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나의 연애소설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관찰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바로 그 소설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소설, 그에게 바치는 헌정사같은 글들에는 그간의 나의 감정과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이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나있다.
여자에게 아니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쉽지 않은 용단이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 감정을 적당히 포장하고 살고 있다. 대화에는 본심과는 다른 맥락들이 혼재되어 사실 대화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유추한다는 것은 큰 오차가 있다.
‘너를 보고 싶다’ 는 말은 ‘어디야?’ 로 바뀌고 ‘너를 안고 싶다’는 말은 ‘좋은 꿈꿔’로 바뀐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낱낱이 해체해 민낯을 보여주는 쪽을 택하고 논픽소설을 써서 그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답이 없다.
마치 고백을 했는데 대답을 듣지 못한 것처럼 불안불안한 시간들이 이어진다.
그에게로부터 어떤 언급도 전화도 받지 못한 채 하루가 흘러갔다.
‘바빠서 제대로 보지 못한 거’ 겠지
‘회사라서 뭐라 말하기 뭐했나’ 보지.
‘약속이 많아서 전화를 못한 거’ 겠지.
내가 이래서 전화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거였다.
전화를 건다는 것은 상대를 길들이는 것이다.
자기가 편한 시간에 전화하고 바쁘면 안해도 되지만 상대는 이제 전화가 오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전화가 오는 타이밍과 횟수를 분석하며 앞으로의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이틀이 지나자 이제는 그쪽에서 다급해졌다. 본인이 타이밍을 놓친 것을 느낀 것 같다.
남 ‘집이니?’
여 ‘아니’
남 ‘모임 있어?’
여 ‘응’
남 ‘끝나면 전화해줘’
여 ‘밧데리가 남아있어야 할 텐데… ’
평소 나는 밧데리를 일부러 충전하지 않는다. 문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특히, 누군가를 만날 때는 핸드폰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차피 답을 바로 안할 거면 밧데리가 남아있지 않는 편이 변명을 대기도 쉽다.
잠깐 고민이 되었다. 전화를 하지 않는 편이 그간의 내가 전화를 기다린 것에 대한 모종의 응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쓸데없는 기싸움이나 그런 걸 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내일의 약속을 위해 무척 기다리고 스스로 기획해오지 않았던가.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한 후 나는 못참고 전화를 하였다.
상대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성질 급한 나는 대뜸 내가 따지고 싶은 것부터 묻는다.
“ 내가 전화 안했더라면 너는 어땠을까 ”
“ 그냥 뭐, 모임이 늦어져서 그런 거라 생각했겠지 ”
“ 그래도 전화 안해줘서 속상하지 않을까 ”
“ 응 ”
“ 왜 내 글 읽고 대답을 안해줬어? ”
“ 사실 내가 늦게 들어가서 아침에 회사에서 대충 봤거든. 회사에서 길게 문자하기도 뭐하고.
그냥 ‘잘봤어’ 그런 정도로 말할 수는 없기에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근데 또 회식때문에
다음 날도 타이밍을 놓쳤어.
너가 말했듯 다음 화는 내가 써야하는데 오늘 일찍 들어와서 좀 구상하려고 했거든, 근데 쉽지 않네 ”
“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소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반응이 없을 수가 있어, 내가 얼마나 고민됐는데.”
“ 너 두고두고 그거 원망하겠다. ”
이쯤에서 그쳐야 했다. 남자들은 철저히 이기적인 동물들이다. 자신에 대한 비난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자존감이 강한 남자들에게 그건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칭찬에만 반응한다.
“ 너가 많이 용기 낸 것 같다. ”
“ 사실, 속마음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고
감정을 숨기는데 너한테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건 너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야”
“ 신뢰라는 말 참 듣기 좋다. ”
이건 사실이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대시해도 그는 나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그럴 사람은 아니다. 내가 과감하게 행동하고 표현해도 많이 고민하고 애쓴 것임을 잘 알 것이다.
나 또한 아직도 아이같은 마음이 있어서 내가 노력한 것들을 다 얘기하고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사실 그의 칭찬을 받고 싶은 것 뿐이다. 그게 다이다.
“ 너 마지막 연애가 언제 였어? ”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 모든 연애는 다 처음이라서 ㅎㅎ ”
엉뚱한 대답으로 위트 있게 받아 넘긴다. 너가 처음이라는 뜻을 아니 거짓말을 대신한다.
마지막 연애는 과거를 묻는 질문이다. 여기에 솔직한 것은 절대 안된다.
연인 사이에서 가장 금기시해야하는 것은 과거의 옛 애인 이야기이다.
아무리 궁금해도 묻지 말아야 신상에 좋다. 알면 자기가 다친다.
다시 정확히 단어를 보면 마지막으로 사귄 게 아니라 연애라고 했다. 이것은 언제가 마지막 섹스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내일의 디데이를 앞두고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성적인 호기심은 이미 없다.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궁합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마치 자신에게 딱 맞는 그런 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테크닉이 부족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이런 비유를 들어 상대방을 조롱한다.
“ 골프에서 싱글 플레이어가 특정한 구장에서만
싱글을 친다면 인정할 수 있겠어?
어떤 난이도의 구장이라도 자신의 스코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싱글 플레이어지~ ”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구장을, 장비를, 상대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간단한 질문을 하는 것이 상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 너가 이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야,
어떤 점을 보는데? ”
여기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말한다면 그건 아웃이다. 적어도 중간 이상의 점수를 받으려면 ‘교감’이라는 단어를 써야한다.
그보다 상위 성적을 얻으려면 “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 정도.
이건 내가 여성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만족시켰다는 그 자신감을 얻기 위해 한다.
그래서 끝나고 나면 ‘좋았어?’ 를 물어보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많은 남자들이 참지 못하고 이 질문을 하는 데 참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그럼 ‘나빴어’ 라고 말할 수도 있나?
여자가 손수 요리를 해주고 ‘맛있어?’라고 남자에게 물으면 '맛없다'고 말할 수 있나?
절대적 평가와 상대적 평가의 두 측면이 있다.
절대적인 것이란 일종의 장비같은 것이라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상대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자산과 능력이다.
상대적인 것이란 상대와의 교감 정도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감성적인 측면의 것이다.
서로의 호흡이 맞아야 되며 상대방이 받아줄 수 있는 스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레벨이 맞지 않으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며 그건 재미없다.
흔히들 헤어지는 이유를 성격차이라고 하는 데 그것은 알고 보면 성의 격차이다.
여기에 보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브레인’이다.
요즘 뇌섹남, 뇌섹녀가 인기이듯 머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상상력으로 이뤄지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뇌를 자극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 어떤 것도 허용될 수 있는 지.
남자들은 사실 두가지의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다.
한 편으로는 내 여자가 처녀성의 순수함을 가졌으면 좋겠고 한 편으로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욕정이 넘치는 샤론 스톤이기를 바란다.
여자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최고의 자극을 선사한다.
그러나, 순간 ‘ 너무 잘하는데? ’ 하는 의심이 된다.
잠자리 스킬은 어느 정도는 경험에 비례한다. 초짜가 잘 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적지않읏 경험과 연구, 실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그의 별자리를 믿어본다.
가장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전갈자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