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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13. 2024

7, 싸우지 마!

삼대가 모이는 저녁 식탁에는 많은 대화가 오고 간다. 세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니 생각들도 다양해 식사시간이 더 풍성해진다.

아이가 화제의 중심일 때도 많지만 소소한 생활문제부터, 시사, 경제, 역사, 정치. 교육 문제 등등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날의 주제가 달라진다.  각자 다르게 살아온 시대와 환경만큼 견해들도 달라 가끔은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다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시사, 정치, 경제 문제로 들어가면 나와 며느리는 어느새 관객 모드가 되고 아들과 남편의 목소리만 커지게 되는데 의견이 부딪힐 때도 많다. 우리집 식구들은 다혈질에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큰편이다.  

갑자기  사랑이가 빽 소리친다.

"싸우지 마!"

뚝. 말소리가 끊어진다. 시선들이 사랑이에게 집중된다. 사랑이가 눈에 노기를  띠고 씩씩대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모두 깨닫는다. 너무 흥분했었구나.....  

우리는 싸운 게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과장적으로 웃는 얼굴을 짓고 최대한 다정하게 말한다.

"싸우는 거 아니야. 이야기 나누는 거야."

사랑이는 믿지 못하는 거 같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확인한다. 우리들이 지어 보여주는 웃는 얼굴에 사랑이가 안심하면 우리는 다시 토론을 이어간다. 이번에는 목소리를 한 톤 낮추고 조근조근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사랑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토론에 몰입해 또 목소리가 커지고 그러면 사랑이가 다시 열기를 식혀준다.

"싸우지 말라고!"




  아이 앞에선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보고 어른들의 말투 몸짓을 흉내 내며 자라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가족은 세상의 전부이다. 그러니 자기가 의지하는 부모나 가족들이 눈앞에서 싸우는 걸 보면 세상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고 불안과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우린 싸운 게 아니라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다 목소리가 커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싸우는 건지 토론을 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아이에게는 커진 목소리 그 자체가 공포였다.

근데  뭐가 다르지? 나는 갸우뚱했다.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울 때, 그것을 반박할 때,  목소리는 커졌고 흥분했다. 싸운 건 아니었지만  싸운 것과의 경계선을 솔직히 나도 명확하게 줄로 좍 그을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그러니 아이가 싸우지 말라고 소리쳤겠지.

어쨌든 우리들의 식탁은 예기치 않게 불쑥 뛰어들어오는 온갖 종류의 화젯거리들로 늘 풍성하다.



 대화만큼 차려진 음식들도 풍성하다. 연령층이 다르고 식성도 다르니 반찬 종류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식사 준비는 내가 한다.  맞벌이인 아들 부부와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해오는 남편이 집에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저녁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아들은 거의 재택근무 중이어서 점심까지 차려줘야 한다. 대신 설거지는 며느리와 아들이, 가끔은 남편도 하니 일의 분배는 공평한 편이다.

 나이가 들면 부엌일도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요리하는 게 재미있다.  아들 가족과 합가 하면서 생긴 여러 좋은 점들 중에 식구들이 모여 같이 먹는 저녁 식탁에 올릴 신메뉴를 궁리하는 것도 포함시킬 정도이다.

 남편과 둘만 살 때는 음식 준비할게 별로 없었다.  밖에서 먹고 올 때도 많았고 입맛이 완전 토속이라 반찬도 나의 창의력을 개발할  일이 없었다. 둘만의 식탁에는 된장찌개에 콩나물 같은 나물무침, 두부찌개, 그런 종류들이 올랐고 거기에 가끔 생선 종류만 바뀌는 정도였다.

  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나 나와 달리 아들은 육류파이다. 며늘은 단짠의 음식을 좋아하지만 손녀는 맵고 짠 건 절대 못 먹는다.  이렇게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 식성들을 한 자리에 앉히자면 신경 쓸 일이 많다.  된장찌개는 물론이고, 입맛따라 먹게 김치류도 다양하게 준비해두는데 그런 공통의 반찬 외에 남편 반찬, 아들 내외 반찬, 사랑이 반찬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된장찌개는 먹는 것만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대부분 맡아 끓여 일거리 하나는 던 편이다.





