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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Nov 12. 2024

11. 오히려 좋아

가을의 플리트비체 트레킹



헝가리 국경을 넘어 4시간 20분을 달린 그린버스(Flix bus)는 드디어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국경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내가 상상했던 크로아티아의 모습은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이었는데 강릉을 지나 서울로 들어가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진입하는 느낌이랄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 앞 빵집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다. 점심시간에 맞춰 갓 구운 빵들은 대부분 1-2유로. 저렴하고 먹음직스러운 빵은 부다페스트에서 바가지를 쓴 듯한 억울한 기분을 한순간에 해소시켜 주는 맛이었다. 자그레브에 도착하긴 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도시가 아닌 플리트비체다. 미리 예약해 둔 차를 렌트해서 교통체증이 심한 도심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둘러 렌터카를 타고 출발했지만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오기까지 어느 정도 끈기가 필요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외곽으로 접어든다. 차들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농장도 보이고 양들도 눈에 띄는 걸 보니 이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게 " 우리들은 자연인들인가 봐~"하고 웃는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으니 구글맵에 세 가지의 옵션이 있었는데 일반 도로를 선택한 건 결론적으로 오산이었다. 고속도로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 주행을 해보면 일반 2차선 도로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2차선 도로가 집들도 구경하고 정겨워 나쁘지 않았지만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해가 짧아진 10월의 마지막 밤을 우리는 플리트비체 숙소에 도착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녁 6시의 플리트비체 주변은 암흑이다. 마트는커녕 드문드문 있는 집들도 최소한의 전기를 쓰는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숙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비싼 크로아티아의 전통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짠내여행‘이라고 콘셉트를 잡았는데 자꾸 뭔가 빗나가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적막한 숲 속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찍 일어나는 새 아침의 가족은 당연하다. 간단히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플리트비체로 향했다. 11월 1일 가을로 접어든 플리트비체는 비수기 시작이라 국립공원 입장료가 50% 할인에 식음료도 20% 할인된 금액이다. 하루 전날에만 왔어도 성수기 요금을 지불하는 건데 어제의 손해가 오늘의 혜택인가? 사진에서 보던 에메랄드 파란빛의 호수 색깔은 충분하게 볼 수 없었는데 이유는 플리트비체의 호수물은 날마다 햇빛과 물속의 광물 성분에 따라 빛깔이 달라진다고 했다. 아마 충분히 뜨거운 여름이라야 더욱더 밝고 청량한 녹색의 물을 볼 수 있나 보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웠던 호수들은 굽이 굽이 이어져 장관을 연출했고 트레킹 중에 만나는 작고 큰 폭포들도 각각 플리트 비체에 살고 있는 요정들의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 코스는 A, B, C, K1 ( 1번 입구에서 시작)과 E, F, H, K2 (2번 입구에서 시작) 총 8가지의 코스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H코스는 6시간 이상을 걷는다고 해서 애초에 생각을 안 했는데 한국 사람들의 등산 사랑은 해외에서도 유명한 듯하다. 우리 가족은 가장 기본인 코스 A를 선택했고 2시간 정도 돌아보고 오는 단코스였다. 간간히 만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표지판을 보며 가는 길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바쁜 일상에서 회복되는 느낌이다. 길을 따라가다가 더 이상 A코스 표지판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사람들도 별로 없네? 그제야 신랑은 아껴뒀던 데이터를 이용해 지도를 검색했다. 어쩌다 보니 우린 C코스에 서 있었다. 어느 갈림길에서 잘못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안쪽으로 들어왔다. C코스는 4~5시간 동안 더 깊이 들어가 폭포와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잠깐 한숨이 나왔지만 우리 모두 웃으며 " 가면 되지 ~ 갑시다. 날도 덥지 않고 걷기에 딱이지 뭐~~"


사실 C코스는 거치지 않았으면 아쉬웠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포인트들이 많이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바타의 주인공들이 나올 것만 같은 폭포를 만났다.


"오히려 좋아"


지난여름, 학교에서 만들어 온 려환이의 부채에 '오히려 좋아'라는 문구가 있었다. 예쁜 그림대신 왜 글을 썼냐고 물어보니 특별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꼭 그림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떠오른 문구라고 했다. 맞다. 오히려 차선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 출구. 아이들은 지쳐갔다. 화장실도 없고 애초에 단코스 트레킹을 예정했기에 따로 챙겨 온 간식도 없었다. 아이슬란드 화산 트레킹을 떠올리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아이들을 다독였다. 배는 고파지고 화장실은 급해지지만 울창한 가을 산자락을 낀 호수는 깊이가 느껴질 정도로 진한 초록을 보인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봤냐고 물어봤지만 '봤다'와 '못 봤다'의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그러다가 멀리 산자락 위로 버스가 지나간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출구가 나올 거 같았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드디어 우린 출구를 찾고 돌아올 수 있었다.


때론 계획되지 않는 길로 접어들 때도 있다. 다시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냥 새로운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을 만나거나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기도 한다.

또 그 길이 내가 만나기 전엔 절대 모르는 나의 인생길이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린 계획엔 없지만 새롭고 멋진 루트를 6시간 동안 함께 걸었다. 다행히 그 길은 아름답고 신비로워 행복한 결과를 선사했지만 만약 그 길이 어둡고 막막할지라도 함께 걷는다면 금세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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