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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Sep 18. 2024

T1 선한 영향력

#핵심가치와 규율

7년 만의 우승이다. 예상보다 가볍게 T1이 중국팀을 누르고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 왕좌에 올랐다. E스포츠계 레전드 팀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승리가 확정되고 선수들이 무대 중앙으로 모였다. 그때 하얀색 티에 하얀색 모자를 쓴 T1의 수장 조쉬가 뛰쳐나와 선수들을 부둥켜안았다. 조쉬와 선수들 그리고 T1의 스텝들이 얼싸안고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수고 많았어요! 우승 축하해요.” 짧은 축하 메시지에 바로 답이 왔다. “우승도 기쁘고요. 그것 못지않게 T1 팬들이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것도 기뻐요!” 사연이 있는 듯하여 검색해 보니 이런 사진이 나왔다.


      

T1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방을 멘 청년이 지하철 한구석에서 뭔가를 닦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오물을 닦고 있는 뒷모습을 누군가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했던 모양이다. 이 사진은 순식간에 퍼져 T1 팬들 사이에 선한 영향력의 물결이 일어났다. 우승의 기쁨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다. 조쉬와 코칭을 통해 나눴던 비전이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조쉬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꿈많은 청년이었다. 이제 T1을 통해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21년 가을, 조쉬의 초대로 T1 LCK팀과 처음 만났다. 언제인지 기억조차 흐릿한 망해 버린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매너저가 다가와 선수들 가운데 앉으라고 했다.      


“기념사진 찍어드릴게요.”

     

매니저의 말에 선수들은 둥그렇게 내 주위에 둘러앉았다. 하나, 둘, 셋 외치는 소리에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그냥 무표정하게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다. 이 선수들과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구나. 아쉽기만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한 선수가 다가오더니 연락해도 되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닌가. 오늘 강의를 듣고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며 연락해도 되느냐고 물어서 흔쾌히 언제든 연락하라고 답했다. 그렇게 얘기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다른 선수가 앞을 가로막고 서서 오늘 하는 강의가 다 자기 얘기 같았다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아! 망한 게 아니었나. 그럼,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의문을 품은 채 해를 넘겨 두 번째 T1 워크숍에 초대를 받아 가니 매니저가 나를 반기며 이렇게 얘기했다. 선수들이 첫 번째 워크숍 얘기를 아직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망한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뭐지? 궁금해서 선수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그때 집중해서 듣느라고 그런 표정이 나온 것 아니겠냐며 도리어 내게 반문했다.

     

나중에 단장과 감독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T1 선수들은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인 만큼 집중력이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무릎을 탁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집중력을 지닌 선수들이 초집중 상태에서 보인 반응을 무관심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야말로 미친 집중력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집중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선수들에게 도리어 묻고 싶었다. 첫 번째 워크숍을 마치며 나는 선수들에게 물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오늘 워크숍에서 무엇을 알게 되거나 깨닫게 되면 오늘 워크숍 참여한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단 한 명의 선수도 예외 없이 이렇게 답했다.      


“리더십! 제대로 된 리더십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리더십을 발휘해서 팀을 하나되게 하고 강한 팀을 만들 수 있나요?”      


두 번째 워크숍 주제가 정해졌다. 나는 선수들과 리더십을 주제로 한나절을 씨름했다. 우리는 역동적으로 작업했다. 그야말로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필이면 워크숍 날짜와 대학원 강의 날이 겹쳐 마음이 분주했다. 워크숍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서울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때 조쉬가 나머지 작업은 자신이 끝내겠다며 얼른 준비해서 강의하러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이미 마커 펜은 조쉬 손에 들려 있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 조쉬로부터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선수들과 스텝들이 늦은 밤까지 한마음으로 핵심가치와 팀 내 규율을 정리했단다. 하나 된 강한 팀을 만드는 리더십을 주제로 온종일 씨름한 끝에 그들 손에 남은 건 핵심가치와 규율이었다. 그날 워크숍으로 팀은 방향을 잡고 나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시즌에서 T1은 전승으로 우승했다. 바람대로 강력한 원팀이 된 것이다. 어쩌면 e스포츠 역사에 전설로 남을지도 모를 그날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그들을 감히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팀으로 변모시켰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이야기와 만났다. 늘 그렇듯이 이야기와 만난 사람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야기는 우리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자리로 옮겨놓는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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