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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복병 냄새 도깨비

< 유황 온천의 끝판왕 미바튼과 흐베리르>

by 왕드레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온천에 가는 날이다.


아이슬란드는 널린 게 온천이라고 들었었는데 아직까지 온천에 발도 못 담가 본 게 내심 아쉽긴 했다.

에이일스타디르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는 오늘, 마지막으로 거대하기로 소문난 데티포스(Dettifoss: 어떤 이들은 데티포스를 폭포의 끝판왕이라고 했는데,,, 아이슬란드엔 끝판왕이 참 많은 거 같다.)를 보고 아이슬란드의 북쪽에 있는 지열 지대로 들어가기로 했다. 말 그대로 지열 지대는 땅에서 열이 나는 지역이다. 아이슬란드 곳곳이 화산과 빙하가 퍼져 있지만, 특히나 북쪽은 아이슬란드 최대의 지열 지대라고 한다.


1번 링로드에서 미바튼 방향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꺾어서 864번 도로를 33km 정도 더 달려 들어가면 유럽 최대 규모의 데티포스를 만날 수 있다. 문제는 그 33km가 비포장도로 즉, 자갈밭이라는 것이다. (이 길은 10월 이후에는 기상에 따라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릴 적 아빠를 따라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어느 지점인지 비포장도로가 있었고 비위가 약한 난 항상 비닐봉지를 준비해야만 했다. 말이 33km지 빨리 달릴 수도 없는 길을 40여 분 달리는데 정말 죽는 줄만 알았다. 정말 다행인 건 아이들이 비포장도로 진입 후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든 것이다. 어렵게 도착한 데티포스는 그야말로 강력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 촬영지기도 한 데티포스는 너비가 100m에 깊이가 44m나 된다고 한다. 저 많은 물이 도대체 어디서 쏟아지는 건지 무서울 정도였고 저 떨어지는 물의 힘에 의해 지구가 구멍이 뚫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미바튼 지역으로 진입하기 바로 전에 Krafla shower라는 노천 샤워시설이 있다. Endlose Dusche라고 불리는 대형 수도관인데 누가 허허벌판 한가운데 수도꼭지를 달아놨는지,, 사계절 내내 온수가 나오고 누구든지 이 시설을 즐길 수 있다. 호기심과 모험심 가득한 려환이 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날이 추워 샤워까지는 엄두가 안 나는지 바로 머리부터 들이민다. 정말 못 말리는 아이를 지켜보는 형의 눈빛이 살짝 부러워 보이기도 했다. 도로를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지형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자연스레 지열 지대 즉, 온천 지대로 들어온 것이다.


크라플라(Krafla)는 아이슬란드의 북쪽에 있는 화산으로, 활화산이다. 1700년부터 1980년대까지 약 300년간 벌어진 화산 활동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흐베리르도 이 지역의 일부인데 이 땅의 주인인 개인 소유주가 주차비만 받고 전 세계 관광객에게 무료 개방을 하고 있다. 다른 관광지를 둘러볼 때에도 언급을 했지만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이것이다. 대자연이 나의 소유인데 소정의 입장료만 받아도 순식간에 부자가 될 텐데 어떠한 수익도 없이 무료개방을 하다니 말이다. 자판기 하나 갖다 놓지 않고 화장실도 없는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흐베리르에 도착한 우리는 우주 행성 어디쯤으로 보이는 특이한 지형에 입이 딱 벌어졌다. 주차장에서 지열 지대로 걸어 들어갈수록 달걀 삶은 냄새가 진하게 나기 시작했다. 난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 입구 한편에서 온천 수증기로 구운 달걀을 팔면 얼마나 좋을까 구시렁대면서 걷고 있는데,,, 아이들은 목에 두른 머플러로 코를 막는다. 유황 온천이라 그렇다고 설명해 주니 " 우웩~" 하며 구역질하는 시늉을 한다. 아이들은 '냄새 도깨비'가 나타났다며 여기저기 바닥에 진흙 수프가 끓고 있는 것처럼 보글보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 도깨비들의 숨소리야~" , "도깨비들이 먹는 죽인가 봐." 수증기의 온도가 보통 뜨거운 게 아니다. 수증기가 많이 나오는 곳에 손을 갖다 댔다가 화상을 입을 뻔하기도 했다. 혹시나 발을 헛디뎌 뜨거운 진흙탕에 빠질까 봐 주의를 주니, 진짜 '냄새 도깨비'가 나타났다며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 사실 나도 어떤 곳은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심했는데 코를 틀어막고라도 꼭 방문해 보라고 하고 싶은 곳이다.


미바튼 호수 근처 숙소에 체크인하고 예약시간에 맞춰 미바튼 네이처 바스(Myvatn Nature Baths)으로 갔다. 내심 오후에 려환이가 흐베리르에서 수증기에서 난 유황 냄새 (삶은 계란 썩은 내)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걱정되었다. 유황 온천이라 물에서도 그 냄새가 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미바튼 온천은 2,500m 깊이에서 끌어올린 100% 천연 지역 지열 온천수 욕장이다. 입장료도 블루라군에 비해 절반 값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말 내추럴 바스를 즐길 수 있는 곳.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 밖은 환했지만, 저녁이 되니 바깥공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파란 하늘에 슬그머니 내려오는 노을까지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냄새. 그 도깨비 냄새는 스멀스멀 코를 스쳐 지나간다. 날이 추워 아이들은 냄새가 나더라도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용기를 내서 들어가니 처음엔 버틸 만한지 음료도 마시고 수영도 하면서 나름 온천욕을 즐겼다. 다행이다. 하지만 딱 10분. 유황 온천을 너무 기다리고 좋아하는 엄마에 비해 아이들은 물속에서 머무는 걸 너무 힘들어했다. 아름답고 따뜻해 오래 머물고 싶었던 미바튼. 결국, 냄새 도깨비 때문에 버티다 버티다 한 시간 만에 백기를 들고 퇴장했다.


유황 온천에서의 처음 10분 버틸만했던 행복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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