"할머니 저도 요리할래요."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랑이가 원목 스톨 의자를 낑낑대며 들고 와 싱크대 앞에서 놓고 섰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를 요리에 참여시켰다.  요리를 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손을 쓰면 아이의 지능 발달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이유보다 아이에게 일을 하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이고 싶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자기가 먹거나 식구들이 먹어주면 아이는 참 뿌듯해했다. 그건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도 주게 될 것이다.

사랑이 전용 칼도 준비해주었다.  묵을 자르는 칼이었다. 날이 서있지 않아 아이가 다칠 일은 없지만 칼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두부나 삶은 계란 정도는 자를 수 있었다.



의자 위에 올라선 사랑이에게 무슨 일거리를 맡길 것인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달걀 프라이로 정했다. 달걀을 주어 그릇 안에 깨트리게 했다. 사랑이는 그릇 모서리에 몇 번이나 달걀을 두드렸다.  달걀이 박살 나 껍질과 함께 깨어져 일부는 밖으로 일부는 그릇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흘러나간 달걀물은 딲아내고 그릇 안의 달걀물 속에 있는 달걀 껍데기는 꼼꼼하게  골라냈다.

 달군 프라이 펜에 달걀물을 붓게 했다. 델 수가 있으니  사랑이는 그릇에 손만 대게 하고 사실상 내가 부었다. 달걀이 익자 뒤집개로 뒤집게 했다. 물론 이것도 사랑이는 뒤집개에 손을 대 흉내만 내고 나는 사랑이의 손과 뒤집개를 동시에 잡았다. 혹시 기름이 튈까 조심하며, 그러면서 사랑이에게는 자신이 요리 한다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으며  달걀을 뒤집었다.

 휴, 힘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요리는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칼질을 하고 싶어 해서 스팸을 꺼내 썰게 해 주었다. 진짜 칼이 아니다 보니 아이는 썬다기보다 거의 짓이겼다. 짓이겨진 스팸도 용도를 궁리해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줘야한다.

밥을 지을 쌀도 아이와 씻었다. 사랑이가 쌀을 마구 휘저었다. 쌀알들이 밖으로 탈출했다. 나는 그 쌀알을 일일이 주워 다시 씻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나를 늘 도와준다

하지만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나는 힘든다.




보내야 할 원고가 있어서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사랑이가 들어왔다.

"할머니 도넛 먹어요."

돌아보니 클레이로 만든 도넛였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더니 혼자 저런 걸 만들고 있었던가 보았다. 도넛 위에는 나름  장식도 하였고 색감이  진짜 예쁘다. 아이의 상위에 클레이통들과 함께 밀대가 나와 있는걸 보니 그걸로 클레이를 밀어 만든거 같았다. 집에서 칼국수나 수제비를 할때 아이도 같이 참여해 밀대로 밀곤 해서 용도를 알고 있었다.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지만 사랑이는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중간이 동그랗지 않아요."


도넛을 주고 나간 사랑이는 또 다른 요리를 가져왔다. 흰지와 노른자 위치가 바뀌긴 했지만 그것이 달걀 프라이인 건 당장 알 수 있었다.



"와우~ 대단한데!"

내 칭찬에 신이 난 사랑이는 또 다른 요리를 들고 왔다. 피자였다. 토핑 색깔도 좋았고 나름 피자처럼 잘라 조각까지 냈다.


마지막 요리는 햄버거였다. 햄버거 속에 야채와 달걀과 치즈, 상당히 디테일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사랑이는 뿌듯한 얼굴로 내가 먹는 걸 지켜보고 서있다.

 먹는 흉내를 제대로 내줘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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