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은 신비하고, 여름은 힘들다
평안이가 움직이면 물에 잠수할 때 들리는 소리가 나고
움직이면 북을 치듯 둥둥 울린다
2주 전만 해도 어른뱃속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소리의 스케일이 커지고 움직임도 거대해졌다
평안아 아빠는 평안이를 품고 있지는 못해서 엄마처럼 하루종일 평안이가 노는 걸 느낄 수 없지만 아빠는 할 수 있어도 엄마가 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단다
바로 평안이가 엄마뱃속에서 움직이며 나는 꾸르륵 소리를 매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지. 마치 물속에 잠수할 때 나는 소리처럼 뽀그르르르 나는 귀여운 소리.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 다시 들으니 이제는 평안이가 움직이면 둥둥 북소리가 들리는 정도란다.
지금 여기는 많은 인명을 앗아간 무시무시한 장마가 끝나고 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단다. 이 길고 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 평안이를 만날 수 있겠지
무더운 여름밤 에어컨 바람을 쐬며
- 아빠가
평안아 이제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단다. 평안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한반도의 여름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날씨였단다.
7월에는 어마어마한 장마와 국지성호우가 덮쳐서 거의 2주가 넘게 비가 쏟아졌고, 하루에 최대 400미리가 넘는 비가 오는 곳도 있을 정도로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물난리에 산사태까지 발생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다.
그렇게 비가 오던 한반도는 지난 폭우로 생긴 물웅덩이의 물이 마르기도 전에, 물에 젖은 수건 같던 날씨가 무색하게 붙볕더위가 찾아와서 이제는 매일 35도가 넘는 날씨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단다. 아빠는 더위를 매우 많이 타는 체질이라 더운 여름이 힘들지만 그래도 사무실에 앉아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란다.
그래도 밖에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도 한철이라고 했던가. 가을이 오는 신호가 느껴지고 있어서 희망적이란다. 그리고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단풍이 전국을 뒤덮는 아름다운 때가 오면 평안이도 세상에 나오겠지?
엄마아빠는 그날이 너무 기다려진다. 엄마뱃속에서 평안히 지내다 만나자 평안아
- 여름의 막바지에 아빠가
엄마는 평안이를 가지고는 부쩍 더워한단다. 아이를 가지면 기초체온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엄마는 임신 중·후기를 한여름에 겪으면서 더 심한 것 같아.
보통 여름이 되면 아빠가 더워서 심하게 고생을 하는데 이번 여름은 엄마도 만만치 않게 고생을 하고 있단다. 특히 중·후기로 넘어오면서 유독 심해진 것 같아
아빠는 원래 조금만 더워져도 땀도 많이 흘리고, 더위를 못 견뎌하는 체질이란다. 이런 체질 때문에 군대에서는 조금만 일해도 열심히 한참 동안 일한 것처럼 땀을 뻘뻘 흘려서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다른 부대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단다.
반면 엄마는 땀이 잘 나지 않고 더워도 타지 않아서, 예전에는 이런 아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요새는 엄마가 오히려 새벽에 덥다고 깨는 경우가 많아졌어. 지금은 한여름도 아니고 더워도 식어가는 중이라 새벽에는 그렇게 더운 날씨도 아니라 아빠는 쾌적하게 잘 자고 있는데 말이지
아마 아빠를 닮아 살짝 뜨거운 평안이를 품고 있어서 가 아닐까 싶기도 하단다
평안아 이제 시원한 가을이 오니까 엄마랑 시원하게 지내면서 세상나들이를 기다려볼까?
- 제주도 여행을 앞둔 새벽에 더워하는 엄마를 위해 에어컨을 켜주고 있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