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약속 취소, 남편의 한 마디가 조금 서운했다. 그러나 금세 괜찮아졌다. 예전 같았다면 며칠은 마음에 남았을 텐데, 왜 그런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선택한 ‘퇴사’에 후회가 없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출근을 위한 기상이 아니라, 등원을 위한 기상이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냄비에 물을 올려 계란을 삶는다. 혹시 모를 농약 제거를 위해 사과를 뽀득뽀득 씻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는다. 아침엔 아이들에게 탄수화물을 먹이는 게 좋다던데, 어떤 날은 빵을, 어떤 날은 고구마다. 유산균과 비타민D는 필수, 단백질인 계란부터 먹이도록 권한다.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며 스몰 토크도 한다.
“오늘 날씨가 춥지만 햇빛이 쨍쨍하네. 오늘은 즐거운 일이 몇 개나 생길까?”
이런 대화 이후 첫째 아이는 “오늘은 정말 즐거운 날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두 아이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가방을 챙겨 5분 거리 어린이집에 등원을 마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식탁 아래에는 흘린 음식이 가득하고, 둘째의 젖은 기저귀가 바닥에 뒹군다. 침대 위에는 이불과 베개가 뒤엉켜 있다.
“아얏!”
첫째가 갖고 놀던 블록이 발바닥을 찔렀다. 아이들은 왜 모든 장난감을 이렇게 섞어서 노는 걸까. 일부러 정리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하… 이거 언제 다 치우지.’
등원을 마치고 나니 괜히 더 피곤해져 침대에 눕는다. 너무 포근하다.
몇 분쯤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서둘러 아점을 먹고 집을 정리한다. 일단 거실만 깨끗해 보이도록 대.충. 치운다. 나는 12시에 나가야 하고, 이 집은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다. ‘남의 집 청소를 대신해 주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묘하게 속도가 붙는다.
12시에 가까운 스타벅스로 나만의 출근을 한다. 도보로는 애매하게 멀어서 차를 몰고 갔다. 쿠폰이 있나 뒤져보고, ‘리워드 별’도 확인해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아쉬운 마음에 충전을 하고 사이렌 오더로 주문한다. 스타벅스는 왠지 내 돈으로 사 먹기 아깝다. 퇴사 후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1일 1포, 그리고 브런치 글쓰기를 목표로 노력한다.
‘나는 작가다’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머리를 쥐어짜도 글이 안 나올 때가 많다. 그럴 땐 책을 펼친다. 요즘 읽는 책은 『내 삶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다.
블로그 체험단도 신청하고, 실업급여도 챙긴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하원 시간은 4시. 4시 이후는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아이들을 데려와 간식을 먹이고, 저녁을 준비한다. 안아 달라는 둘째를 달래고, 투닥거리는 두 아이를 말리며 모든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멀티태스킹의 정점이다. 두부를 썰다가 싸움을 말리고, 둘째를 안은 채 고기를 볶는다. 정신이 흐릿해질 즈음, 미리 만들어 둔 밑반찬과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로 한 상이 완성된다. 반찬 투정 없이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설거지는 남편 몫이다. 식세기가 있지만, 남편은 손 설거지가 좋단다.
‘그럼… 그러세요.’
아이들이 노는 동안 잠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히 청소한다. 씻기고, 이를 닦이고, 9시에 불을 끈다. 밤이 되면 갑자기 활기를 띠는 아이들은 한 시간쯤 더 놀다가 잠든다. 나도 눕는다. 피곤해서인지 잠이 솔솔 온다. 내일은 좀 더 생산적으로 살아봐야지.
퇴사 후의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워킹맘으로 살며 퇴사를 고민했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해주신다면 응원과 구독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