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보낸다 37
너에게 잘 가기 위하여 나는 무엇부터 해야만 할까
너에게 잘 가기 위하여 나는 오늘 백미러를 다시 본다
나는 세상을 모른다
나는 세상을 읽는다
그리고 나는
작고 아름다운 나라
세상 하나를 만든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이제 다시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싶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발행했던 시집 네 권이 모두 절판이 되었습니다. 인연이 된다면 선집을 발행하거나 한 권으로 통합해서 다시 발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산문들과 함께 <시와 산문>으로 발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인연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의미 있는 동반자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좋은 인연을 기다리며 먼저 제가 걸어온 지난날의 흔적들을 조금은 알려드리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여 발자국 몇 개 찍습니다.
( 나는 2023년 5월 20일 <이어도공화국 5 - 우리들의 고향><이어도공화국 6 - 서천꽃밭 달문 moon>을 동시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사실은 <이어도공화국 5>는 이미 발행이 되었으나 <이어도공화국 6>은 표사를 쓰기로 한 이병률 시인이 중국 여행 중에 있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성명 : 이어도, 강산, 성인해
본명 : 배 진 성 ( 裵 鎭 星 )
1966년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신인 발굴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서울예대 졸업, 방송대학 졸업
동국대학 대학원 중퇴
『이어도공화국 序 - 백 년 동안의 꿈과 희망』
『이어도공화국 1 -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이어도공화국 2 -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
『이어도공화국 3 - 길 끝에 서 있는 길』
『이어도공화국 4 - 꿈섬』
『이어도공화국 5 - 우리들의 고향』
『이어도공화국 6 - 서천꽃밭 달문 moon』
화순은 습기가 많아서
식물은 좋아라 하지만
사람은 살기가 어렵다
장마철 습기는 무섭다
성현이 동현이 와보고
에어컨 설치해 주었다
고맙다 성현아 동현아
왜
하필
무화과나무 잎이
이브의
팬티로
사용되었는지
그대가
직접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오늘은 새벽부터 참 많이 바빴다
누나 환갑을 부모님 산소에서 시작했다
벌초를 하고 절을 하고
연어의 종착역에서 다시 출발했다
빛고을 광주로 다시 돌아와
찜통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찾아다녔다
오토바이 사고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매형을 수시로 입원시키려고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서 곰탕집을 하시는 누나
박복한 어머니를 닮아 평생
땀과 눈물로 곰탕을 끓이시는 하나뿐인 누나
에어컨이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찜통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끓이고 계시는 누나
오늘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에어컨 만은 고쳐주고 돌아가리라
에어컨 냉매를 보충하려고 기사님을 불렀더니
실외기에서 냉매가 흘러나온 흔적이 선명하구나
용접을 하고 냉매를 완충하고 다시
에어컨을 켜보니 압축기에서 분수를 이룬다
어쩔 수 없이 하이마트에 가서 알아보아도
일주일 후에나 설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중고를 알아보려고 돌아다닌다
거기서도 며칠 뒤에나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곰탕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닌다
다행한 일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쌓아온 공덕으로
겨우 에어컨 설치를 하고
나는 공항에 와 있다
나는 광주 전철을 타보고 싶어서
기어이 누나의 호의를 뿌리치고
추어탕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전철을 타고 광주 공항에 와 있다
공항은 떠나는 곳이 아니고 쉬는 곳이로구나
광주공항에서 나는 고향의 그림 속에서 쉬고
누나는 드디어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아들 딸 손주들과 함께 시원한 저녁을 먹을 수 있으리라
오늘은 참 많은 땀을 흘렸지만 참으로 가볍구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날아오를 듯 날개가 돋는구나
육지는 비가 많은 모양인데
제주도는 가뭄의 나날이다
