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아끼며 가꾸고 싶은 마음.
오늘은 한 어르신 댁에 다녀왔다.
고령친화주거환경개선 사업 대상자셔서 최종 선정 전에 실측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낡은 아파트였지만 집 안은 반짝반짝했다.
벽지는 군데군데 바랬지만 먼지 한 톨 없었고, 바닥 장판은 얼마나 닦으셨는지 반들반들했다.
싱크대의 손잡이나 가구는 닳아 윤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가 보기에 낡은 곳들을 어떻게 바꿔드릴지 신이 나서 설명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너무 낡고 오래되었잖아요.”
그런데 어르신은 웃으며 대답하셨다.
“이게 뭐가 오래됐다고요? 아직 쓸만해요. 멀쩡하잖아요.”
잠시 머쓱한 기분이 들어 주제를 전환했지만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집 안 전체를 리모델링해드릴 수 있는 데도 지금 그대로가 좋다고 한사코 거절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그런 집들은 오래되었지만 대부분 관리가 잘되어 뭐랄까, 한결같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낡은 걸 보면 새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달랐다.
‘아직 쓸만하다’는 말 속에는
단순한 절약을 넘어선 태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유행을 따르는 인테리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시즌마다 달라지는 색감,
새로운 자재,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그 화려한 변화를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변화 뒤에는 철거와 폐기물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새 자재 하나를 얻기 위해
아직 멀쩡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
철거된 마감재는 결국 환경을 해친다.
새 자재를 만드는 과정 역시 수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철거작업 뒤에 폐기물 트럭이 몇대분씩 나가는 걸 보면 도대체 저 폐기물들이 다 어디로 가서 쌓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국에서 나오는 건설폐기물이 어마어마할텐데...
요즘 들어 점점 느끼는 것은
사실 진짜 좋은 공간은 새것이 많은 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잘 관리하는 공간, 내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어르신의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가구들은 대부분 30년, 어떤 것들은 40년도 넘었다지만
그분의 손길이 닿은 자리마다 오래됨이 아니라 시간의 정직함, 그 분의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배어 있었다.
작은 불편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감춰져 있었고,
문지방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알고 있었고,
그 질서 안에 그 분이 지내온 인생의 흔적들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게 진짜 살아온 삶이 담긴 공간이구나.’
동시에 며칠 전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마주했던 내 거실풍경이 떠올랐다.
일출이 살며시 스며든 그 공간에 들어서며 나는 참 안전하다 느꼈고 안길 수 있다면 따듯하고 포근하고 부드럽겠다싶었다.
요즘은 유행처럼 ‘새로 고치는 집’ 콘텐츠가 넘친다.
한두 해마다 인테리어를 바꾸고,
철거 사진과 전후 비교를 콘텐츠로 소비한다.
그런데 완성된 디자인은 색도 분위기도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정말 행복을 가져다줄까? 정말 나의 취향인걸까?
가끔은 궁금하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이 좋다는 게 나도 좋은 것인지.
오래된 집이 불편한 이유는 낡아서가 아니라돌보지 않아서다.
닦고, 정리하고, 손보는 일만으로도 공간은 새로워진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일 먼저 티가 나는 건 할머니 집이었다.
마당에는 풀이 자라기 시작했고 텃밭은 정글이 되었다.
꽃나무들은 삐죽삐죽 못생겨졌고 화단의 꽃들은 더이상 피지 않았다.
실내 공간은 더 처참했다.
거미줄이 생기고 왜인지 더 어두침침해졌다.
커텐에는 먼지가 피어올랐고 우선 공기 자체가 탁해져버렸다.
이처럼 집은 손길을 기억한다.
청소도, 정리도, 닦는 행위도 모두 ‘공간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 어르신의 생활방식과 철학이 참 멋지게 보였다.
필요 이상의 물건은 없었다.
억지 치장도 없었고, 장식품 대신 생활의 흔적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자녀들의 졸업사진, 가족사진, 멋지게 쓴 시가 들어 있는 액자들.
그분의 말처럼
“내가 살기에 불편하지 않으면 됐죠. 멀쩡한데 굳이 왜 바꿔요.”
그 한마디에는 자립과 친환경 실천이 모두 담긴 것 처럼 느껴졌다.
본인에게 익숙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정리하며 살아가는 것.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누구나 나이 들면 몸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익숙한 공간을 안전하게 지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바로 효테리어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바꾸는 일’보다 ‘지키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진짜 리노베이션은 철거가 아니라 정리에서 시작되고,
진짜 디자인은 새로움이 아니라 지속성에서 완성된다.
물건을 새로 들이기보다, 지금 있는 것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가구를 바꾸기보다, 먼지를 털고 닦아서 다시 쓰는 일.
그건 어쩌면 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돌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집은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나를 쉬게 하고, 나를 지켜주는 곳이다.
그 안에서 오래 머무르려면 자주 바꾸기보다, 꾸준히 아끼며 돌보아야 한다.
곡식이 익으려면 농부의 수만번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야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사는 공간도 수천, 수만번의 손길이 닿아야하는 게 아닐까?
지속 가능한 집이란 비싼 자재나 새 디자인으로 채운 공간이 아니라, 세월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담긴 공간이다.
닳고, 바래고, 손때 묻은 것들이 결국 가장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
오늘 그 어르신의 집을 나서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분의 삶에는 ‘소유의 미학’이 아니라 ‘유지의 미학’이 있었다.
그건 근검과 절약이 일상이었던 시대를 지나온 사람만이 가진 단단한 품격이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풍요로운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꼭 배우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분의 집처럼 오래된 것을 지키고, 고쳐서 쓰는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다.
그게 진짜 ‘노후의 공간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새것보다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
화려함 대신 깨끗함이 주는 안정감.
그건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가치가 아닐까?
오래된 것을 아끼는 일은
낡은 삶을 버티는 일이 아니라,
오래 사는 삶을 존중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