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은물 씀)
-6kg
몸무게 62kg.
2019년, 3년 전에 나는 7km를 매일 달렸다. 1km에서 시작한 달리기는 7km까지 늘었다. 나이키 러닝앱에는 1000칼로리가 소모됐다는 기록이 떴다. 달리기를 시작한 건 꾸준함을 기르고 싶어서였다. 달리기는 하는 만큼 느는 운동이여서 계속할 맛이 난다고 했다. 매일 달린 지 2달이 지나고 체중계에 오른 나는 깜짝 놀랐다. 68이 아닌 62라는 숫자가 떴다. 6kg나 빠지다니? 좋았다. 달리는 걸 멈추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룸메이트였던 D와 함께 달린 적이 있다. 이정도 꾸준함이면 뭐든지 할 수 있겠어요. D는 내게 말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충분히 그 증거가 되겠다는 D의 대답을 듣고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엄격하게 채식을 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죽은 동물을 먹고 싶지 않고, 동물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저항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동물권을 위해서 비건이 됐지만 그렇다고 육식에 대한 모든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갑자기 살이 찔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4kg
몸무게 58kg.
매일 달린 지 3개월이 지나자, 몸무게 앞자리가 6에서 5로 바뀌었다. 수능이 끝나고 살을 빼겠다고 저녁을 굶고 운동장을 10바퀴씩 돌아서 뺐던 그 몸무게였다.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이 편안하게 몸에 맞았다. 허리가 작아서 자크가 끝까지 안 올라가던 청바지가 오히려 남았다. 쾌감을 느꼈다. 바지를 벗을 때 억지로 벗느라 바지가 뒤집어지는 일도, 허리에 선명하게 옷을 입은 자국이 남는 일도 없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쇄골, 옆으로 쭉 뻗어도 아래로 처지는 살이 없는 팔뚝, 서로 붙지 않는 허벅지, 옆구리 살이 잡히지 않는 허리, 뒷목 가운데부터 등 중간까지 드러나는 척추뼈가 만족스러웠다.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이 편해졌고, 나도 이 몸무게가 편해져야만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원했던 마른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2kg
몸무게 56kg.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달렸다. 달리다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 16km를 달린 후로, 한 달에 한 번은 10km 이상을 달려야겠다는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어떻게 그렇게 달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달리기가 좋아서, 체력을 키우고 유지하려고, 건강한 루틴을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마른 몸이 좋아서요. 달리지 않으면 다시 살이 찔 거 같아서 무서워요. 예전의 통통한 몸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어서 짜릿해요. 거울속 내가 전보다 마음에 들어요. 이 대답도 진실이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2kg
몸무게 54kg.
평소처럼 공복에 뛰고 집에 돌아왔는데 속이 미슥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하루종일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또 억지로 달렸다. 그때의 나는 달리지 않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달리기는 내게 성실함이었고 체력이었고 그때 일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하루에 무엇이라도 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달리기라도 안하면 네가 하루 동안 한 게 뭔데? 꾸준함을 보여줘. 운동이라도 안하면 안 돼. 뛰어, 뛰어, 뛰어. 고기 먹지마. 마른 몸을 유지해.
+4kg
몸무게 58kg.
매일 달린 지 8개월이 된 8월, 장마가 시작됐다. 2020년, 그해 여름엔 비가 정말 무섭도록 내려서 매일 달리던 산책로가 통제됐다. 가끔이 아닌 매일 비를 맞으며 달릴 순 없었다.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빗소리를 들었다. 한 달 뒤,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하러 간 첫 날, 오열했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잘 돌보려고 애쓰기 전에 필요한 건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일이라고 했다.
+5kg
몸무게 62kg.
9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모든 운동을 그만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운동을 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다. 몸무게 앞자리가 다시 6으로 바뀌고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달에 몇 번 달리다가 끝났다. 다시 입을 수 없는 옷이 늘어났고, 편한 옷을 몇 벌 샀다.
+7kg
몸무게 69kg.
2022년 여름, 2년 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뒀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요리를 자주 했고 많이 먹었다. 식욕을 제어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육식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4kg
몸무게 73kg.
2023년 현재. 살면서 최대 몸무게라는 사실에 여전히 짓눌리지만 요즘은 강박적으로 운동을 한다거나 엄격하게 채식을 하지는 않는다. 저녁에 폭식을 하고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거나 몸이 싫은 건 여전하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입을 수 있는 바지가 4개정도라는 사실도 불편하다. 작아진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고 싶지도 않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하는 거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전보다 솔직하게 답한다. 달리고 싶은데 달리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