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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12. 2024

5, 화내는 아빠? 할아버지?


 

                                                               (수성펜&색연필, 46개월, A4용지)

  

  사랑이는 유난히 제 아빠를 따른다. 제 아빠인 나의 아들도 사랑이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말이 되어 등에 아이를 태우고 기어도 다니고, 인간 기중기가  되어 사랑이를 팔에 매달고 다니기도 하고, 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랑이의 몸통을 잡아주어 두 팔을 팔락대며 날아다니게도 해주는 등, 온몸으로 놀아주곤 . 


하지만 사랑이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도 아들이다.

사랑이는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 나이 아이라면 다 그렇듯 말도 안 되는 떼도 피우고 억지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때 아들은 사랑이의 떼를 받아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저음으로 목소리 깔고 하지 말라고  몇 차례 경고를 한다.

 사랑이가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거나 고집을 부리면  달랑 들어 안아 방으로 데리고 간다. 두 손으로 사랑이 어깨 죽질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시선을 맞춘다.  눈을 똑바로 보며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짚어주는데   오기가 생긴 아이도 순순히 들어먹지는 않는다.  사랑이는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 울음으로 제 아빠에게 맞선다.

"할머니, 할머니"

흐느끼면서 할머니를  부르기도 .

내가 절대적 자기 편이면서 제 아빠를 제지할 수도 있는 서열임을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못 한다. 사랑이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아파 그만 하라고  참견했다가 나까지 아들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들은 정색을 하고 훈육 시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그건 사랑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를  응석받이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게 된다고. 또한  아들의 권위도 손상되고 훈육의 의미도 사라진다고.

모두 맞는 말이라 깨갱  물러섰다.

 엄마인 며느리는  사랑이에게 늘 다정하고 부드럽다. 며느리는 사랑이가 제 아빠에게 혼나면 마음이 아파 안절부절못했지만  근처에 가질 않는 걸로 아들의 훈육  방법에 협조했다.


 결국 사랑이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제 아빠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잘못했다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면 아들은 사랑이를 꼭 안아주고, 사랑이는 꺽꺽 울음의 뒤끝을 매달고  아들에게 안아달라 두 팔을 벌린다.

그리고 방에서 나올 때 쯤에는 언제 울었냐 싶게 방긋댄다.

절제력 있고  예절 바른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중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하고 그 역할을 자청한 아들.

아빠는 엄격하고 엄마는 다정하고. 그러면서 무조건 자기 편이 돼주는 조부모들.

바람직한 조합 같기도 하다.




"할머니  그림 그렸어요."

사랑이가 자랑스레 A4 용지 이면지에 그린 그림 한 장을 들고 왔다

"이건 뭐니?"

"화내는 아빠, 아빠가 땀을 뻘뻘 흘려요."

나는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참 잘 그렸구나. 최고야!"


 사랑이는 제 아빠에게도 그림을 들고 가서  자랑했다.

"뭘 그린 거니?"

다정하게 묻는 제 아빠에게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화내는 할아버지예요."

아들이  와하하, 웃었다.


손녀라면 절절매는 할아버지의 의문의 일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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