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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Sep 27. 2024

동대사의 사슴

8, 일본여행 (2023, 7월 24~28일)

 다음날은 나라에서 동대사(도다이지)를 갔다. 버스를 내려 동대사로 향하는 길에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슴들이었다. 

동대사 앞에는 100마리의 사슴들을 방목하고 있는 사슴공원이 있었는데  돌아다니는 사슴을 눈앞에서 본 사랑이의 눈이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반짝댔다.  사슴들이 옆을 지나가고 손을 뻗쳐 만져도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다니! 이건 사랑이의 짧은 생애에서 처음 겪는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 수없었다. 사랑이만 그럴까.  사슴들과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는 풍경은 나나 남편의 긴 생애에도 역시 처음 보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가이드는 일단 동대사부터 구경하고 나온 후 사슴들과 어울리라고 했다. 동대사는 일본인들에게도 중요한 절이어서 많이들 찾아오는데 대개는 10시 30분이 지나서이니 그전에 웬만한 곳은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사슴 무리들과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이를 겨우 달래서 동대사 안으로 들어갔다. 

동대사는 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절이다. 

 쇼무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의하여  745년부터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비로자나불이라고 했다. 높이 약 15m의 금동불로 현존하는 세계최대의 목조건조물인 ‘다이부쓰덴(殿)’에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한 것은 이 절의 건립에는 백제인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했다는 가이드의 간단한 한 마디였다.  






이후 나는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다시 확인했는데 당시 도래인이라고 불리던 백제계 후손인 양변() 승정()이 창건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 백제계 고승 행기()는 대불건설의 기금을 모았다고 했다. 대불 주조의 총지휘를 맡은 사람은 백제가 멸망했을 때 백제의 왕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한 국골부()의 손자인 구니나카무라지기미마로()이며 또한 대불을 도장할 금박이 부족해졌을 때 백제왕가의 후예인 경복이 무쓰() 지방에서 채취한 사금을 보내어 불상의 완성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대불건립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의 대다수가 도래인이라고 했다.  

백제가 멸망한 것이 660년이니 그 후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많은 중요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많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이미 정설로 되어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워낙 오래전이라 그 기록들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동대사에는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이 분명히 남아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동대사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절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대불전의 대불인데  높이는 약 16m에 달하는 거대한 것이었다. 이 공사에 투여된 사람들이 260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 일본 인구 절반이 참여한 대공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의미 같은 건 사랑이의 관심밖일 수밖에 없었다. 들어서자 향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향을 꽂고 저마다의 소원들을 빌고 있었다. 사랑이도 향을 피워보고 싶어 했다. 

그러자 어떤 젊은이들이 사랑이를 도와 향을 꽂게 도와주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패키지 일행인데 대학 1학년 전후로 보이는 세 명의 청년이었다. 그중 한 명이 사랑이를 특히 귀여워해 주어서 여행 내내 사랑이에게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람처럼 나타나 사랑이를 도와주곤 했다. 

그리고 같은 일행 중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애도 사랑이와 잘 놀아주어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나와 남편은 여행에 나서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샅샅이 봐야 한다는 주의이다.  사랑이도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우리 뒤를 따라다녀 주었다. 사랑이로서는 그 의미도 알지 못할 텐데도 말이다.  

 날씨는 변함없이 덥고 무더웠다. 35~37도 사이의 기온에 몸을 피할 그늘은 많지 않아 한 바퀴 도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조금 한적한 곳이 나오자 그곳에 많지 않은 사슴 무리들이  보였다. 

사랑이의 소원대로 사슴들 먹이로 센베를 200엔을 주고 샀다. 그동안 사랑이는 사슴들이 보이면 신기해서 따라다녔지만 사슴들은 사랑이에게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슴들에게 사람들은 오직 두 부류뿐인 거 같았다. '센베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하지만 사랑이가 '센배를 가진 자'가 되는 순간 사슴들이 돌변했다. 냄새를 맡은 사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사슴들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사랑이 보다 결코 작지 않을 사슴들이 얼른 달라고 머리로 툭툭치고 몸으로 밀어대는 게 위협적이었다.  이건 사랑이가 상상했을 동화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중 뿔이 멋진 수사슴이 있었는데 그 뿔로 사랑이를 건드렸다. 사랑이를 다치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사랑이는 겁을 먹었다. 센베를 주지도 못하고 사슴을 피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센베를 쥐고 있지 말고 얼른 주라는 주의를 가이드에게 미리 들은 바 있었다.  사슴에게 줄 듯 말 듯 장난치면 사슴이 공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사슴이 마음먹고 공격이라도 하면 수사슴의 뿔은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었다.

어쩔 수없이 내가 대신 주려고 나섰다. 내가 사랑이의 센베를 한 개 꺼내자 사슴들이 육탄공격을 해왔다. 제법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그들이 마음먹고 밀어대면 나도 자빠질 거 같았다. 그런데 내가 센베를 대신 주려하는 걸 사랑이가 거부했다. 알고 보니 사랑이가 도망치는 건 무서워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랑이는 일진 같은 수사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저 사슴 싫어요."

사랑이는 자기를 아무리 위협해도 수사슴에게 주지 않으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덩치도 크고 멋진 뿔을 가진 수사슴은 무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풍채였고 무리의 두목인 거 같았다. 그 수사슴이 나서면 다른 사슴들은 뒤로 물러섰다. 다른 사슴들도 그 사슴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사랑이는 그 꼴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어디든 무리의 우두머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걸 이해하기에는 사랑이는 너무 정의로웠다. 

뒤에서 먹이 경쟁에 끼지 못하는 덩치 작은 암사슴이나 어린 사슴을 찾아 센베를 주려는 사랑이와 그런 사랑이를 위협하는 수사슴과의 술래잡기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사랑이에게 나중에 사슴 포비아가 생기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사랑이의 손에서 센베가 모두 사라지자 사슴들의 관심도 사랑이에게서 떠났다. 센베를 더 사주려 해도 사랑이가 싫다고 했다.  센베를 드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이미 톡톡히 경험했으니 '센베를 가지지 않은 자'의 평화를 택한 것이다. 

동대사를 나오니 관광객들 수가 매우 늘어나 있었고 그만큼 사슴들도 다 나와 우글댔다. 방목된 수많은 사슴들을 보는 건 참 좋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들은 곳곳에 지뢰를 뿌려놓았고 발밑은 온통  지뢰밭이 되어 있었다. 

곳곳에 늘려있는

똥, 똥, 똥, 똥,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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