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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원치 않는 스카프타펠 빙하

by 왕드레킴


아이슬란드 여행을 결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다. 위기를 맞은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영화인데 아이슬란드의 스카프타펠 빙하가 그 행성의 촬영지로 나오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고 간접적으로 접한 빙하는 너무나 거대하고 위험해서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간혹 텔레비전에서 빙하 트레킹을 하거나 에베레스트 만년설이 쌓인 빙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미쳤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곳을 간다고? 발을 잘못 디뎌 크레바스 ( 얼음에 생긴 틈으로 작으면 1m 깊게는 50~100m까지 되기도 한다. )라는 곳에 빠지면 죽는 거 아닌가? 난 신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인데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와 두려움이 빙하 트레킹 예약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지의 행성 같은 곳들을 달리고 달려 오늘 빙하를 함께 걸을 전문 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 덜렁 컨테이너가 하나 있다. 여기가 베이스캠프? 인가 보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긴장을 했는지 화장실을 찾는다.


"Excause me, Where is toilet?"

"Everywhere."

",,,"

용암을 보러 화산에 갔을 때와 동일한 대답이다. 아무래도 아이슬란드 여행을 할 때는 소식(조금만 먹기)을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적당히 해결하고 돌아오니 빙하 트레킹용 하르네스와 헬멧, 아이젠과 트레킹용 망치를 나눠준다.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심어 주었다. 특히, 망치와 아이젠은 상당히 무겁고 날카롭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네스와 헬멧을 착용하고 각자의 차량에 재탑승 후 빙하가 있는 산 입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3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들어가는 입구엔 얕게 핀 들꽃이 만발해 있어 여기가 빙하로 가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주차를 한 후 오늘 함께 트레킹을 할 인도인 가족들도 만났다. 다시 한번 아이들과 함께 기본적인 주의 사항과 아이젠과 망치 사용법을 듣고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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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용암을 보러 갈 때와 마찬가지로 빙하가 있는 빙산까지는 꽤 걸어 올라가야 한다. 여름이기도 하지만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빙하가 너무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서 점점 빙하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를 평지와 가파른 오르막을 번갈아 가면서 등산화 아래로 계곡물처럼 졸졸 빙하 녹은 물이 흐르고 간간이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멋진 호수와 산이 펼쳐지고 우리는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었다. 멋지게 펼쳐진 뷰의 저 호수와 산도 20년 전엔 모두 빙하였다고 한다. 매년 조금씩 녹아 이젠 완전히 호수가 되었다고,,, 설명을 듣고 다시 바라보니 한없이 멋지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걸음을 이어갔다. 점점 내딛는 바닥이 얼음과 화산재 돌과 뒤섞여 지저분해 보인다. 이제 아이젠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빙하 위를 걸을 시간이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떨린다.

KakaoTalk_20230828_144816849_05.jpg?type=w1 20년 전만 해도 빙하였던 호수와 화산

한 줄로 줄지어 가이드를 따라 걷는데 아이들은 중간에 세웠다. 하지만 겁 없는 려환이는 호기심과 모험심에 자꾸 뛰고 줄을 이탈하려고 해서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다. 한참을 걷고 걸어 드디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빙하! 화산 먼지인지 검은 모래와 뒤섞여 겹겹이 쌓인 얼음. 그 사이로 녹아내린 빙하는 정말 에메랄드빛 파란 옥색을 띤 맑고 맑은 차가운 빙하 수였다. 장갑을 벗고 만져 보니 금세 동상이라도 걸릴 듯이 차갑다. 려환이가 먹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표면 위의 빙하는 깨끗한 물이라고 했다. 손으로 조금 물을 뜨자마자 아이들이 너무 차가워 소리를 질러댄다. 그리고 맛을 보더니 " 와~ 시원하다. 물맛이네~" " 아~ 맛있다!!! " 한다. 그런데 아이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아무리 여름이고 오늘 날씨가 비교적 포근하다고 하지만 이곳은 빙하 위다. 계속 걸어서 열을 내지 않으면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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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르고 오르고 계속 걷는다. 걸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신비로움이 계속 이어진다. 크레바스를 만날 땐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음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전달한다. 걷다가 허리를 펴고 앞을 보니 끝이 없는 빙산. 왼쪽으로는 초록 이끼로 덮인 산이 보이는데 알프스 산처럼 이쁘다. 하지만 곧 이어진 가이드의 설명 " 2년 전까지만 해도 저 산도 빙하였어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닙니다."

심각했다.

우리가 마주한 빙하로 덮인 산은 점점 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거대한 빙하. 더 이상 녹지 않고 이대로 머물러 줬으면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기도를 했다.

오늘 경이롭고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고 아이들과 함께 대자연을 보고 그 대자연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개의 인간에 불과하다. 이 대자연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빙하를 보며 미래를 걱정하는 아이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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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고 있는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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