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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방 Oct 14. 2023

우리가 먹고 먹지 못했던 것들

J

(이이영 씀)


나는 포장된 음식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들고 온 것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 위에서 노트북을 치운 다음, 냉장고 옆에 따로 보관하는 1.5리터들이 빈 생수병 두 개 또는 세 개를 집어 한가득 물을 받는다. 싸가지고 온 봉지에서 음식이 든 일회용기들을 일부 꺼낸다. 먼저 테이블 위에는 김치나 단무지, 반찬이나 채소가 많은 음식을 꺼내든다. 그것들부터 먹기 시작한다. 김치나 단무지부터 위장 밑에 깔아둔다. 그러면 나중에 게워낼 때 김치 조각들이 후두둑 쏟아지고 신맛이 나면 먹은 걸 99퍼센트 다 토해냈다는 증거가 된다. 

<삼키기 연습>, 박지니


배부르다.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느끼는 감각. 어제 저녁에 먹은, 미처 다 소화되지 못한 음식들이 가슴 한가운데 모여 있는 것 같다. 이물감. 습관이 된 헛기침을 한다. 목구멍에 콱 박혀 있는 것을 빼내고 싶다. 밤 9시만 되면 짜고, 달고, 맵고 자극적인, 즉각적으로 나를 만족시켜 줄 음식을 찾는다. 그럼 밖으로 나가 편의점, 빵집,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돌며 먹을 걸 잔뜩 산다. 손에 든 것이 많아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빨리. 어서. 집에 도착하면 포장지를 찢어 아무거나 먹기 시작한다. 먹으면서 배달 앱을 켠다. 치킨이든 피자든 마라탕이든 뭐든. 그것이 매일 집 앞에 도착한다. 


반복적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을 책 속의 문장과 가만히 포개 본다. 먹는 일이 이상할 만큼 다급하고, 그래서 완전히 제압되어 버린 두 사람. 아니 수많은 여자들. 사실 우리에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걸 다 먹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선생님이 물었다. 

“한 시간 이내요.”


폭식한 지 이 년쯤 되자 살이 10kg 이상 쪘다. 혹사당한 위와 장은 거의 모든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먹었다. 배달의민족은 나를 귀한 분이라고 칭하며 메달을 줬다. 먹는 것이 끝나면 집 안에 쌓여 있는 플라스틱과 수북한 뼈 앞에서 죄책감을 느꼈으나, 얼마 못 가 잊어버렸다. 건강하고 싶은 마음도 외면했다. 먹고자 하는 욕구는 내 몸을 지배했다. 식욕은 내게 감히 건강한 미래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그래 기권이다. 나는 일 인분만 먹는 법을 모른다. 폭식으로 달려가지 않는 법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은 식이장애 센터였다. 


“스프링이 있어요. 여기에 압력을 가하면 어떻게 되죠? 튀어 오르죠. 하지만 스프링은 누르지 않으면 절대 튀어 오르지 않아요. 폭식 욕구도 마찬가지예요.”

감흥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생 때 74kg, 이십 대 초 64kg, 이십 대 중반 92kg, 이십 대 후반 74kg, 현재 94kg.”

그동안 체중이 어느 정도 됐는지 묻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기억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대충 그랬다. 몸무게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1년만 더 지내면 틀림없이 100kg이 넘을 거라고 말했다. 

“뭘 바라고 왔나요? 여기서 무엇을 도와줬으면 하나요?”

“평범하게 먹는 거요.” 

몸과 마음이 음식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가 ‘평범’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이십 대에는 48kg 같은 몸무게가 되고 싶었다. 매끈한 다리, 가는 허리. 거기다 복근. 그런 걸 욕망해야 한다고 배웠다. 항상 과체중이었던 나는 그런 건 꿈도 못 꾸고 그저 맞는 바지와 속옷만 찾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체중이 증가하면 일상은 더 불편해졌다. 작게 설계된 공간과 문화와 분위기 속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별로 없었다. 이런 나는 고쳐야 할 대상이었다. 한약 다이어트나 주사 시술을 찾았고 PT, 수영, 필라테스를 매일 했다. 무엇보다 먹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나를 통제할 줄 아는 강인한 정신력이 좋았다. 살이 빠지면 미래가 바뀐다는 문장을 믿었다. 먹지 마. 음식은 적이다.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간식을 세 번 먹어요. 음식을 약처럼 먹을 거예요. 시간이 되면 먹는 거죠. 그래야 폭식 욕구가 쌓이지 않아요. 스프링이 눌리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선생님은 꾹꾹 눌러 쓴 종이를 내밀었다. 식단 계획표였다. 

“어떻게 느껴져요?”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해방되는 ‘먹기’를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굶거나 폭식. 두 가지 선택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음식과 싸우지 않는 날이 올까? 선생님은 내게 다시 말했다. 다이어트는 멈추는 겁니다. 이건 살을 빼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아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거죠. 원래 내가 갖고 있었다는, 건강한-통제력.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네, 하고 대답했다. 


<규칙>

1. 하루 여섯 번 알람이 울릴 때마다 먹을 것.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것. 배가 고플 때까지 두지 않을 것. 

2. 식사 치료에 적극 참여하기.


그날 센터에서 한 여자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아예 못 먹는 사람과 너무 많이 먹는 사람과 모두 해당하고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식사 치료라고 했다. 형상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모두 먹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수저를 든 손이 떨렸다. 여자와 나 사이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먹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랬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치료사와 짧은 상담이 이어졌다. J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탄수화물이 무섭다는 이야기. 너무 말랐다고 음식을 권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다음엔 내 이야기. 매일 밤 먹은 것과 소화불량과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는 좌절감에 다시 먹은 이야기. 여자가 끄덕였고 나는 그 끄덕임에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우리는 인사하지 않고 헤어졌다. 


하루에 여섯 번 매일같이 음식이 쉴 새 없이 굴러오는 것 같다. 여전히 온갖 종류의 음식 앞에서 불안해지는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확실한 마음으로 먹고, 실패해도 먹는다. 그동안 삶의 방식과는 다르게, 더 자주 먹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어렵게 믿고 있는 여자들과 함께 먹는다. 내 몸에 새겨진 기억을 더듬으며 오늘의 폭식을 내일로 미룬다. 그러면 다음 날 다시, 알람이 울린다. 그 신호에 맞춰 입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이 건강하게 소화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입에 든 것을 꿀꺽 삼킨다. 


어떤 사람들은 진창 속에서 흙덩어리를 입에 넣으며 벌레 같이 산다. 그러나 그런 삶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삶이 죽고 또 죽은 틈에서 상처투성이의 빛 같은 삶이 잠시 출현하기 때문이야. 

<삼키기 연습>, 박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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