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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방 Oct 14. 2023

배고프지 않다는 믿음

C

(이이영 씀)


식단 일지를 살펴보던 선생님은 먹는 양이 너무 적어,라고 말했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너무 적게 먹는다는 말은, 이렇게 뚱뚱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지 않나. 내 앞에 앉은 여자들이 숱하게 들었던 그 말을 내가 듣게 되다니. 


세끼 먹고, 간식도 잘 챙겨 먹어야 돼요. 간식에 한 맺히지 않게. 


한 맺힌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 가슴을 치나. 어깨를 들썩이며 우나. 뜨겁고 텁텁한 한숨을 내쉬나. 아니 이렇게 단순히 묘사될 수 없다. 그건 C를 보며 알았다. C는 울어도 눈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 옆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물길을 만들고, 눈물은 그 길로 흘러 들어가 버린다. C가 울고 있다는 증거는 입술에 있다. 부풀어 오른 입술이 들이마시는 호흡에 파르르 떨린다. 

내가 저런 인간을 만나서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아

불안정한 호흡은 다양한 문장이 되어 C의 온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그렇다면 나도, 초콜릿 앞에 앉아 이런 문장을 내뱉으며 울게 되나. 먹고 싶어, 먹고 싶어.


내 식욕은 한 달째 눌려 있다. 눌려 있다는 말은, 뭔가를 참고 있다는 말이고 그건 언제고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C의 욕구는 칠십 년 동안 눌려 있다. 본인에게 가중된 일의 양과 책임감에 눌려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었다. 받침이 어려운 글자를 막힘 없이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질 기회는 도통 찾아오질 않았다. 그것뿐인가? 그것뿐일 리가 없는데. 뭐가 억눌린지도 모른 채 살아온 세월이 남긴 흔적이 그렇다. 무감각하다. 


사실 ‘눌려 있다’는 감각은 익숙하다. 외부로든 내 의지로든 많은 것을 눌러봤다. 식욕을 눈물을 웃음을 화를 억울함을. 무엇보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칠십 년간 억눌린 C를 돌보는 것은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내가 외면해도 될까? 이 죄책감을 떠안고 어디까지 멀리 떠날 수 있을까? C는 틈만 나면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쇠덩어리가 아닌데. 아니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는데. 알지. 속이 쓰렸다. 음식이 너무 조금 들어온 벌이다. 


B가 누르고 간 8888888888의 흔적을 보며 C의 빼곡한 공책이 생각났다. 바로 옆에 글씨를 복제한 듯 또박또박 쓴 가, 나, 다, 라.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래 이것도 C의 문장이다. 


늦은 저녁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를 보낸 날이 여러 번 지나갔다. 이제 음식을 통제할 수 있는 건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럴수록 선생님의 우려는 짙어져 가고 그 짙음에 쾌감을 느꼈다. 그래 그런 걸 떠올리자, 슬픔 같은 거. 그동안 이리저리 꾹꾹 눌러 튀어나오지 않게 만든 거. 증거. 식욕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발로 밟고 서 있겠다. 그래도 안된다면 눕겠다. 그래도 안된다면 함께 땅 속 깊숙한 곳으로 꺼지겠다. C는 나를 보더니 살이 빠졌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C는 많은 것을 건너뛴 채 다른 말을 시작했다. 나는 쇠덩어리가 아닌데. 아니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는데. 알지.


편의점 문을 열까 말까 한참을 문 밖에서 서성였다. 시간은 밤 9시. 모르겠고, 오늘은 그냥 저 밝고 환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산하고 싶었다. 짤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장했다. 삼각김밥? 아니. 라면? 아니. 과자? 아니. 아이스크림? 아니, 아니, 아니. 결국 계산대에 호올스 한 개만 내려놨다. 가장 시원한 맛이었다.


아주 오래전 인천에서 비행기로 10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곳에서 1년간 산 적이 있다. C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자유로움을 어찌할 바를 몰라 먹는데 시간을 썼다. 젤리를 한 박스를 사서 아침에 일어나면 물 대신 젤리를 먹었다. 새콤한 맛이 침샘을 자극해 금세 입 안이 촉촉해졌다. 그 질깃한 촉감을 씹으며 정말 이 젤리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무거워진 몸으로 한국에 되돌아왔을 때 C는 내게 다시는 해외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젤리를 초콜릿을 햄버거를 먹다 못해 C까지 먹은 건지, C는 수척해 있었다. 


C와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나는 살이 쪘다. 한글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외면하고, C가 하는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게 C를 앙상하게 만드는 일일지라도, 금지된 곳으로, 멀리 가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문제적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어딘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C의 곁으로 가야겠다. 야윈 사람이 되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식사 치료를 하러 가면 테이블 위에서 날마다 일이 벌어진다. 그날은 내 앞에 어린아이가 앉았다. 마스크를 쓴 채로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한 줌과 같은 밥이 놓여 있을 뿐인데, 아이는 압도당한 것 같았다. 마스크를 벗자는 치료사의 다정한 목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고 아이는 겨우 마스크를 벗었다. 그걸 곁눈질로 보면서 나는 비겁하게도, 나도 저 정도의 몫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알 하나하나의 무게를 느끼며 이 날뛰는 식욕을 억누를 수만 있다면 슬픔도 억울함도 분노도 아주 능숙하게 눌러 둘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제 나도 먹는 걸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자. 

그런데 젤리가 먹고 싶어.

고집스럽게 다물고 있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울었다. 


먹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노래처럼 들으며, 어제보다 더 날씬 해진 모습으로 C의 앞에 섰다. 밥 먹어. 그 노래에 C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먹어 먹어 먹어 먹어. 감미롭고 애달픈 목소리들. 나는 두 눈을 감고 춤을 췄다. 출렁이는 뱃살과 가슴을 느끼며, (안) 먹어서 빼야 할 살들을 느끼며. 근데 잠깐만. 왜 당신은 여전히 야위었나요?, 나는 C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앉아 있는 C에게 물었다. 

밥 먹었어? 

내가 이런 인간을 만나서 평생을. 

C의 허기를 목격하자 어마어마하게 배가 불렀다. 위가 팽창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단 한 톨의 쌀도 허용할 수 없을 만큼. 이 배부름은 증명한다. 나와 C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노래를 틀었다.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나에게 허용된 적 없던 말이 끝없이 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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