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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Oct 01. 2024

2. 4,000명의 환호 속 귀가

어쩜 내가 느끼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흔들림에 더욱 꿀잠을 잤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액티비티에 피곤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기가 전동 바운서에서 사르르 잠이 들듯이 나뿐만 아니라 배에 타 있는 많은 사람들도 여행 중 숙면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출시간을 확인하는 건 필수다. 이른 아침 입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항구에 가까워지는 시간과 해가 뜨는 시간이 운 좋게 겹칠 때면 육지가 붉게 달아오르다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것처럼 항구 마을에 라이트가 켜지는 아주 근사한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 한가운데에서의 일출이나 일몰도 충분히 근사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도 감상하고 서둘러 조식을 먹으러 올라갔다. 많은 승객들이 한 번에 하선하기 때문에 오전 엘리베이터와 계단등은 엄청 분주하다. 착륙 후 문도 열리지 않은 비행기에서는 미리 일어나 봤자 어차피 차례대로 내리니 별 차이가 없지만 배에서는 가능한 하선을 서둘러야 기항지에서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다. 혹시 몰라 조식 때 나온 데니쉬랑 사과도 하나씩 티슈에 돌돌감아 챙겼다. 돌아다니다가 간식으로 먹어야지~. 

몰타는 오래전 어학연수를 알아보러 유학 박람회 갔을 때 알게 된 나라인데 지중해의 중앙부인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한 남유럽의 섬나라다. 그 말로만 듣던 몰타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따로 일정을 잡아 여행하기 쉽지 않은 나라지만 매력적인 곳들이 많은 나라다. 신랑이 가고 싶은 고조섬(Gozo island)과 1980년 뽀빠이 뮤지컬을 위해 지어졌다는 뽀빠이마을도 가보고 싶지만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꼭 가봐야 할 기항지 관광지는 바로 '블루라군'이다.

크루즈에서는 별도로 그룹 투어 즉, 기항지 관광(Shore excursion)을 신청할 수 있다. 당연히 유료이다. 배에서 사람들을 모아 전용버스나 보트등 단독으로 교통편을 이용해 유명한 관광 포인트를 돌고 귀가 시간에 맞춰 배로 돌아오는 코스로 연세가 좀 있는 승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기항지 상품을 이용하면 당연히 편하겠지만 굳이 비싼 돈을 추가로 들일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항구에서 가까운 대중교통을 이용해 낯선 도시를 여행해 보는 건 개별관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나는 모험이다. 


블루라군(Blue lagoon)을 거쳐 고조섬(Gozo island)까지 들어가려면 페리나 보트를 타야 한다. 그때 당시 왜 페리를 타지 않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페리시간이 맞지 않았었던 거 같다. 바로 전에 출발한 페리를 놓치고 다음 페리를 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반나절을 돌아보고 와야 하는 우리에겐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던 것 같다. 차선책으로 찾은 방법은 로컬 버스를 이용해 블루라군으로 가는 작은 배들이 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것이다. 발레타 항구 마을로 올라가 탁 트인 전망을 조망하며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몰타 시민들이 타고 다니는 로컬 시외버스를 탔다. 한 시간 반정도 소요되니 서울에서 원주까지 가는 거리랑 비슷하다. 결코 가깝지 않다. 마을버스 같기도 한 약간 노후된 듯한 시외버스들을 보니 우리의 결정이 괜찮은 결정인지 살짝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몰타도 섬나라 아닌가? 제주도 오름을 오르락내리락하듯 기가 막힌 풍경들은 파노라마 처럼 계속 이어지는 풍경을 로컬인들과 즐기며 한참 고갯길을 달렸다. 

버스 기사님은 통풍 때문인지 버스 문도 열어둔 채 달리신다. 좀 불안한 듯 재미있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멜리에하 터미널. 이제 왕복으로 여행할 보트를 구해 협상을 하는 게 미션이다. 우리가 다시 오후 6시까지 크루즈로 복귀해야 하니 4시 정도까지 돌아와야 여유 있게 버스를 탈 수 있겠다고 계산했다. 페리 터미널에서 몇몇 보트를 알아보니 4시간 코스로 블루라군 주변을 돌아보는 보트가 있었다. 금방 출발한다고 했던 기사님은 추가 손님을 기다리는 듯 미적 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승객은 오지 않는다. 결국 우린 프라이빗한 보트를 타게 되었고 이게 웬 떡이냐며 허니문답게 코미노섬에 위치한 블루라군으로 출발했다. 

블루 라군은 이름대로 정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지중해의 낙원이라는 이곳은 유럽사람들의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에메랄드 빛 바다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보트 선장님은 자연 현상으로 생긴 바다 동굴과 절벽등에도 가까이 가주시고 우리 부부의 전용 포토그라퍼도 되어 주셨다. 몰타섬과 고조섬 사이에 위치한 작은 코미섬은 무인도이다. 조류보호 구역이자 자연보호 지역으로 식당도 상점도 없다. 작은 푸드트럭이 전부인 이곳에서 아침에 챙겨 온 빵과 사과는 정말 꿀맛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까지 버스를 타고 발레타로 돌아와 내리니 정류장 주변이 뭔가 웅성웅성하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보니 크루즈 크루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큰 종이에 Mr KANG KYU YEOP, Ms KIM HEE JIN이라고 쓰인 작은 피켓을 들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동양 사람이 곤 우리뿐인 그곳에서 피켓을 든 그 사람은 우리를 보더니 소리쳤다! 

"강규엽, 김희진 씨 맞나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


"오 마이 갓!  5시까지 돌아와야 하는데 지금 5시 40분 이라고요... 빨리 서둘러야 해요... "

크루즈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준비된 카트를 타고 크루즈 선착장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자 군함처럼 거대한 우리 크루즈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웰컴 웰컴 ~~~ "

"이제 우리 배는 떠날 수 있어요!!" 

"환영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오고 객실 발코니에서 박수를 치며 우리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어리둥절하고 믿을 수 없었다. 뱃속의 아가도 놀랬는지 순간 배가 뭉쳐왔다. 뛰어 들어가 숨고 싶었지만 뛸 수도 없었다. 

크루즈 출항 시간을 저녁 6시로 잘못 보고 너무나 여유 있게 놀다 돌아온 유일한 동양인 신혼부부를 기다려주다니~ 정말 우리 4,000명이 한배에 탄게 맞구나.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또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쩜 살짝 불러온 나의 배가 그들을 이해심 많은 승객들로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룸으로 돌아오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눠야 했다. 


배에서 떠날 땐 귀가 시간을 꼭 확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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