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집의 온도

온도와 마음의 균형, 따뜻한 집을 만드는 기술

by 조와와왈

나는 집안 곳곳에 디지털 온도계를 두고 산다.

거실에도 침실에도 주방에도 욕실입구까지.

아침마다 몇 도인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 습관은 아무래도 항공사에 다니셨던 아빠의 영향이었나싶다.

늘 날씨가 중요했다.

기상상태에 따라 아빠의 하루는 즐거울 수도, 조금은 힘들수도 있었으니까.


아, 아닌가..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탓인가?

엄마는 기상과 동시에 휴대폰으로 오늘의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를 알려주곤했다.

오늘은 23도까지 올라가네~

아침에는 11도 밖에 안되네~


나는 집안 곳 곳의 온습도계 숫자를 보면서 하루 중 내가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와 습도를 기억해 둔다.

기분이 좋았던 날은 온도가 몇 도였는지,

몸이 무거웠던 날은 습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그러면서 내가 몇 도부터 춥게 느끼는지, 몇 도 이상이면 덥다고 느끼는지.

몇 도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쾌적한지..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쾌적 온도 데이터’를 쌓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습관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몸과 공간이 대화하는 일기 같은 것이다.

이 온도과 습도에 관련된 숫자들은 집이 내게 보내는 신호다.

“오늘은 조금 더 건조하구나.”

“조금 더 온기를 더해야겠구나.”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온도계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나 관찰같이 감각으로 계절을 읽는 분이었다.


겨울이면 어린 사촌이 추워서 몸을 웅크릴 때

할머니는 “몸이 오그라드는 걸 보니 추운갑다” 하셨고,

한여름 더위에 아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얼굴이 익은 걸 보니 너무 덥다” 하셨다.

브런치 공개용 글이라 표현을 다듬었지만.. 아직 기저귀를 차는 어린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 마다 남자아기의 사타구니를 보면서 실내 온도를 가늠하셨었다..


할머니에게 온도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 몸짓, 기운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감각이 참 좋다.

우리 할머니처럼 사람을 통해 온도를 읽는 방식.

그건 사랑의 감각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버튼 하나로

집 전체의 공기와 온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편리해질수록

정작 체온으로 느끼는 집은 줄어드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디지털 온도계로 매일 수치를 확인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그 온도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가,

함께 사는 사람의 얼굴에 온기가 머무는가,

손발이나 코 끝이 차갑진 않을까? 생각하며 온도를 조절하는 것.


그게 진짜 ‘따뜻한 집’의 기준이다.

노년의 공간에서 온도는 단순한 쾌적함의 문제가 아니다.

체온이 떨어지면 근육이 경직되고,

혈류가 느려지며,

그 작은 변화가 낙상이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늘 강조한다.

“보이지 않지만 온도는 안전이다.”


특히 노인 가구의 거실 평균온도는 생각보다 2~3도 낮은 경우가 많다.

난방비 절약이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몇 도의 차이가 삶의 질을 바꾼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뜻해야 하는 건 아니다.

과도한 온도 역시 몸을 지치게 하고

특히 겨울철에는 하루 종일 켜두는 전기장판에 저온화상을 입기도 한다.

또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와 세균이 자란다.

호흡기 건강에 치명적이다.

이처럼 적정한 온도와 습도의 균형이 바로 건강의 기준이다.

나이 들어가는 집일수록 조명, 공기, 냄새, 온도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지만 그게 집의 ‘정서’를 만든다.


우리 집에 왔던 손님들은 집에 왜 이렇게 온도계가 많아 아기 키우는 집도 아니면서?

하면서도 나중에 자기도 집에 온도계를 두었더니 좋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한다.

신축아파트에는 터치하면 언제든 온습도를 확인하고 AI음성인식 IOT기계에다가 지금 몇도야~ 묻기만 하면 되지만 눈으로 보는 아날로그 방식도 제법 분위기가 있다.


온도가 일정한 집은 마음도 일정하다.

바닥의 온기가 몸을 감싸고,

적당한 습기가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공기 속에 여유가 생긴다.

그 속에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다정해진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효테리어는 결국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이라고.

차가운 공간에서는 마음이 얼고,

너무 뜨거운 공간에서는 관계가 피로해진다.

그래서 진짜 따뜻한 집은

‘쾌적한 공기’보다 ‘포근한 기운’을 가진 집이다.

오늘도 나는 잠들기 전

거실 온도계를 한 번 더 본다.

23도, 습도 45%.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수치다.

그리고 조용히 불을 끄며 생각한다.


할머니의 감각과 나의 온도계가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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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온도는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따뜻한 공간은 스스로를 돌보는 기술이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온도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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