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쿨살론과 다이아몬드 비치
화산에 빙하까지 미션을 수행하듯 큰 이벤트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아이슬란드와 제법 친해진 느낌이다.
트레킹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추워서인지 하산 후 새로운 숙소로 가는 길엔 몸살 기운이 살짝 돌았다. 아직 다양한 일정들이 남아 있기에 컨디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서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호픈 (Hofn)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나라 면적과 비슷한 아이슬란드를 7박 8일 동안 링로드로 한 바퀴 돌아본다는 건 사실상 너무 짧은 일정이지만 여느 직장인들처럼 구라미 사장님도 본업이 있는 관계로 타이트한 일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제 계획된 일정이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수화물은 5일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게 대자연을 충분히 즐기고 있으므로 크게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부엘링 항공사에 대한 화가 풀린 건 아니다.)
2023. 8. 22
몸살약을 먹고 밤새 잘 잤는지 몸이 한결 가볍다. 숙소 밖은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트레킹은 하지 않아도 여행객이라면 놓치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요쿨살론과 다이아몬드 비치이다. 오늘 바로 그 아름다운 곳을 갈 예정인데 한 치 앞도 안 보이니 걱정이다. 파란 하늘은커녕 안개라도 걷히기를 바라면서 아이들과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챙겼다.
숙소에서 다시 반대 방향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요쿨살론(Jökul 요쿨 =빙하, sárlón 살론=호수)은 빙하 호수다.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에 속한 이 빙하호는 브레이다메르쿠요쿨(Breiðamerkurjökull)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고대의 빙하들이 후퇴하기 시작한 후 호수로 발전했는데 1970년대부터 바트나이외쿠틀 빙하가 녹아내리며 해안선으로부터 멀어지고 호수의 크기가 현재는 4배 이상 커졌다고 한다. 깊이는 무려 250m나 된다고 하는 이 빙하호도 기후 변화를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 파란 하늘은 사치다. 이 정도면 날씨 요정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며 요쿨살론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호수의 모습에 와~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빙하 호수를 보트를 타고 돌아보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구라미 여행사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옵션으로 넣자고 하는데 비용이 상당했다. 예산이 점점 늘어나 액티비티를 좀 줄이자고 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요쿨살론 보트 투어는 엄청 두꺼운 방수 점프슈트를 입고 8km 정도 빙하 근처까지 보트를 타고 들어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빙하를 약 한 시간가량 관측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 방수 점프 슈트를 입을 땐 우주 탐험대인 양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불편하고 답답했는데 직접 보트를 타고 나가보니 이 옷을 안 입었으면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빙하 호수의 공기는 차갑고 보트의 속도는 빠르다.
어제 빙하 트레킹에서 얼음 위를 걸어본 것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느낌이다. 수천 년? 된 빙하의 거대한 측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빙하가 녹으면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빙산의 조각들이 둥둥 호수 위를 떠다니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다. 보트가 잠시 멈췄을 때 호수에 손을 살짝 담가보고 작은 얼음조각도 건져 보았다. 하지만 가이드는 얼음을 맛보는 것엔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만지고 있는 얼음은 1,000년 정도 되었는데 화산과 지진 등을 거치면서 유해 물질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빙산은 두 가지 컬러로 보이는데 어떤 빙산은 하얗고 또 다른 빙산은 정말 파란 하늘색이다. 아무렇게 사진을 찍어도 보정한 것처럼 뽀얗고 예쁜 파란색을 띠는 건 얼음 안에 공기가 갇혀서 빛이 상호 작용해 산란되는 현상인데 빛 파장 중에서 가장 짧은 파장인 파란색이 가장 강하게 산란되어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투어를 하는 동안에도 천둥번개 소리처럼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 가이드는 기후 온난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곳에 다시 방문하기 어렵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 누가 이곳을 찾아도 잘 보존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투어를 마치고 건너편에 있는 다이아몬드 비치로 가보았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검은 모래 해변에 큼지막한 돌멩이들이 박혀있고 해안가로 다가가니 정말 투명한 천 캐럿은 넘을 다이아몬드 조각들이 펼쳐져 있다. 너무나 투명하고 날카로운 모양의 얼음들이 둥둥 떠다니고 파도에 밀려왔다가 다시 떠내려가기도 한다. 진귀한 풍경이다. 크고 작은 얼음덩이들이 얼마나 투명한지 이곳 이름을 다이아몬드 비치로 불릴만하다. 어떤 얼음덩이들은 상당히 날카롭고 뾰족해서 발을 헛디디면 사고가 나겠다 싶을 정도였다. 요쿨살론의 빙하들이 호수를 지나 바다로 떠내려가는 과정에서 다시 파도에 밀려 해안가로 모인 얼음들. 녹지 않길 바란다. 너무 많고 위험해 관람할 수 없게 되더라고 더 이상 녹지 않고 이 희귀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남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과 차가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