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 우리 한번 봐야지.”
“그래. 12월에 보기로 해 놓고 일 때문에 못 봤네. 1월 15일 점심 어때?”
“좋아. 식당 찾아보고 전날 다시 연락할게.”
전전 직장 동료와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남편을 제외한 ‘성인’과 대화를 할 생각에 괜히 들떴다. 성수동은 멋집과 맛집이 많아 늘 새로운 궁금증이 있는 동네였다. ‘어디서 밥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휴대폰 캘린더에 약속을 저장했다.
약속 하루 전날이었다.
“내일 12시까지 회사 앞으로 가면 되지?”
“헉… 어쩌지. 요즘 회사 일 터진 거 뉴스로 봤지? 그날도 비상이라 못 만날 것 같아. 미안해.”
“아이고,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 달에 만나.”
“응, 다시 연락할게.”
약속은 생각보다 쉽게 취소됐다.
업무가 우선인 상황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날짜를 잡지 않는 친구의 태도가 묘하게 섭섭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다. 아마 바쁜 일상 속에서 나와의 약속은 잊혔을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애써 넘기며 인스타그램을 켰다.
예전부터 입어보고 싶었던 인조 퍼(Fur) 반코트를 공동구매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도 10만 원 이내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정말 오랜만에 옷을 주문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자랑했다.
“이거 봐봐. 예쁘지? 에코 퍼 반코트인데 색이 너무 예뻐.”
“그러네. 그런데 너무 싼 거 아니야? 이왕 사는 거면 제대로 된 걸 사지.”
“처음 입어보는 스타일이라 그냥 한번 입어보려고. 공구라서 싼 것 같아.”
“공구를 사기만 하지 말고, 자기가 팔아보는 것도 생각해 봐.”
남편은 늘 T였다. 공감보다는 분석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아니, 퇴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돈을 벌으래."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그런 식으로 자기가 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경제적 주체로서 ‘나의 수입’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손이 많이 가지만, 언젠가 내 손이 덜 필요해질 날이 오면, 나만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퇴사 이후의 평온한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주 작은 불안이 마음 한쪽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한 균열.
그러나 분명히, 내 마음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었다.
워킹맘으로 살며 퇴사를 고민했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공감해주신다면 응원과 구독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