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늙기 전에 비우고 버려야하는 이유

물건만 없어도 안다친다. 비우는 일은 다치지 않기 위한 준비이다.

by 조와와왈

요즘 참여하고 있는 고령친화주거환경개선 사업들 가운데 골치 아픈 현장이 하나 있다.

진행이 힘들 정도로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일을 방해하는 사람 때문인데, 이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공사중인 바로 그 집 할머니이다.



살짝 인지장애(치매)가 의심되는데다 고집이 대단해서 가족요양 중인 따님도 어르신을 이기지를 못한다.

하필 공사하는 동안 바로 앞 집에다가 방 한칸을 얻어 계시면서 아예 공사감독을 하고 계시는데..

이 집은 공사 전부터도 할지 말지 고민이 됐던 집이다.

이유는 집안이 묵은 짐과 쓰레기로 어수선하다는 것!.

심지어 그 것들을 안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아주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집에 한번 들인 물건은 안버리려 고집을 피워서 따님의 걱정과 고민을 넘어서서 이웃에게까지 불편을 끼친다고 했다.



6-7평되는 작은 공간이라도 일단 집안에 불필요한 짐들을 버리고 비워내야 도배든 장판이든 할 수 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서 바깥에서는 늘 보행보조기를 밀고 다니시니, 집 안이라도 좀 정리가 되면 지팡이든 보행기든 안에서도 밀고 다니실 건데..

어쨌든 겨우 설득하고 어르고 달래서 고장나서 못쓰는 가구라던지 안쓰는 짐을 버리고 공사를 하고 있긴한데 예전에 버린 것들을 다 어디다 두었냐고 역정을 내고 계셔서 현장담당자들이 아주 곤란을 겪고 있다 한다.



요즘 들어 ‘비우는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정리나 미니멀리즘 같은 유행 때문이 아니라,

진짜 물건이 많아지면 사람이 다친다는 걸 현장에서 너무 자주 봤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집에 가보면 가끔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는데 질서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관찰하며 같이 시간을 같이 보내다보면 다 이유가 있어서 그 물건이 그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서랍이나 수납장에 넣어두면 보이지 않아서 쓸 수가 없고 물건이 필요할때 잊어버리고 자꾸 사게 되니 아예 모두 꺼내놓고 눈에 보이게 늘어놓고 산다는 거다.


그러니 기가 찬 일도 벌어진다.

어떤 어르신은 식탁에다 이렇게 물건을 내 놓고 지내니 밥먹을 공간이 없어서 식탁 옆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식사를 한단다.

또 어떤 분은 침대 옆 책상 위에 한 살림 올려두었다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를 짚었는데 책상위 물건이 같이 넘어와서 머리까지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하도 화가 나서 물건을 버려고 하나씩 보다보니 실제로 쓰고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더라나.



할머니 돌아가시고 집을 처음 정리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작은 방마다 쌓인 이불, 옷, 서랍마다 가득한 잡동사니들,

“언젠가 쓸 수도 있다”는 말로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다.

누군가 필요하면 줘야지 하고 아끼고 모아둔 것들이다.

심지어 예쁜 패브릭 천으로 가려두어 평소에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큰 미군 탄피함이 있었는데..

그걸 열었더니 세상에......새 수건이 이백여장 들어있는 것이다.

가족들이 온갖 행사에서 받아 온 것들이었는데 00창립기념, 칠순, 돌잔치, 기념예배, 야유회 기념, 00의 날 기념 등등 제일 오래된건 내가 태어나긴 전인 82년도 것도 있었다.


그걸 모아두었던 할머니 마음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이게 뭐라고 그 짐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는 그 안에서 늘 부딪히고, 걸려 넘어지고,

그래서 다쳤던걸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노년의 집에서 위험은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버리지 못한 물건’의 형태로 조금씩 쌓여 간다는 걸.

물건이 많으면 공간이 좁아진다.

좁은 공간은 동선을 꼬이게 만들고,

꼬인 동선은 사고를 부른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미끄러진다.


반대로 물건이 줄어들면 집이 달라진다.

공간의 숨통이 트이고, 빛이 들어오고, 길이 생긴다.

무엇보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건 단순히 정리의 효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공간을 비우는 것만으로도 훨씬 쾌적해진다.

그래서 안전을 위한 첫 번째 디자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버리는 일’이다.


가끔 현장을 가면 이런 말을 듣는다.

“아직 쓸 수 있어서요.”

“정리하면 허전할 것 같아서요.”

"혹시 몰라서요."


그 마음을 안다.

물건은 기억이고, 추억이고, 위로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물건이 당신의 동선을 막고,

다리를 걸고, 발을 잡고 있다면

그건 이미 당신을 공격하는 물건이 된다.

비운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공간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요즘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조금씩 묻는다.

“이건 꼭 있어야 해요?”

“이건 나중에 정리할까요?”

"그냥 버리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다음번에 다시 가보면,

어느새 그 물건이 사라져 있다.

요즘은 아름다운 가게에다가 기부하는 재미도 있다고 하신다.

마침 얼마 전 교회 바자회에 물품기증을 많이 하기도 했단다.


그만큼 집이 넓어지고, 걸음걸이가 가벼워진다.

노년의 안전은 복잡한 기술이나 비싼 장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없애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발에 걸리던 작은 매트를 치우고,

장롱 위 쌓인 박스를 비워내고

더이상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아 필요 없어진 가구들을 나누고,

이 모든 게 효테리어의 첫 단계다.


그렇게 물건이 줄면,

집은 단순해지고, 사람은 단단해진다.

비우는 일은 나이 들어서 더 중요해진다.

몸이 둔해지기 전에,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손이 아직 움직일 때 스스로의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


할머니가 살아계실때 그 수건들을 나눠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뜯지 않은 양말이나 속옷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눴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남은 자녀들에게는 심정적으로 너무 힘든일이었다.


지난 추석때 엄마로부터 사진을 한 꾸러미 받았다.

늘 보던 앨범형태가 아니라 제각기 크기가 다르게 인화된 사진들만.

어리둥절한 내게 엄마가 하는 말이 씁슬하면서도 반갑다.

"앨범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이제는 안보는 사진들도 많아서 너희 사진은 이제 너희가 보관했으면 해서.. 자주 보고 싶은 사진 몇 개만 두고 정리했어"


우리 부모님도 할머니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던 경험이 있기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본인들을 위해서 미리 이렇게 비우는 일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이젠 버릴 게 없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날,

비로소 그 집은 ‘돌봄이 최소화 될 수 있는 집’이 된다.

나는 오늘도 내 집을 천천히 둘러본다.

언제 열었는지,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오래된 상자, 손이 안가 잘 안 입는 옷, 지난 여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물품들 .

물건을 버릴 때마다 내 마음의 복잡함도 함께 사라진다.

그건 어쩌면, 나를 위한 또 하나의 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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