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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13. 2024

6, 어린이집에서 물렸다.

(색 사인펜, 52개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사랑이의 손등에 검푸른 상처가 보였다.  흐릿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빨 자국이다.

"이거 왜 이런 거야?"

'라0이 물었어요."

사랑이는 자기 손을 입안에 넣어 넣어 무는 흉내를 냈다.

"이렇게 앙~"


 어린이집에 유난히 사랑이를 괴롭히는 다섯 살 같은 나이의 남자애가 있었다

장난감을 던져 사랑이의 이마에 상처를 내기도 했고 주먹질에 다리에 멍이 들어 올 때도 있었다.  근래 들어 부쩍 그런 일이 잦다 싶었는데 이제는 물기까지. 선생님들은 뭘 하느라 이렇게 물리도록 뒀나. 슬그머니 화가 났다.

"선생님도 알아?"

"네."

"선생님이 라0이 혼내줬어?"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어요."

혼을 좀 많이 내주지. 겨우  타이르기만 했다고?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으려면  라0이 부모에게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말해서 주의를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나의 말에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모여있는 곳이 잖아요. 소소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선생님들에게 따지면 선생님들은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웬만한 건 넘어가야지. 심하게 물린 것도 아닌데. 그리고 선생님이 라0이 부모에게는 말했을 거예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에 나는 실소를 했다.

" 라0이 우리 애를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 좋아하는 여자애를 유독 더 괴롭히는 남자애들도 있거든."

며느리도 웃으며 아들의 말을 받았다.

"우리 사랑이 인기가 좀 있긴하지. 너는 라0이 좋아해?"

이렇게 초긍정적인 부부를 봤나!

 사랑이는 펄쩍 뛰었다.

"전 라0이 싫어욧!"



 

 문득 수십 년 전 어느 때  딸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딸아이가 다른 아이의 팔을 심하게 물었다는 선생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가서 보니  물린 아이의 팔에 딸아이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얼마나 속상해할지 눈앞에 선해 당황스러웠다.  나는 딸아이에게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시켰다.

"미안해."

 풀이 죽은 딸아이가 사과했다. 물린 아이는 온순한 표정으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사과를 하고 싶다고 선생님에게 그 아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혹시 치료를 받겠다고 들면 치료비도 낼 각오였다.  선생님은 일단 그쪽 부모에게 자기가 상황을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어떤 엄마일까? 노발대발 사납게 따지고 들어오면 마음이 약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나는 밤새 잠도 설쳤다.

 다음 날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아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는 말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얼마나 화를 냈을까그런데 선생님의 입을 통해 해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으니 굳이 사과하러 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빨 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거니 소독만 잘하면 된다고.  소독도 자기가 할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아이 엄마는 의사였다.

30대 전 후 정도 나이였을 그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넉넉한 인품을 가질 수 있었을까?  당장 내 아이가  물려오니 이렇게 속이 상한데. 그것도 그때 딸아이가 문 것에 비하면 훨씬 가볍게 물렸는데도 말이다. 

딸아이는  유치원 친구를 물었던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걔, 참 착한 애였어. 걔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었어. 근데 내가 왜 그랬나 몰라."

수십 년 전 그 당시에도 딸아이는 같은 말을 했었다. 친구가 잘못한 거 없었다고. 자기가 잘못한 거였다고.



아들이 말했다.

" 라0이도 그럴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사랑이에게 물었다.

"네가 라0이를 먼저 화나게 한건 아니었어?"

그러자 사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전 착한 아이라서 다른 애를 때리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아요."

생각지도 못한 조리있는 항변이 기특해서 아들도 며느리도 나도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착한 아이는 남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지. 넌 정말 착한 아이야. 널 괴롭힌 라0이 잘못한 거야."

나는 사랑이를 꼭 안아주었다. 사랑이의 마음이 풀어지는것이 느껴졌다. 

아들, 며느리만큼 너그럽지 못했던  나는 화가 났지만 아들, 며느리는 끝내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이 일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사랑이의 손목의 퍼런 멍자국은 다음 날 더 짙어졌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요즘은 모두 자식들이 하나 아니면 둘이다보니 모두 소중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조그마한 분쟁에도 부모들이 과민해지기 쉽다.  하지만  더러  손해도 볼 줄 알고, 무엇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주기도 하는  아들과 며느리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있는 거 같다.  


라0의 부모에게서는 사과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틀 후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아이를 데리러 온 부부와 마주쳤다. 그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분명히 말을 했을텐데....  착각인지 모르지만 사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피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말을 할까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들의 말처럼 아이들의 소소한 다툼에 일일이 어른들이 개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 같았고 만일 그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끄러워지기만 할 거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나 아이들의 실수를 이해받으려면 먼저 남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선행되야 한다. 그걸 라0의 부모들도 알게 되기를 바란다.  

특히 애들간 다툼이 있었을 때  '애들 사이에 그럴 수있지.'라는 말로 합리화 하기 쉬운데 그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만이 할 수있는 말이다.




아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색칠 도구가 도착했다. 크레용과 색 사인펜이 같이 있는 것이었다.

택배 박스에서 나온것을 보고 사랑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리고 즉시 방안에 들어가 전지를 한 장 질질 끌고 거실로 나왔다.

벽에다 호작질을 하고 다니는 사랑이에게 마음껏 낙서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사두었던 전지 뭉치들이었다.  거실 소음방지매트 위에 전지가 펼쳐졌다. 그위에 웅크린 사랑이의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제 키만 한 전지를 어떻게 채우려나?

색 사인펜을 들고 제 마음대로 휘갈기는 사랑이를 나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사랑는 이 모서리에서 그렸다가 저 모서리로 자리를 바꿔가며 제 맘대로 칠했다.

어느 정도 채우고 나자 사랑이는 몸을 일으켰다.

"그만 그릴래요. 힘들어요."

힘들겠지. 호작질로 하든 뭐로 하든  전지 한 장 다 채우라면 나라도 힘들 텐데...

그림 속에 아이가 한 명 있는 걸 보고  나는 한마디 거들었다.

"친구가 혼자 있네. 친구들 더 그려봐.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리고 어린이 집에 친구들 이름을 거론했다.

"소0도 그려주고, 혜0도 그려주고 채0도...."

어린이집에서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들 이름이었다. 그 이름 만으로도 사랑이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알았어요"

사랑이는 다시  사인펜을 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명의 아이를 더 그렸다. 나름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당연히 단짝 친구를 그린 줄 알았다. 그런데 노란색으로 칠한 아이는 자기라고 했고 그 위에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사랑이가 말했다.

"얘는 라0이에요. 내  머리를 밟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다른 두 아이 발밑에는 사각 발판을 만들어두었다. 방방이 위에서 뛰는 거라 했다.  두 아이들은 방방이 위에서 뛰는데 라0은 사랑이의 머리위에서 뛰고 있었다.

라0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심한건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 의미를 확대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 문제는 일단은 선생님에게 맡기는 게 옳을 것이다. 여러 원생들이 있으니 소소한 문제들이야 늘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내 아이만 신경쓰라고 하는것도 무리한 요구였다. 그건 내 아이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선생님의 권위를 부모가 침범할 수있다는걸 아이에게 보여주면 내 아이의 의식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모는 무조건적인 해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사랑이가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할 힘을 키워주어야한다. 자신의 발로 세상을 딛고 설 수있는 홀로서기를 잘 가르치는 게 현명한 부모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스런 자식들이라도 부모가 언제까지나 돌봐줄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유심히 지켜보기는 해야겠다. 


(색사인펜 &크레용, 52개월, 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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