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숙소의 진화>
가족 여행을 하면서 가장 심사숙고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숙소다. 일반적으로 교통 접근성과 편의시설 등을 고려하게 되고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룸 컨디션과 위생에도 신경 써야 한다. 요즘은 어린 숙박객들을 위한 일명 '키즈 클럽'이나 '키즈 패키지' 등 가족 여행을 위한 맞춤형 숙소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디럭스 룸 하나만 예약해도 충분했지만, 아이들의 몸이 커지면서 방도 2개를 예약해야만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 예산이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 그래서 우리는 숙소 등급을 한 단계 낮춰 예약하기도 하고 Air B&B 형태의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https://goo.gl/maps/bdpYrDRCy8CBGv1cA
비크이뮈르달의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건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환브로. 특히 려환이의 동물 사랑은 남다르다. 댕댕이와 냥냥이는 기본이고 꼬꼬닭과 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뱀도 좋아하고 심지어 벌레들에게도 너그러울 정도이다. 푸른 초원과 산을 등지고 있는 그림에나 나올법한 예쁜 집 앞에 꼬꼬닭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사진은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숙소는 4, 6, 8인실의 도미토리 형태의 게스트하우스였고 공용 화장실과 욕실을 사용해야 했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 숙소가 그러하듯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공용 주방이 갖춰져 있었고 특이한 점은 무료 조식 서비스가 된다는 거였다. 장단점을 모두 갖춘 Vik hi Hostel. 숙소의 위치도 괜찮고 아이들이 많이 컸으니 이제 공용 화장실과 욕실도 사용 가능하리라 생각했기에 도미토리 숙소를 처음 예약하게 되었다.
숙소 주변 경관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이미 비크로 오는 길에 만난 카틀라 화산의 빙하와 끝없이 이어지는 웅장한 산들. 달리는 차 안에서 구라미 여행사 가이드님은 침식으로 생긴 산봉우리 혼 (Horn)과 U자곡, 피오르 등 아이슬란드에서 특별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비크 시내의 한 마트에서 저녁으로 요리할 몇몇 재료를 사서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하려고 여권을 내미니 숙소 주인이 먼저 수화물 얘기를 꺼낸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우리 수화물을 배달해 주겠다고 우리의 숙박 여부를 확인하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야호!!!!!!!"
아이슬란드 입성 4일 만이다. 다만, 아직 수화물은 도착을 안 한 상태이고, 내일 오전에 올 수도 있으니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키를 받아 우리의 보금자리가 될 방으로 갔다. 방은 반지하에 있었지만 어둡지 않았고 우리는 4인이라 4인실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 최소한의 복장 자유가 보장된 셈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와~~” 하고 좋아한다. 2층 침대가 그리 편하진 않을 텐데 아이들은 이런 형태의 룸이 뭔가 탐험처럼 재미있게 생각하는 듯하다.
욕실과 화장실 사용은 예상대로 불편했다. 보통은 숙소에 들어오면 편하게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는데 화장실 갈 때마다 옷을 다시 챙겨 입는 게 생각보다 상당히 귀찮은 숙제였다. 욕실도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배수가 잘 안 되어 깨끗하진 않았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저녁 메뉴로 준비한 닭다리 한 팩과 라면을 가지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오늘 우리의 저녁 메뉴는 닭칼국수가 아닌 닭라면이다. 젊은 배낭객으로 보이는 외국 학생들이 식사 후 설거지 중이다. 그 모습을 보더니 지환이가 설거지 당번을 스스로 자청했다. 주방 한편의 수납장 위엔 "Get for Free"라고 쓰여 있다. 이미 떠난 숙박객들이 남은 재료들을 기증(?)하고 간 것들인데 각국의 양념들과 파스타면, 쌀 등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무료 쌀도 한주먹 씻어서 닭 라면에 넣기로 했다. 우리의 삼계탕 변형 메뉴 닭라면은 정말 대성공적이었다. 도미토리 형태의 호스텔에서 숙박하며 공용 식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고 다소 불편했던 욕실과 화장실 사용까지 아주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환브로가 많이 자랐다.
돌잡이 지환이를 아기 띠에 엎고 아일랜드를 여행했을 때 기내용 베이비 시트를 요청하고 예약하는 숙소마다 아기침대가 있는지 확인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침대에서 떨어질까 봐 호텔방에서 덮는 이불을 침대 바닥에 깔고 재우고 정작 우리 부부는 호텔 룸 가운을 덮고 잔 경우가 많았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여행 땐 6살 려환이 가 호텔 침대 사이로 떨어지면서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오른쪽 눈썹 부분이 찢어지는 응급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커서 배낭객들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함께 요리도 하고 엄마 대신 설거지도 한다. 2층 침대에서도 떨어질 걱정 없이 편하게 자고 스스로 공용 욕실을 사용하고 온다.
몇 해가 지나면 아이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나는 날도 오겠지?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 세상을 함께 경험하며 산다는 건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