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를 멈춘 집은 더 빨리 늙는다
집은 언제나 ‘냄새’로 먼저 기억된다.
나는 할머니 집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그 집의 공기 냄새가 생각난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들어가면
따끈한 결명자차를 끓이는 냄새,
햇빛에 말린 세탁물 냄새,
갓 다린 옷에서 나는 미세한 스팀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그 냄새는 누군가가 ‘살아 있는 집’에서만 나는
아주 따뜻한 기운과 같았다.
보글보글 결명자차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면서 거실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안으면
옅은 화장품냄새와 때로는 파마약 냄새가 나기도 했다.
미용실을 다녀오신지 며칠 안됐구나하며 할머니의 일상을 가늠해보기도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었다.
할머니는 자주 창문을 열었다.
“집이 숨을 쉬어야 사람도 오래 산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할머니네는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동네사람들도, 자녀들도,
사람들이 오고 갈 때면 할머니는 늘 환기를 했다.
아니면 할아버지가 평생 환자로 지내셔서 바깥출입이 수월치 못하니 바깥공기를 쐬어 드리기위해서 그러셨나?
그 말이 그땐 그냥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제야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집도 사람처럼 호흡이 필요하다는 걸.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할아버지만 계셨던 그 집은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혔다.
숨을 쉬고 싶지 않을 만큼 탁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바람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방 특유의 눅눅함,
노인의 묘한 체취, 묵은 공기의 답답함.
특히 할아버지의 방은 환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창문을 여는 일 자체가 번거롭기도 했을 것이고,
창문을 열면 찬바람도, 햇빛도 들어와 싫었을 것이다.
그 탓에 나는 방문할 때마다 들어서면서 일부러 현관문을 닫지 않았다.
충분한 환기가 될 때까지 활짝 열어 두었다.
마치 집 전체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기분으로.
이후에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집이 비게 되었을 때의 공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사람의 손길이 사라진 공간은
놀랄 만큼 빠르게 기운을 잃는다.
곰팡이 냄새, 축축하게 배어든 먼지,
보이지 않는 벌레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누구도 살지 않는 빈 집의 냄새.
그 공기를 들이마신 순간
이 집은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집은 사람보다 먼저 늙지 않는다.
사람이 떠나야 비로소 늙는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냄새, 그리고 공기다.
내가 아침마다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발코니(베란다) 문을 여는 일이다.
습관이라기보다 ‘집을 깨우는 행위’에 가깝다.
더불어 나도 잠에서 깨어난다.
언젠가 엄마가 해준 말이 있다.
“청소를 자주 하는 것보다 환기를 자주 하는 게 집안이 더 깨끗해진데.”
그 말은 나의 효테리어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공기는 곧 건강이고,
공기는 곧 정서이며,
공기는 곧 그 집의 ‘노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집 안 공기가 정체되는 구간은
곧바로 습기 → 곰팡이 → 오염 → 악취로 연결된다.
특히 고령자의 집은 환기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창문 여는 일이 위험하기도 하고
바람을 싫어하거나
난방비, 감기, 소음 걱정 때문에
문을 닫아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닫힌 공간에서 오래 지내면
어르신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호흡기 질환도 오히려 증가한다.
심지어 실내 오염 물질이 외부보다 5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결국 환기란,
노인에게는 숨의 통로,
집에게는 회복의 시간이다.
나는 효테리어를 하면서 늘 느낀다.
노년의 집에서 환기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지내기 위한 조건”이다.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기운이 가라앉고
심리적 안정감도 떨어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생활기능도 약해지고
자립성도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냄새는 마음을 지치게 하는 구조적 문제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들 집에 가면 항상 이렇게 확인한다.
창문이 자주 열리는(열 수 있는) 구조인가?
환기하려면 위험한 동작을 요구하지 않는가?
공기의 흐름이 막히는 가구 배치가 있는가?
냄새가 머무는 사각지대는 없는가?
사람을 돌보는 일은 그 사람이 들이마시는 공기부터 살피는 일이다.
우리는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기청정기, 탈취제, 디퓨저를 떠올리지만
노년의 집에서 가장 좋은 공기는 기계에서 나오는 공기나 인위적인 향기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연 바람이다.
피톤치드 제품보다 실제 숲의 바람이 더 좋듯,
향초보다 창문 너머 바람이 더 깊이 스며들듯,
집은 자연의 공기를 받아야 살아난다.
물론.. 봄 철 미세먼지경보라던지, 바깥에서 엄청냔 규모의 공사가 있다면 자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평소의 가장 좋은 환기법은 간단하다.
아침 기상 직후 10분 환기
욕실 사용 후 5분 환기
주방 요리 중, 또는 직후에 창문 열기
하루 한 번은 집 전체 바람 길 열어주기
베란다와 방 사이 문을 완전히 열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집 안에 냄새를 ‘가둬두지 않기’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 집의 공기가
따뜻하고 생동감 있었던 이유는
그 냄새 속에 할머니의 생활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끓이고, 빨래를 널고, 다림질을 하고, 창문을 열던
작은 생활의 흔적들이 공기를 살려주었다.
할머니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도 이리 저리 모였다 흩어지면서 냄새를 만들었겠지.
반대로 두 분이 떠난 집에서 느껴진
무거운 공기의 냄새는
“이곳에는 이제 더 이상 삶이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에 창문을 연다.
내가 사는 이 집이 ‘살아 있는 집’이 되기를 바라며.
엄마께 안부전화를 하면서도 환기안부를 꼭 묻는다.
집은 바람을 타고 늙고,
바람을 타고 회복된다.
숨 쉬는 집이 오래 산다.
공기 흐르는 집이 사람을 살린다.
환기는 결국, 집과 사람을 함께 살리는 가장 단순한 돌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