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줄 아는 용기

by 김소영

체내 탄수화물 농도가 부족합니다. 피자! 라면! 초콜릿! 아이스크림! 단 것! 단 것! 몸은 요란하게 경고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건 가짜 식욕이야'라고 외치며 맹숭한 물만 연거푸 들이켰다.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정신력에도 호통을 쳤다. 약해빠진 정신력 같으니라고!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단단히 붙잡아야지! 다시 살찌고 싶어?


휴식이 필요합니다. 관절과 근육을 쉬게 하십시오. 몸에서 보내는 두 번째 경고였다. 뭐라는 거야! 살찌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또또 정신 빠져가지고. 말 안 듣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는 여기서도 몸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했다. 흡사 폭군과 같았다.


두 번째 경고에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몸은 엄청난 것을 선물로 주었으니, 바로 예민함이었다. 그 증거처럼 나는 점점 매사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서 엉켜있던 이어폰을 풀다가도 짜증이 솟구쳤고,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친구들의 장난에도 정색하고 들었다. 행여 엄마가 말이라도 걸라치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고, 말투와 눈빛도 바짝 날을 세웠다. 버럭 짜증을 내고 나면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왜 짜증 냈지. 그리곤 곧바로 나의 예민함 때문에 내 주변 관계를,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자책이 밀려들었다. 티 내지 말자. 감정조절 잘하란 말이야. 예민함을 감추겠다고 애를 썼지만 사실은 온몸으로 '다이어트 중이라 예민합니다'를 써 붙이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예민함이라는 감정은 내 몸과 마음을 제멋대로 조정했다.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내 마음의 주도권을 뺏긴 일상은 각본이 짜인 인형극 같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감정이 나를 지배하면 지배당했고, 해야 하니까 운동했고, 입에 들어가는 것을 절제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야 살이 찌지 않으니까. 정신적‧육체적으로 충분히 이완되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 알아차릴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이게 내가 말하던 지속가능한 다이어트가 맞을까.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몸은 여러 차례 경고를 보내왔지만 하루라도 빨리 살을 빼고 싶다는 욕심과 뺀 살을 다시는 찌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절대 쉴 수 없게 했다. 체중이 1~2kg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숫자는 숫자일 뿐이라고? 그 숫자는 나를 시도 때도 없이 살리고 죽였다.


“회원님 잠깐 얘기 좀 할까요.”

PT가 끝난 직후, 트레이너는 힘없이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웠다.

“요 며칠 운동할 때 회원님 체력도 너무 많이 떨어지고, 집중도 잘 못 하고 계세요.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랬다. 안 그래도 바닥난 체력으로 피티까지 받았으니 오죽했을까. 최근에는 수업 시간 내내 ‘못 한다, 무겁다, 힘들다.’ 3종 세트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트레이너가 보기에도 분명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날은 근력운동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태여서 한 시간 내내 유산소성 운동으로 대신한 아주 심란한 날이었다.

“운동을 잠깐 쉬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제야 지난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먹어야 했던 두통약, 무기력함, 한 번씩 찾아왔던 폭식, 관절 통증, 심각한 운동 능력 저하. 사소하게 지나쳤던 많은 신호, 몸이 하는 이야기. 더는 휴식을 미룰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결국 나는 트레이너에게 2주간 휴식을 취하고 오겠다고 얘기했다.


운동을 쉬면서 제일 먼저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그동안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수면시간이 8시간으로 늘어나자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몸은 잠을 원했다. 애써서 나를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상태가 얼마 만인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되찾았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지만 정신은 줄곧 쉴 줄을 몰랐다. 줄어든 운동량을 보완하기 위해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는 그놈의 당부 때문에. 나는 언제나 음식을 경계해야 했고, 건강한 음식을 강박적으로 찾아 먹었다. 행여라도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 이게 곧바로 살이 될까 전전긍긍했다. 어떤 날은 참지 못하고 헬스장을 가서 운동하기도 했다. 신체적인 에너지는 축적되는데 정신적 에너지는 자꾸만 소진되어갔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트레이너가 하는 말들에 지쳐있었다. 평일에는 타이트하게 조절하고 주말에만 한 번씩 '배부르지 않게' 먹고 싶은 거 먹어요, 먹고 싶은 거 먹되 '양 조절'해서 먹어요, 허리랑 무릎이 아파서 유산소 운동을 잘 못 하니까 음식조절 더 잘해주세요. 모두 다 내게 도움이 되고 맞는 말이라서 더 무기력해지는 말들. 어떤 음식이라도 양 조절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을 때는 음식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잘하던 양 조절이 갑자기 안 될 때가 있다. 지쳤다는 신호이다. 배부르게 먹으면 어김없이 양 조절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잘 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에 저 말은 먹어도 된다는 말 아래 먹지 말라는 말이 예쁘게 포장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먹지 마세요'라는 말보다 더 친절한 듯 보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똑같음을 느낄 때 나는 자주 한계를 느꼈다.


너무 뻔했다. 사실 다 안다.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는지. 우리가 몰라서 못 빼는 것이 아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주라는 것을 누가 모르나. 나 스스로도 '양 조절 못 하는'데만 집중했던 시간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양 조절의 중요성이야 직접 몸으로 경험했는데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내 몸은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절대적인 규칙 같은 것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먹어선 안 되는 음식, 먹어선 안 되는 양, 먹어선 안 되는 시간, 주 4회 이상 운동하기. 내 몸의 컨디션, 기분과 감정을 배제한 채 다이어트 공식과 같은 누구나 아는 규칙을 강요하는 것은 로봇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절한 보상과 격려, 지지받고 있다는 감각이 뒷받침되어주지 않는 한 개개인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방법으로는 절대 다이어트를 꾸준히 지속할 수 없다.


이게 내 모습이 맞나 싶을 만큼 열정적으로 다이어트를 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얼마나 건강한가. 살은 빠졌을지언정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이차 삼차 경고를 보내도 쉬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한 번에 강박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해야한다. 휴식은 살이 찌는 일이 아니라 다이어트의 필수 요소라는 것, 양 조절 만큼이나 지친 나를 보살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이쯤 되면 지칠 법 하다고 인정하기. 내 정신력이 문제라고 자책하지 않기. 잘하려고 할 것도 없이 그때그때 재정비해가면서 가늘고 길게 꾸준히 지속하기.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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