 물려서 피나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역씨 학대받는 아이의 그림이 맞네.

학대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모기라서 그렇지.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다  모기를 잘 타긴 한다. 하지만 사랑이는  모기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 정도가 좀 더 심했다. 사랑이는 피부가 매우 희다. 햇볕 접촉을 거의 하지 않던 아기 때는 지나치게 하얗다고  빈혈검사를 받아 보자던 의사도 있었다. 그 흰 피부가 모기에게 물리 벌에게 쏘인 거처럼  빨갛게 부풀어 오른다. 약을 발라주고 밴드까지 붙여줘도 그 부기가 가라앉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오래 가려워했다.  


 나도 모기에게 많이 사랑을 받는다.  내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기에 안 물릴 정도로 나 혼자 집중 공격을 받는다.  모기에게 물린 후 후유증도 심하다. 참을 수 없이 가려운 건  물론이고, 벌겋게 부풀어 오르기 일쑤이다. 그리고 흉터로 남기도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흉터가 사라지는듯하다가  운동이나 힘든 일을 하고 난 뒤거나 몸에 열이 오를 때는  몸 곳곳에서 숨어있던 모기의 흔적들이 되살아나 고개를 내민다. 

사랑이만큼 흰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모기에게 받은 학대의 흔적이  두드러지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내 팔다리에서 나타나는 반점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옴 같은 피부병이라도 있는 줄 알 것이다. 

사랑이는 모기에 물린 후 오랫동안 벌겋게 부어있긴 하지만 나처럼 흉터가 되지는 않는 거 같다. 아직은 피부 재생력이 활발할 나이이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 피부 재생력도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처럼 온몸에 모기 흉터를 남기게 될까 걱정이 된다. 난 이제 포기 상태이지만.


                                                            (수채물감, 52개월)


사랑이의 그림은 한 장 더 있었다. 켄트지 온 장을 다 사용한 그림인데 푸른색 계열을 많이 써서 보기에도 시원했다.

"이 그림도 설명 좀 해줄래?"

사랑이는 왼쪽의 초록 계열 색들을 가리켰다.

"나무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오른쪽 파란색 사선들을 가리켰다.

"옆에서 바람이 부는 거예요."

바람의 아래쪽 갈색은 떨어진 낙엽이라고 했다.  

오, 바람을 그리다니. 

형태도 없는. 

 

 사랑이의 외할머니는 취미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아이가 왔을 때 창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랑이가 물감에 관심을 보이기에 장난이나 치라고 팔레트에 물감을 짜주고  버리려고 둔 켄트지 자투리 두장을 붙여 이젤에 올려 주었다고 했다. 사랑이는 한참 동안 조용히 저만의 예술세계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다 그렸다고 가져온 그림이 모기에게 학대받던 앞의 그림이었다. 

 물감 사용법을 배운 적도 없는 아이의 첫 수채화를 외할머니는 많이 기특해 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이번에는 제대로 그려보라고 켄트지 한 장을 주고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봐. 밖에 나무들이 예쁘지? 저 나무들 그려 볼래?"

"알았어요"

아이는 자신 있게 붓을 잡고 거침없이 슥슥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두 번째의 푸른 나무들과 불어오는 바람, 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었다. 


그림은 아이의 마음을 담아주는 거울같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주위 환경을 보여주는 아이의 작은 세계를 나는 오늘도 조금 엿보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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