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 : 불타는 금요일 밤

by 리나

13일 금요일 ‘ 불금 : 불타는 밤 ’


한 시라도 빨리 그녀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회사의 일정이 종일 있다.

일찍 끝나기는 커녕 원래 퇴근보다 안 늦어지면 다행이다.

서른 명이 넘는 응시자에게 똑같은 말을 묻고 비슷한 대답을 듣는다.

드디어 길고 긴 면접이 끝났다.

그녀에게서 문자가 와있다.


1. 해당 호텔에 신속히 주차를 한다.

2. 체크인을 하고 룸키를 받는다. (리버뷰를 요청할 것)

3. 센트럴파크 컨베이어를 돌고 있는 수화물을 찾으시오.

(유사 짐짝이 많으니 타인의 수화물과 헷갈리면죽어?)


다소 지시적인 문자이지만 쩝, 시키는 대로 해야지.

송도에는 몇차례 일로서 온 적은 있지만

나는 ‘센트럴파크’라는 곳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화려한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호수와 산책길, 공원 안에 한옥마을까지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나저나 컨베이어 벨트에서 그녀를 서둘러 발견해야 할 텐데.


다행히 저 멀리서 짐짝이 보인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으로 그녀가 걸어온다.

베이지색 코트와 아이보리색 니트 스커트를 입고

리본 끈으로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무척 단아해 보인다.

요조숙녀같은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풀어헤치고 내 맘대로 다루고 싶어진다.


강변을 따라 손잡고 걸으며 그녀의 샴푸 향을 맡는다. 특별한 향수를 쓰는 것 같지는 않는데 그녀만의 체취가 은근히 있다. 화이트 와인같은 프루티하고 싱그러운 풀냄새, 뭐더라~ 쇼비뇽 뭐인가?

호텔은 3성급을 예약했지만 식사는 5성급으로 정했다.

그녀는 경제적인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쓰는 듯 했다. 나는 모든 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깟 식사비 쯤이야 풀코스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그녀는 풀코스 정찬이 아니라 간이 음식이 제공되는 와인바인 (winewein)을 택한다.

65층의 뷰는 가히 홍콩 하버뷰를 연상하게 하는 멋진 야경이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풍경으로 마치 해외에 온 듯 하다.

‘오늘 밤은 홍콩 가나?’ 언제나 적절한 비유와 위트로 그녀는 나를 웃음짓게 한다.

와인은 얼마든지 원하는 데로 골라 먹을 수 있게 화이트, 레드, 샴페인이 제공되고 탭을 눌러 따르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제일 먼저 프랑스 샤도네이를 고르고 직접 두 잔을 따라 테이블로 가져온다.

‘샤~ㄹ도네이’ 그녀가 불어전공자 답게 멋진 발음을 하며 글라스잔에 키스하고 혀를 움직이며 굴린다.

“ 역시 프랑스!~ 화이트 와인 샤도네이 품종은 다루기가 까다로워.

뉴질랜드의 쇼비뇽 블랑은 따라오지 못하는 델리키트함이 있지 ”


설명을 듣고 맛을 보니 뭔가 다르긴 하다. 화이트이면서도 깊고 섬세한 맛, 품격있는 향이 어우러진다.

다음으로는 각자 레드 와인을 골랐다.

그녀가 고른 것은 역시 프랑스의 메를로, 나는 아르헨티나의 말벡이다.

여 “너는 역시 남자였어, 말벡은 말보로 같은 강인한 남자의 묵직함이지”

나는 말벡을 좋아한다. 향이 아닌 탄닌의 드라이함을 즐긴다.

여 “ 드라이 한 거 좋아해? ”

남 “ 응, 너는? ”

여 “ 촉촉한 거 ”

이런 려자,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마지막 디저트로 케익을 가져온다.


“ 티라미슈가 무슨 뜻인 줄 알아?

티라는 올린다는 뜻이고 미는 나를 말해, 슈는 위를 말하지”

“ 나를 위로 올려준다? 엑스타시 이네”

“ ㅎㅎ, 많이 먹어~”

두시간 동안 둘만의 응큼하고도 말랑말랑한 대화가 이어진다.


시계는 8시를 향하고 있고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공원으로 다시 달려간다.

마지막 보트를 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녀는 문(MOON)보트를 타고 싶어했다.

어찌나 배의 초승달이 조명과 함께 예쁘게 강물에 비치는지 그것도 전기동력으로 가기에 펌프질을 할 필요도 없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초록색 초승달의 보트를 탄다.


빛과 색으로 출렁이는 물결과 적당한 밤안개의 습도가 묘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보트 안 둘만의 공간에서 그녀는 조그만 쇼핑백을 꺼내 나한테 준다.


“생일 축하해”


어, 이건 뭐지? 진짜 1도 기대 안했는데.

이런, 황송할 수가. 내 생일은 그냥 너이면 되는 건데.

“와, 진짜 너 다 짜고 왔구나.”

혀가 내둘러지는 진정한 ‘The moment of Truth’ 정확한 타이밍이다.


고급스런 리본과 포장지를 뜯자 향수가 나온다. 프랑스필 제대로 나는 CREED 어벤투스 이다.

백화점에서 30만원이 넘는 고가로 눈팅만 하는 범접하기 어려운 향수였다.

크리드는 종교적인 신념을 뜻한다.

나는 이제 그녀에게 헌신과 충성을 약속한다.

그녀는 나의 교주가 될 것이다. 아니 창조주 이시다.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 네 생일은 오늘이야, 왜냐면 너는 오늘 다시

태어났으니깐. 내가 너를 create 했거든.”


별자리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별자리 어플을 열어 보여주었다. 이런 거를 여자들은 좋아한단 말이야, 흑.


밤 하늘에는 페르세우스 별자리가 보였다. 페르세우스는 행복한 남자의 별자리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동강내는 강력한 남자,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차지한다.


낭만적인 보트 데이트가 끝나고 우리는 호텔로 걸어간다. 그 오백미터가 어찌나 길던지 호흡을 가다듬기 어렵다.

긴장하는 나에게 그녀가 불쑥 질문을 한다.

“ 에스이엑스에서 가장 중요한 함수는 무엇이지? ”


또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다. 잘 생각해야한다. 정해진 답을 찾아야한다.

“ 마음이 아닐까… ”

“ 너무 광범위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을 해봐. ”

“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하니깐, 그게 아니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 ”

“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교감이겠지. 중간점수 이상은 되네.”

“ 그럼 너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은 무엇인데? ”

“ 나는 브레인이라고 생각해. 뇌에서 반응하지 않으면 안되지.”


오늘 또 한가지를 배운다. 뇌로 하는 거였다.

그녀는 ‘뇌섹녀’가 분명했다.


뉴런은 축삭돌기의 시냅스를 통해 전기적 정보를 다음 세포에 전달할 것이다.

나의 연애세포가 깨어나고 있었다. 어서 화학적 신호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그녀의 뉴런과 교신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