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이별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용기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신 새벽에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별의 예감이 농후한 문장. 석 달을 넘지 못했다. 가끔은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인 나를 원망한다. 장문의 문자는 친구로는 남자는 게 요지다. ‘그래, 우린 여전히 친구야.’ 했지만, 가슴 한 구석에 싸한 바람이 휑하고 지나갔다.


지난봄, 나는 연애를 했다. 생각만 해도 달달한 ‘연애’. 것도 봄날의 연애를…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중년에 접어든 나는 ‘과연 사랑은 있는가?’라는 오랜 명제를 안고 사는 독신녀이다. 고독한 중년 독신녀에게도 봄은 온다. 전 세계적인 판데믹,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도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었고, 메말라가던 내 마음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온 것이다. ‘먼 길을 돌아온 사랑!’ 아주 오래전 인연이었지만, 우정이었던 그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느닷없이 다가왔기에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열렬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달달한 순간들은 100일을 채 못 채우고, 두 달 보름 만에 끝나버렸다. 아직도 우리가 함께 했던 울진 앞바다의 태양과 바람과 여명과 파도가 눈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각보다 견디지 못할 만큼의 아픔과 충격은 아니었다. 감정에도 굳은살이 박이는 건 지, 의외로 담담한 내가 스스로도 놀라웠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은 허전했지만, ‘그래, 연인으로서의 인연은 여기 까진가 보다.’라고 순응하게 되었고, 나의 일상과, 나의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도 후유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어젯밤, 꿈자리가 아주 뒤숭숭하였고, 순간순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직도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그의 ‘이별 선언’이 서운하고,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이 되어 이제는 친구로 돌아간 그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다. 가끔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쉽고도 아득한 마음이 되고는 한다. 헤어졌어도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은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그와 나를 채근하는 대신 운명을 탓할 뿐이다. 출근길, 전철 환승역에서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려 보다가 며칠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 돌아오곤 했다.


확실히 세상일을 많이 경험하고, 고난과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더 단단해지고, 내공이 쌓여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나는 나이만 먹은 어른 아이처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나’를 추스르지 못할 만큼의 시련과 좌절은 없었으니 하늘에 감사해야 할까?

나는 아직 혼자의 몸이고, 누구를 건사해야 될 의무도 없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가 속한 사회 안에서 적어도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다 하면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별 앞에서 매몰당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것만큼, 매사 일도 사랑도, 삶도 그렇게 대해왔다.


누군가 “아직도 사랑을 믿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통속적인 말을 빌지 않더라도, 큰 시련은 없었어도 그간 사랑 때문에, 돈 때문에 아파본 적은 많다. 그래도 여전히 다시 사랑하고 싶고, 가난해도 기죽지 않고 버티면서, 견디면서, 여력이 되면 이웃과 더불어, 남도 좀 돌아보면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위험 앞에서, 절망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지 않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 ‘이별’이 나를 나답게 한다. 이제는 ‘나’를 돌볼 시간, ‘나’를 사랑해야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더욱더 잘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랑은 씁쓸하게 뒷모습만 남기고 떠났지만, 나는 훌훌 털고 용기 있게 세파를 뚫으며 나의 길을 간다.

#나도작가다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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