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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구 맞아요?

by 왕드레킴


오늘은 아이슬란드 여행의 하이라이트 빙하 트레킹이 있는 날이다. 아이슬란드 빙하 트레킹은 사계절 내내 가능한 액티비티라고는 하지만 적기는 여름시즌이다. 실제로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극한의 추위로 실제로 트레킹이 쉽지 않다.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으로 트레킹 하기에 적합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에도 많이 추천된다. 보통 아이슬란드여행을 생각하면 겨울시즌의 오로라 관측을 많은 사람이 버킷 리스트로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빙하를 걷는다는 것도 엄청난 이벤트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둘째 우리 가족에겐 려환이 가 이제 아이젠을 끼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연령이 되었다는 게 상당히 의미 있었다.


오전엔 비크 마을과 주변을 둘러보고 오후에 있을 빙하 트레킹을 위해 스카프타펠 빙하로 이동할 계획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리셉션으로 갔지만, 여전히 우리의 수화물은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소식도 없다고 했다. 약이 오르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느덧 없는 살림살이로 여행하는 게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동선이 어긋날까 싶어 바로 체크아웃하지 않고 오전에 비크 마을 먼저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비크 마을과 주변에도 유명한 스폿이 몇 군데 있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지나치는 모든 곳이 다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 멋진 스폿이 된다.


아이슬란드 최남단 마을 비크이뮈르달의 언덕에 올라가면 빨간 지붕의 루터교회가 있고 교회 뒤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언덕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초원에는 산양과 말들이 뛰어노는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고 힐링 그 자체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 따뜻하고 하늘은 파랗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 2/3는 비나 눈이 오고 1/3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 가족은 날씨 요정을 데리고 다니나 보다. 루터 교회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 해변 쪽으로 내려갔다. 레이니스피아라(Black Sand Beach Reynisfjara)라는 유명한 검은 모래 해변인데 해변 바로 앞에 주상절리와 동굴을 만날 수 있었다.

검은 모래 해변은 카나리아제도에서 보았던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다. 아마도 두 지역 모두 화산 지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해변 위에 우뚝 솟은 주상절리는 용암이 급격하게 식어서 굳을 때 육각기둥 모양으로 굳어져 생긴 지형이다.

주상절리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하여 마그마의 외부 표면이 급속도로 식어서 굳으면 내부의 마그마는 외부의 굳어진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지면서 수축하고, 이때 상하 방향은 중력 때문에 길이를 유지하지만, 좌우 방향은 잡아 줄 힘이 없어 수축하면서 갈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라미 여행사 가이드님이 열심히 설명하시는 동안 난 살짝 빠져나와 검은 모래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높은 파도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오늘 파도는 강물처럼 잔잔하다. 입고 온 셔츠를 벗어 검은 모래 위에 던졌다. 평평하지 않은 모래바닥이지만 몇 가지 요가 자세를 취해보며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제주도에서도 주상절리를 본 기억이 있고 (제주 중문·대포 주상절리 해안으로, 그 가치가 높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 북아일랜드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 →거인의 방죽길 / 1986년 유네스코의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87년에는 북아일랜드 환경부가 선정하는 국립자연보존공원으로 지정)에서도 넓게 펼쳐진 다양한 높이의 주상 절리를 본 적이 있다. (수천만 년 전 고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곳으로 4만 개의 주상절리가 모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남서쪽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 레이니스피아라 검은 모래 해변(Black Sand Beach Reynisfjara)에서 만난 주상절리는 엄청나게 높이 뻗어 산과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제주도 중문대포 (2010) 북아일랜드 자이언트 코즈웨이 (2011) 아이슬란드 레이니스피아라 (2022)


비크를 떠나기 전 마트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간식을 사고 주유소에 들렀다.

다음 이동할 루트에는 큰 마을이 없기 때문에 주유와 마트 장 보기는 필수! 주유소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로 셀프로 운영되는 곳들이 많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보증금 제도였다. 5,000 ISK(약 5만 원)을 주유했고 영수증 출력도 잘 되었는데 신용카드 결제 문자엔 50만 원이 결제되었다고 찍힌 것이다. 순간 당황한 우리는 무인 주유기 기계에 붙은 직원호출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답이 없다. 자리도 못 뜨고 어리둥절해지고 있는데 로컬 주민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영수증과 휴대폰 문자를 보여주며 설명하니 '디포짓'이라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이슬란드에서 주유하면 엄청난 디포짓이 묶인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탓일까? 비크 숙소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우리의 수화물은 보이지 않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비크를 떠나 바트나요쿨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바트나요쿨(아이슬란드어: Vatnajökutle)은 아이슬란드 최대의 빙하로, 아이슬란드 섬 남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국토 면적의 8% 이상을 차지하며, 스카프타펠(아이슬란드어: Skaftafell)은 아이슬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자연보호 지역이다. 원래는 국립공원이었으나, 2008년 이후로 바트나나요쿨 국립공원의 일부가 되었다. {위키백과사전}

비크에서 2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는 차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지구 밖 풍경이었다. 다른 행성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을 탐사한다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랄까? 아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이한 지형과 식물들을 보며 연실 탄성을 자아낸다.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곳에 이상한 모양으로 덮여있던 건 바로 이끼였다. Gönguleið um Eldhraun이 지역은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이 땅 위를 다 덮으면서 현무암이 되었고, 다시 이 현무암 위에 이끼가 자라나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져 지질학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끼의 두께는 두껍게는 50cm 이상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끼는 현무암에 뿌리를 내리고 서서히 현무암을 흙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화산 트레킹 갔을 때 아이들이 침대 매트리스처럼 푹신하다며 풀 더미 위에 누워 뒹굴뒹굴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끼 현무암 매트리스'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지구의 오랜 역사 위에 그것도 화산에서 그렇게 누워 놀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조금 더 달리니 호수가 보인다. 물이 보이니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은은한 색채의 들꽃들이 만발한 예쁜 들판이 나타났다. 신비롭다. 아마 이 지형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현무암이 이끼에 의해 흙이 되었고 그 흙에서 양분을 먹은 식물이 자라나서 생긴 듯하다. 하지만 모두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하므로 키가 크지 못한 낮은 들꽃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사진과 영상에 다 담기지 않은 미지 세계의 모습들.


이동하는 내내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은 한 말이다.

"여기 지구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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