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관문일 뿐
이 시기는 태반이 완성되는 시기라고 하더구나. 평안이도 엄마도 과도기를 넘어 조금은 안정되는 시기라는 의미겠지?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엄마의 입덧이 시나브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은 이를 12주의 기적이라고 하기도 하고, 책이나 각종 정보를 찾아보면 이 시기부터는 입덧이 완화되고 오히려 식욕이 왕성해지는 먹덧이 시작되면서 체중조절을 해야 되는 시기라고 하는데, 엄마는 12주가 되어도 입덧증상이 계속되니 조금 우울해하고 있어. 하지만 13주에서 14주를 넘어가면서 힘든 입덧의 시간이 지나가는 한줄기 희망이 보이고 있단다. 이제 평안이 먹고 싶은 거 많이 먹도록 할게
아빠는 요새 밤마다 자기 전에 엄마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고 있어서 평안이가 커감에 따라 엄마배가 조금씩 커지는걸 아주 잘 느낄 수 있는데, 이제는 배가 아빠 배정도로 커진 것 같아. 엄마배가 불러오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보면 잘 먹는 것 밖에 하는 게 없는데도 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된단다. 앞으로 평안이가 커가면서 이런 부분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 같아.
밤마다 평안이 읽어주려고 도서관에서 동화책도 빌려왔는데 매일 읽어주기는 쉽지가 않은 것 같아. 아빠의 게으름이겠지만 현대 직장인은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단다. 그래도 평안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많이 읽어주려고 노력할게.
그럼 오늘도 잘 자렴
- 아빠가
엄마는 입덧이 가라앉고 있는 듯 보이지만 또 다른 강적이 나타났어
이미 몇 주전부터 엉덩이 근육 쪽 통증을 호소했는데, 최근에는 그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오늘은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단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통증은 "환도 선다"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뱃속의 아기가 커가면서 골반이나 엉덩이 근육을 누르면서 생기는 통증인가 봐. 해결책이라고는 마사지를 받거나 방석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는 출산을 해야 해결되는 것 같기도 해. 엄마가 말하길 골반뼈가 뒤틀리는 느낌으로 엄청 아프다고 해
아빠가 엊그제 자기 전에 살짝 마사지를 해줘서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전문가도 아닌 아빠가 함부로 마사지하다가 상태가 더 안 좋아질까 봐 세게 누를 수가 없었어. 그래도 오늘은 엄마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저녁 먹고 또 마사지를 해줬단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걷는 것도 앉는 것도 간신히 하는 상황이야.
아빠가 축구하다 근육이 다쳐서 잘 걷지 못하던 때의 그런 느낌일까? 그걸 훨씬 뛰어넘는 고통이겠지?
이런 일들이 많이 반복되다 보니 평안이를 기다리는 것이 많이 설레기도 하지만, 아직 엄마의 배는 많이 부르지 않았는데 여섯 달 동안 앞으로 어떤 난관이 기다릴지 걱정도 많이 된단다.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씩씩하게 평안이가 세상에 나오는 그날까지 잘 극복해 나갈 거란다. 평안이는 걱정 말고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하렴
오늘은 산부인과에 가서 평안이를 만나고 왔어.
평안이를 만나러 가는 날은 오늘은 평안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기대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지 긴장도 되는 날이란다. 아빠는 매일 밤 엄마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면서 평안이가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평안이가 자라는 모습을 매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서 불안한 마음이 있거든. 게다가 엄마들은 그 불안감이 더 크다고 해.
조금 일찍 퇴근해서 간 병원은 오늘따라 부산했어. 여러 대의 소방차가 병원 앞에 줄지어 서 있었고, 소방관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어. 어디선가 연기를 봤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소방관들이 확인 중이었어. 이걸 보고 아빠는 속으로 평안이가 건강하게 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도 들었단다. 잔칫집이 부산스러운 것처럼 말이지.
초음파를 통해서 본 평안이는 엄마아빠의 바람대로 무럭무럭 잘 크고 있었어. 머리가 주수보다 조금 크고 옆에서 보면 뒤통수가 톡 튀어나왔는데 그건 아빠 닮아서 그런 것 같아. 거부할 수 없는 유전의 힘이란다. 앞뒤가 툭 튀어나온 짱구머리. 그래서 아빠는 중학교 때 별명이 짱구였어. 예쁜 두상이란다.
엄마랑 아빠는 아직 작기만 한 평안이가 4주에 한 번씩 볼 때마다 점점 아기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과 손가락과 발가락을 쉼 없이 움직이는 게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어. 지금도 이런데 엄마배가 점점 더 불러오고 태동을 느끼고, 뱃속에서 나와서 눈앞에 나타나면 얼마나 신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열 달의 임신기간이 언제 지나갈까 했는데 어느덧 다섯 달만 있으면 평안이를 볼 수 있겠다.
남은 다섯 달 동안 엄마랑 아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가 될 준비를 잘하고 있을게. 평안이는 아무 걱정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렴
-봄이 한창인 집에서 아빠가
지난달에 엄마를 괴롭히던 엉덩이 통증 얘기를 궁금해할 것 같아서 얘기해 보려고 해.
지난달 말에 엄마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엉덩이가 아파서 월말에 예정된 여수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걱정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어. 하지만 결말은 싱겁게도 여행출발과 함께 통증은 사라졌어. 여행을 출발한다는 즐거움도 있었겠지만 출발전날에 있었던 자격증 시험이 문제였던 것 같아
엄마는 시험을 준비한다고 계속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하루종일 앉아서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퇴근하고는 도서관에 가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했거든. 그게 아마 통증을 유발한 이유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이런 이유들과 함께 평안이를 가지면서 만성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운동부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
무엇보다도 시험직전에 수험생은 이유 없이 아프게 마련이거든. 고등학교 다닐 때 고3병이라고도 불렀는데, 고3들은 이유 없이 여기저기 다 아프거든. 소화불량, 허리통증 등등. 하지만 수능이 끝나는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픔은 사라지곤 하지. 아마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야. 아빠도 고시공부할 때 시험직전에 이유 없이 눈이 퉁퉁 붓기도 하고 그랬거든.
결론은 엄마랑 아무 문제 없이 2박 3일 여수여행 가서 순천만정원박람회장도 한 바퀴 돌고 오동도도 산책하고 열심히 잘 돌아다녔어. 물론 내륙에서는 맛보기 힘든 해산물 가득한 남도의 맛있는 밥상도 잘 즐기고 왔단다.
평안아 엄마랑 아빠는 이렇게 우당탕퉁탕 즐겁고 재미있게 평안이를 만날 날을 향해 다가가고 있단다. 평안이도 세상에 나오면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고 다니자. 세상은 참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은 곳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