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내·엄마·직원, 그 아래 남겨진 ‘나’
아,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나를 속이며 버티는 월급쟁이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퇴사를 앞두고서야 비로소 묻게 된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부모님의 ‘딸’로 27년쯤 살다가 취직을 하니 ‘매니저’가 되었고, 몇 년을 더 살다 결혼을 하자 ‘아내’와 ‘며느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나를 칭하는 단어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어른이 되어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좋았다. 그런데 그 많은 호칭 아래에 있는 ‘나’는 묘하게도 조용했다.
패기 넘치던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커리어 하이보다는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원하게 되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이 당연하고, 일이 많지 않아 버겁지 않은 날들이었다. 큰 욕심 없이 하루를 버텨내는 삶. 괜찮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 그 직장에 머물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게 느껴졌다. 회사에서의 ‘일’은 반복적이었고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오래된 문제였다. 이런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다.
“야, 그런 직장 또 없어. 그냥 정년까지 쭉 다녀.” 그러면 나는 “역시 그렇지?” 하며 스스로를 설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차일피일 퇴사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미뤄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던 날들이 자꾸 떠올랐다. 정리되지 못한 집은 늘 엉망이었고, 아이를 제시간에 데려다 주기 위해 매일 숨이 찼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아이를 건네며 “엄마 잘 다녀올게, 이따 만나자”라고 말하면,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아이의 눈은 금세 눈물로 가득 찼다. 아이는 두 손을 내밀며 “엄마—” 하고 크게 울었다.
그 장면을 등지고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 미안해서, 나도 울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다. 급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고, 그 이후로는 비교적 한가롭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에 앉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완벽한 엄마도 아닌, 든든한 직원도 아닌 나의 모습이 싫었다. 무엇보다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괴로웠다. 회사를 키우기보다는, 나와 나의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엄마이면서도,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직 ‘무엇이 되겠다’는 답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질문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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