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골 이야기
ㄴ
◇1부
'놀러와'에 서울예대 89학번 4명의 친구들이 나왔다. 장진, 장항준, 장현성, 정웅인!
난 87학번이지만 88 때 휴학하고, 다시 89 때 다녔기에 이들 네 명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거의 나의 이야기와도 흡사하다. 실제로 정웅인은 늘 마당에서 공을 차거나 하는 모습을 봤었다.
이들처럼, 나의 20대는 남산골에서 시작되었다. 비교적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고교시절부터 집안이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 부모님은 그래도 맏딸인 내게 많은 기대를 걸고 계셨기에 1년 간 재수를 시켜주셨다. 하지만 난 고교시절부터 거의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미래를 고민하기는 했지만, 글 쓰는 건 기본이라 생각했고, 일찌감치 신문. 방송. 출판. 언론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꿨으나 당시만 해도 언론고시라는 높은 장벽 앞에서 내 꿈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고, 막연히 문창과로만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중대, 서울예대, 추계예대 세 학교 밖에 문창과가 없었다. 부모님은 웬만하면 부산으로 진학하기를 원하셨고, 처음부터 문창과로 가려했으면 중대에 지원이라도 해봤을 거다. 어렸을 때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울에 오는 게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안성캠퍼스로 간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부담이 되었다. 서울에는 그때 외삼촌, 이모들이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뭔가 비빌만한 언덕이 있는 느낌이었고. 암튼 중대 갈 기회는 놓치고 재수까지 해서 갈만한 학교가 없어서 결국은 서울예대로 진학했던 거.
막상 서울예대를 가려니 연극과에 가고 싶었지만, 난 희곡을 전공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연기에 관한 질문을 하거나 시키시면 어쩔까 싶어 그나마 자신 있는 문창과로 진학했다. 당시 '봄'이라는 주제로 산문을 써서 입학 실기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입학하고 휴학하기 전 1년을 아주 열심히 보냈다.
◇◇ 2부
입학하면서 서울예대 방송국(SABS)에 지원했다. 그리고 동아리는 연극과에 지원하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당시 서울예대 공연예술 동아리 중 최고였던 '만남의 시도'에 가입했다. 나중에 방송국 활동에 전념하는 바람에 당시 회장이었던 연극과 선배가 하나에 올인하라 해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열심이었다. 나중에는 영화 서클에도 가입해서 젤소미나가 나오는 '길'같은 영화를 보고 크게 감동받았던 기억도 나고.
서울예대는 자유분방하고 학생들의 기를 살려주는 학교였다. 우리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방황했다.
난 전형적인 문창과 학생들과는 다르게 글 쓰는 거보다 학교 방송반 생활과 사진과 나 무용과 연극과 응용미술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했던 거 같다. 문창과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칙칙해서 싫었다. 글 쓰는 친구들이라고 진지한 점은 좋았는데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오거나 직장 생활을 하다가도 글이 쓰고 싶어 온 친구들이 많고, 나이를 제법 먹고 온 사람들이 많아 갭이 느껴졌던 것.
그래도 재밌었다. 국악과 언니가 당시 방송국 박수부대 아르바이트를 시켜줘서 한 번 알바 뛰면 2만 원을 받았던 거 같은데 그걸로 일주일 용돈을 썼다. 그리고 홍대 앞에서 방연과 선배가 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방학 때는 당시 이모집 근처에 있던 연신내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곳에서 또 여러 추억이 있는데 내가 아르바이트하기 전 최진실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하고 지금 대배우 된 이범수도 그때 그 연신내 롯데리아에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이범수는 나중에 중대로 다시 진학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태은이라는 같은 영화과 친구랑 둘이 나를 선배라고 잘 따랐다...
이후 장진은 신춘문예에 등단하면서부터 지켜보았다. 초등 동창 상근이가 영화 제작일을 하게 되어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제작발표회에 초대되어 갔는데 그때 장진을 보았다. 장현성도 서서히 이름을 알렸고, 장항준도 잘 되었다. 그밖에 서울예대 동문들, 잘 되고 있다. 가장 대단한 건 역시 신경숙 선배다. (이후 표절시비로 시끌시끌 하지만...)
직속 선배라 문예중앙에 데뷔할 때부터 작품을 다 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편은 제대로 읽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는 지금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있고, 동기인 함민복 시인도 늘 닮고 싶은 형이다.
◇◇◇ 3부
지금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잊고 있던 대학시절이 생각나서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뭐가 되어있을까를 종종 생각하곤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간 쉬다가 외삼촌 소개로 오피스 걸이 될 뻔한 것을 친구네 놀러 갔다가 PD로 입봉 하는 친구 오빠의 소개로 방송일을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토토즐' 같은 아이디어맨을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차인태의 출발 새 아침'에서 구성작가를 뽑는다길래 응모해서 1,2차 붙고, 3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당시 대부분 교사들, 뭐 그런 분들이 왔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한동안 꿈을 접었다가 어디 취직이라도 해야겠기에 다시 서울로 왔다가 친구 오빠 프로그램으로 방송 일을 시작했던 것.
나는 내가 원하던 방송일을 하고 있고,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글을 아직 못써본 기분이다. 올해는 심기일전해야겠다. 20여 년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너무 더디 왔다. 이제는 다른 곳에 눈 돌리지 말고 집중해야겠다.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세상은 더더군다나... 남들의 성공에 손뼉 치기 전에 내게 채찍을 가해야겠다.
※2012' 페북에 올렸던 글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