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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Mar 14. 2024

9, 새가 되고 싶어

(색사인 팬  52개월, 도화지)


  사랑이가 제 발로 세상을 걷게 되기 시작하면서  코로나가 시작됐다. 사람들과 만남을 피해야하는 시대였고 집안에 갇혀지내야하는 시대였다. 답답해하는 사랑이에게 바람을 쏘여주려고 밖에 나가자 사랑이가 쫑알댔다. 

 "새가 되고 싶은데 날개가 없어.'

엄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슬픈 말인가!

그리고 사랑이는 새가 되었다. 두 팔을 날개처럼 팔락대며 한참동안 깡총깡총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사랑이가 자기 전 제일 즐기는 놀이도 제 아빠에게 안겨 새가 되는 놀이이다. 제 아빠가 허리를 잡아주면 아이는 두 팔을 팔락 팔락 대며 새가 되어 허공을 날아다니곤 했다.  네 돌이 지나자 새로 만들어주기에 제 아빠도 힘에 부칠만큼 아이는 자라났다.  사랑이는 점점 새가 되는 날이 줄어들었고  사랑이의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하고 독수리 놀이도 했다. 거실 양 끝에서 서로 마주 보며 서있고 사랑이는 두 팔을 최대한 크게 휘저으며 내게 달려오는 놀이이다. 그러면 나는 "독수리 잡아야지." 하며 두 팔을 벌려 기다렸다가 사랑이가 오면 잡아서 안아 몇 바퀴 돌려주는 것이다. 단순한 놀이지만  팔을 휘저어 달려오는 순간 사랑이는 정말 독수리라도 된 것처럼 신나 했다. 하지만 몇 번 하고 나면 내가 지쳤다. 

헥헥.

 독수리를 잡는 게 아니라 내가 잡힐 거 같다. 

사랑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나는 나날이 힘이 떨어지고. 사랑이를 안아 몇 바퀴를 돌려주기 힘에 부치면서 독수리 놀이도 서서히 끝이 났다. 



사랑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화려한 색상과 단숨에 그어대는 선이 대담했고 매우 정밀한 그림이었다. 

"너무 힘들어."

사랑이는 연방 팔이 아프다고 말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색연필을 놓았다. 

"다 그린 거야?"

"네"

"뭘 그린 거니?"

"공작새예요."

공작새라니? 얘가 공작새를 언제 봤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제대로 된 외출도 못한 지 이년 째인데? 

태어난 지 네 돌이 넘는 아이의 생애에서 절반 가까운 시간은  언제나 마스크와 같이 있었다. 외출할 때는 신발 신듯이 마스크를 쓰는 건 줄 알며 자라났다. 

 한참 생각하니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이니 세 돌이 안되었을 때일 것이다. 연휴에 파주 해이리 마을을 간 적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난데없이 공작새가 한 마리 나타나더니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비둘기도 아닌 공작새를 길에서 보는 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해서 얼른 사랑이를 안아 데리고 왔다. 

"저 새는 공작새란다 꼬리를 다 펼치면 정말 예쁘지."

아이도 공작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붕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옆의 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또 그 옆의 나무, 그러면서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동물원에서나 보던 공작새가 야생의 새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다니. 

일부러 풀어놓고 키우는 공작새인가? 어디서 키우던 게 탈출한 건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날아다니는 공작새의 기다란 꼬리날개들이 햇빛에 언듯 언듯 빛을 냈다. 하지만 기다란 꼬리날개는 날아다니기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날아다니지만 말고 저 꼬리날개를 한번만 제대로 활짝 펼쳐 보여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공작새가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기다렸지만 공작새는 끝내 꼬리 날개를 펼쳐 보여주지 않았다. 나무 위로 점점 더 올라가던 공작새는 이윽고 나뭇잎 속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사랑이의 그림 속 공작새는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펼치고 갖가지 색깔들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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