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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제주 Oct 22. 2023

[7]. 아빠가 될 준비

반환점을 돌다

17주 4일

 아빠는 평안이가 나올 때를 대비해서 육아책을 읽고 있어. 욕심부려서 많이 빌리기는 하는데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빠도 퇴근 후에 책을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단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어. 사람들을 보면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와 행동, 가치관 심지어 사소한 습관까지도 놀랍도록 부모를 닮아가게 되곤 해. 그렇기에 선배 엄마아빠들의 얘기를 읽다 보면 아빠도 부모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다. 아빠는 항상 회사에서도 그런 고민을 해. 내가 연차가 오래되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지도할 능력이 있는지, 과연 내 판단과 결정과 행동들이 다 옳다고 할 수 있을지


 평안이에게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게 된단다. 과연 아빠가 얼마나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서 평안이가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아빠의 행동이 평안이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행동인지, 또 아빠가 스스로도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과 무의식적 행동들을 평안이가 닮거나 따라 하게 되지는 않을지. 


 아빠도 여러 가지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한 모범이 될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아빠는 평안이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거친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침반이 되어주고 싶어. 그래서 지금부터 많은 준비를 해두고 노력해 볼게


그럼 이만 총총

- 원래 걱정이 좀 많은 아빠가 




18주 5일

 엄마는 임신기 근로단축으로 2시간씩 일찍 퇴근 중이야.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라도 모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 아닌데 다행히 엄마는 좋은 직장을 다녀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거란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제도이지만 조금 부족하다는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고 배부른 생각이 들어. 임신한 엄마가 집에 일찍 와서 쉴 수 있는 건 좋지만, 아빠는 8시간의 근무를 하고 집에 오면 필연적으로 엄마가 입덧으로 힘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사준비를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단다. 엄마는 입덧을 할 때는 음식 냄새도 맡기 싫은데 요리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말이지. 게다가 요리는 물론이고 각종 집안일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지게 돼있어.


 그래서 0.7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아빠도 임신기에 2시간 단축 근로를 시켜줘야 하지 않나라는 조금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 그래야 아빠가 좀 더 임신으로 힘든 엄마를 보살펴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는 실현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아빠들을 위한 임신기 복지를 늘려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짐을 조금 나눠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 




21주 0일

 어제는 평안이를 보러 병원에 다녀왔단다. 평안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어


 평안아 그런데 엄마아빠가 특히 아빠가 여름에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아니? 그건 바로 수박이란다. 달고 시원한 수박. 더위를 많이 타고 원래 물도 많이 마시는 아빠는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더위를 달래곤 한단다. 여름에는 매일 수박을 먹어서 수박 때문에 살이 찔 정도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다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어. 임산부가 먹으면 태아가 잘 커지는 게 뭐냐고 물어보셨는데 정답은 슬프게도 바로 수박이었단다. 엄마아빠가 없어서 못 먹는 수박.


 평안이는 이미 주수보다 1주 정도 큰 상태인데 임산부가 수박을 많이 먹으면 태아가 켜져서 나중에 세상에 나올 때 엄마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어. 냉장고에는 며칠 전 강릉여행 다녀오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빠져서 아빠가 태어난 음성군에 있는 맹동하나로마트까지 가서 사 온 10kg짜리 수박이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남은 수박을 조금씩만 먹고 이미 사놓은 수박을 다 먹으면 올여름에는 참아볼 생각이란다. 엄마와 평안이를 위해서라면 수박쯤이야. 다른 과일을 먹으면 되니까


평안아 세상에 나오면 엄마 아빠랑 맛있는 수박 많이 먹자! 




21주 2일

 평안아 엄마랑 아빠가 평안이를 위해 얼마나 이것저것 신경 쓰고 걱정하면서 사는지 아니?


 엄마는 평안이를 가지기 전부터는 물론 가진 후에도 평안이를 위해 영양제를 종류별로 엄청 챙겨 먹고 있어. 그중에 하나는 산부인과에서 한 검사에서 부족하다고 나온 비타민D도 추가적으로 챙겨 먹고 있단다.


 그런데 엄마가 비타민D 섭취량을 계산해 보니 일반적인 1일 권장량 보다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비타민D는 지용성이라 수용성 비타민들과 다르게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쌓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엄마는 그동안 비타민D도 수용성이라 과다 섭취해도 배출되는 줄 알고 있었대


 그때부터 밤 열두 시에 갑자기 엄마가 폭풍오열하기 시작했단다. 엄마는 비타민D를 과다섭취해서 혹시나 평안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본인이 잘 알아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먹었다고 심하게 자책을 했어


 아빠도 마음이 좋지 않았어. 아빠는 비타민D가 몸에 쌓이고 그게 정말 좋지는 않다는 걸 어렴풋이 들어보기는 했었거든. 그리고 엄마가 비타민D가 부족해서 추가로 먹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아침마다 엄마가 잊어버리면 챙겨주기도 했는데 적정 용량을 먹고 있는지는 깜빡 챙기지 못했어. 그렇게 한밤중에 엄마는 한참을 오열을 했어. 그러다가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임산부는 일시적 고용량을 섭취하기도 하고 엄마가 먹은 양이 부작용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찾아보고는 조금 진정이 되어갔어


 평안아 엄마랑 아빠는 조금 무심한 듯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긴 하지만 평안이에 대해서라면 관심도 걱정도 많단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평안아. 엄마 아빠는 평안이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도록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단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렴


- 평안이를 항상 걱정하는 초보엄마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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