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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잘못된 아이 행동, 잔소리도 한계가 있다

제4장 “사실 엄마도 정답이 뭔지 잘 몰라”

일 하는 엄마이다 보니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는 평일 퇴근 후 두서너 시간과 주말 밖에 없다. 아이는 주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는 아이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해도 이를 훈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손주라고 해도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때릴 수도 소리를 지르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랑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크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 훈계 등 소위 나쁜 역할은 내가 맡게 됐다. 어느 때는 온갖 잔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가 있다. 잔소리는 어린아이도 본능적으로 정말 듣기가 싫은가보다. 서 너 살만 돼도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엄마는 `잔소리 쟁이`라고 한다. 나도 안 하고 싶은데 `저렇게 크다간 안 되겠다` 싶을 때가 많다보니 안아주고 예뻐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싫은 소리를 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아이가 외동인데다 승부욕이 많아서인지 또래 아이들과 놀 때면 거의 늘 다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아이는 또래 친구랑 놀고 싶은 욕구가 강하면서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놀이에 대한 욕구도 강했다. 지거나 양보하는 것도 싫어했다. 주말에 키즈카페 등에서 처음 보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도 다툼이 일어났다. 물론 이런 일들은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줄어들긴 했으나 또래 친구와 놀 만한 기회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트러블이 생기다보니 아이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스트레스가 됐다. 한편으론 아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부모까지 같이 있는 상황에선 민망한 경우가 많았다. 잔소리로 혼내는 것도 사실 한 두 번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던 중 우리 아이에게 먹히는 방법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구강기를 지나 4살 때까지도 손을 쪽쪽 빨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빨았는지 손에 곰팡이가 생길 정도였다. 병원에도 다녀왔지만 아이의 손 빠는 행동은 멈춰지지 않았다. 심심할 때, 불안할 때, 졸릴 때 모두 손을 빨았다. 아이에겐 위안거리였나 보다. 손에 쓴 약을 바르는 등의 강력 조치에도 여전히 손을 빨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손 빠는 행동을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서점에 가게 됐다. 서점에서 `콧구멍을 후비면`이란 책을 보게 됐다. 콧구멍을 후비면 코가 커지고 손을 물어뜯으면 손가락이 커지고 하는 등 약간의 공포심을 조성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내용의 그런 책이다. 나는 내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그 책을 읽어줬는데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읽어달라고 하더니 엉엉 울었다. 그러더니 4년간 의지해왔던 손가락 중독을 끊어냈다. 책을 읽은 후 단 번에 끊었다. 


나는 이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이의 지나친 승부욕을 개선시키기 위한 책들을 사줬다. 이상하게 이런 책을 읽어주면 주인공이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지 앉은 자리에서 두 번 연속 읽어달라고 한다. 이것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점을 느꼈단 얘기다. 사람이 쉽게 바뀌겠냐만은 비슷한 행동을 할 때마다 조금 텀을 두고 그 책을 다시 읽어줬다. 


너무 대놓고 네 행동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티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아이는 그 책을 싫어하고 엄마가 하는 그냥 그저 그런 잔소리로 들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심한 듯이 책을 반복해 읽어주면 어느 순간 아이의 행동이 달라져있는 게 느껴졌다. 가위바위보 같은 단순한 게임에도 자기가 지거나 질 것 같으면 눈물 먼저 보였던 아이가 점점 달라졌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키즈카페에 가서 아이와 동갑인 친구를 만나 보드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한 번을 이겨놓고도 그 다음 판에서 친구가 이길 거 같으니까 울어댔다. 아직 그 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자기가 지고 있으니까 눈물 바람을 한 것이다. 이런 행동은 그 다음 날 집에서 나와 게임을 할 때도 반복됐다. 


아이에게 전날 있었던 키즈카페 일을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어제 키즈카페에서 만났던 친구도 이기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네가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 그 친구도 속상해서 너랑 놀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엄마가 그 친구한테 물어봤어? 이기고 싶냐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한테는 `이기고 싶은 마음`은 자기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상대방 역시 아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란 생각은 못 했던 듯하다. 


나는 그 뒤로도 고자질, 질투심 등과 관련된 책을 사들여 아이에게 읽어줬다. 말 그대로 아이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좋은 책들이다. 인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은 아이가 커가면서 두고두고 읽혀도 좋다. 책에 반드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무엇이 고자질이고 무엇이 정직한 것인지 어른인 나도 갈등한다. 그러나 책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좋은 창구다. 


아이는 커가면서 엄마의 마음을 쉽게 눈치 챈다. 8살 어느 날, 나는 마땅히 읽어줄 책을 고르지 못해 오랜 만에 `승부욕`에 대한 책을 들고 “이거 읽을까?”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 나 요즘에 뭐 잘못한 거 있어?”라고 대꾸를 한다. 난 무심코 집었을 뿐이었는데..난 속으로 ‘어머, 얘 좀 봐. 다 알고 있었던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뜨끔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너가 그런 행동을 안 했으면 좋겠어서야`라는 마음을 숨기고 읽어줬던 것인데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책들은 아이에게 확실히 먹혔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엄마가 고른 책 한 권이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서일 수도 있고 그 책을 고른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엄마와의 갈등을 줄이면서도 아이의 행동을 바르게 바꿔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승부욕이 강하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점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초등학교 참관수업에 가서 나는 아이에게 감동을 받았다. 참관수업 때 10분 내로 장갑에 솜을 집어넣고 토끼 인형 만들기를 했다. 첫 번째 단계는 장갑의 엄지를 안 쪽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갑 안에 솜을 넣으면 된다. 아이는 첫 단계를 끝내고 바로 솜을 집어넣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아이가 만들기, 그리기 속도가 느린 탓에 ‘솜을 왜 집어넣지 않고 가만히 있지? 순서를 까먹었나.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아 속도가 느렸던 것인가’ 등의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짝꿍을 기다린 것이다. 짝꿍이 엄지를 장갑 안으로 넣지 못하자 아이가 대신 해줬다. 그제야 아이는 장갑에 솜을 넣기 시작했다. ‘제 시간에 하려면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바로 바로 해야지’라고 말하려 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의 마음은 더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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