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근 따윈 없지만

by 김소영

이렇게 해서는 안 돼.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에 두 번 운동 나오자. 근력운동도 강도를 더 높여야 되겠어. 특히 복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해야 된대. 이거 봐 이 사람은 프로필 찍기 직전에 유산소를 90분이나 했다는데? 런닝머신 타는 시간도 더 늘려야 될 것 같아. 세상에, 먹는 거는 거의 뭐 닭가슴살이랑 계란, 방울토마토 정도밖에 안 먹었네. 언니도 더 바짝 쪼이자.


사실 나의 운동 파트너는 약 백일 전부터 바디 프로필 촬영을 준비해왔다. 촬영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매일같이 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언니 운동 더해, 언니 이거 먹지 마, 언니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된대, 언니, 언니. 나는 온갖 인스타 몸짱들이 흘려주는 정보를 주어다 언니에게 가져다 나르기 여념이 없었다. 프로필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운동하고 얼마큼 먹나, 어떻게 해야 저런 복근을 갖고 사진을 찍을 수 있나, 어떤 컨셉으로 찍어야 예쁠까. 우리는 쉴새 없이 인스타 안을 헤집고 다녔다.


저렇게 하루 3~4시간은 헬스장에서 살면서 운동을 하는구나. 운동 강도도 엄청 높은 것 같은데. 아, 도시락은 이렇게 싸서 먹었네. 바디 프로필을 찍는 게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핫바디는 저런 엄청난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 점점 우리가 하는 1~2시간의 운동과 적당하게 엄격한 도시락이 볼품없게 느껴졌다. 저런 사람들의 노력과 비교하면 우리의 노력은 감히 노력이라고도 칭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트레이너도 종종 언니에게 '회원님 지금 죽을 만큼 힘드세요?, 먹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이 괴로워요?'라고 질문했고 언니는 늘 '아니'라며 멋쩍어했다. 오히려 지금 당장 마라톤이라도 나갈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남아돈다며 이렇게 안 힘들어도 괜찮을까 걱정했다. 복근이 아직 안 만들어졌는데, 아직 40 후반의 몸무게도 못 만들었는데, 이런 일반인이 사진 찍어도 괜찮을까. 언니는 자신감이 없었다. '프로필을 찍기 위한 완벽한 몸'과 '프로필을 찍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어야 하는지' 같은 기준이 마치 정답처럼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복근 없는 몸과 짱짱한 체력을 가진 언니는 언제나 본인이 열심히 안 한 게 잘못이라며 화살을 자기에게 돌렸다. 나는 그럴수록 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더 자주 SNS를 검색했다. 마치 모든 정답이 거기에 있다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는 더 자주 길을 헤맸다. 예쁜 몸이라는 것이 뭘까. 예쁜 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아무리 해도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몸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의 기준에 내 몸을 맞출 수 있을까. 이 몸을 하고서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서냐고 걱정하는 언니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마음이 괴로웠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일지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서. 나 또한 바디 프로필이라는 것은 정말 완벽한 몸을 갖게 되기 전까진 찍어선 안 되는 것으로 알았으니까.


지금 언니에게 필요한 것은 핫바디들의 조언이 아니라 용기였다. 어떤 몸이라도 내 몸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권리. 언니에겐 그런 권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먼저였다. 언니 프로필을 찍을 수 있다는 완벽한 몸 따위 잊어버리자. 모든 부담감을 버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자. 그리고 몸의 역사를 예쁘게 남기고 오자. 그런 말들은 언니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촬영 날. 언니는 결국 복근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언니를 한 컷 한 컷 찍어내는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지어 보이는 포즈와 다양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전율했다. 너무 충분해서. 우리가 걱정했던 불완전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 언니가 프로필을 준비했던 지난 과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인스타 핫바디랑 비교하느라 볼품없는 시간으로 취급했던 그 과정 말이다. 언니는 1년 동안 총 20kg을 넘게 감량했다. 천천히 건강한 방식으로. 먹고 싶을 땐 행복하게 먹으면서, 운동할 땐 더 행복하게.


본격적으로 프로필을 준비했던 백일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애주가였던 사람이 백일동안 술을 끊고, 매일 같이 운동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먹을 점심 저녁 도시락을 준비했다. 과자를 먹는 걸 몇 번 들키긴 했지만 먹던 시간보다 참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왜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을까. 죽을 만큼 힘들지 않아서?, 복근이 없어서?


그 누구에게 보여도 극찬받는 사진이 아닌, 지난 1년의 과정을 담은 사진이 찍히고 있었다. 언니는 울상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언니 몸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몸 전체가 몰라보게 슬림해져 있었고,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멋진 허벅지가 언니를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매 사진마다 환호를 질렀다. 언니 너무 예뻐! 나는 또 말하고 또 말했다. 스튜디오 한가운데에서 모든 빛을 받고 있는 언니가 너무 멋있어서 마음이 자꾸 일렁였다. 분명 언니도 함께 일렁였을 것이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는 모든 촬영이 끝이 났다. 촬영이 끝나면 반죽음이 되어서 나간다는데 역시 우리의 언니는 남아도는 체력을 자랑하며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예상 밖이었다. 복근 따위 없어도 이렇게나 완벽한 날들까지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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