이제는
하늘도 지역감정이 심한 것인지
하느님이 너무 바빠서
골고루 비를 뿌리지 못하고
그냥 한 곳에 쏟아붓고 쉬는 모양
어쩔 수 없다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을
꼭 도와드려야만 하겠다
오늘은 찜통더위에
이틀째 연못을 만들고 있다
무심한 바위도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미나리 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다
나는
해바라기의 해보다
해의 가슴속
별들의 젖꼭지를
더 좋아한다
하나
길이었다 덜 자란 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어머니는 방물을 파셨고 새벽 샛강의
입김 자욱한 안갯속으로 떠나시곤 했다
나는 담장 밑에 펼쳐놓은 꼬막껍데기에
쑥국 끓이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
노을만 어렵게 어렵게 감아 들이던
바람개비가 스스로의 바람결을 가늠할 수 있을 때
물오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파랑 간짓대 들고
오리 떼를 몰아내던 골목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 뒷모습을 지우던 안갯속으로
하얀 꽁무니가 사라지고
나도 그 속으로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
둘
할아버지 산소가 보이는 징검다리 사이로 햇살이
주검처럼 부서지며 흘러갔다 하류에서
한 몸으로 몸을 섞기 위해 취로사업 나가신
아버지가 무너진 둑에 묻히고 작업복이 천수답
허수아비에 내걸리던 날도 나는 그 저수지 뚝에서
삐비 꽃을 뽑아먹고 돌아오는 길
가로수 구멍 속에 몇 개의 돌을 더 던져 넣었다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
그 해 여름 장마는 담장의 발목을 적셨고
두꺼비 같은 우리 식구들은
한밤중에 회관으로 기어 올라갔었다
셋
학교 앞 코스모스로 기다리기를 즐겼다
하학종소리 사이로 보이는 형의 검정고무신 앞은
발가락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생활 보호 대상자
가족 앞으로 달려오는 옥수수 빵과 건빵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뿔 필통 속 몽당연필로
흔, 들, 리, 며, 징, 검, 다, 리, 건, 넜, 다,
끈이 풀리는 소리로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는
우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 다녔다
넷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기차놀이하던
우리들은 그 새끼줄 속에서 자유로웠다
우리들의 기차는 징검다리를 비로소 건너 다녔고
오후의 서툰 기적소리 울리며
동구 밖까지 나가 놀던 소아마비 동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찾다가 찾아보다가
어린 집배원이 된 큰 형도
동생의 소식은 가져오지 못하고 한 떼
건너가는 동네 아이들만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다섯
여울물 소리는 끈이 풀리는 소리였고
또다시 묶이는 소리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던
누이가 파란 눈의 아이를 보듬고 돌아와
빨래터에는 방망이질 소리가 잠들지 않았고
헛발 짚은 어머니는 물속에 더욱 자주 빠지셨다
……………… 배고픔과 어머니 ………………
들판에 흐드러진 달맞이꽃 사이로 그렇게 어머니는
젖은 보름달을 이고 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미소 주인이셨던 아버지가
벨트에 물려 끌려가던 날부터 축이 헛도는
천장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
빈 들판으로 내쫓겼다 발동기 같은 큰 형은
발동기를 뜯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넘어 다녔다
타맥기도 부서진 아버지 갈비뼈처럼 풀어
옮겨 맞추곤 했다 경운기들이
손쉽게 해치우고 들어가 쉬는 동안에도 우리는
들판에서 밤늦도록 이슬에 젖어야 했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서 카바이드를 녹이는 물처럼
우리 식구들의 가슴은 애타게 들끓었다
불이 꺼진 뒤에도
카바이드 깡통 속에는 몸살 나게 아름다운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보리 한 됫박 퍼내어 바꿔온 복숭아를
보리 창고에서 나눠먹곤 했다 큰 형 몸에서는
늘 기름 냄새가 났고 바뀐 논에 말뚝을 박을 때마다
우리들의 들판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함부로
골병들어 거덜 난 보릿대를 곁에 쌓는 작은 형
보리 무덤에 검불을 쓸어내는 누이는
갈퀴와 고무래처럼 한없이 슬픔을 후볐다
가마니 한 장 크기의 그늘 속에서 조용히
기어 다니다 잠들곤 하던 나는 자연 숙제로 기르던
거꾸로 매달린 형의 무
그 속에서 싹트는 콩 거꾸로
자라던 허약한 순만 바라보며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많은 날들 다음으로 오는 오늘
털털털 탈탈탈 털털털털털 탈탈탈탈탈
들판을 온통 뒤집어 엎어버리던 경운기가
골목마다 들쑤신다
추곡수매 공판날 줄서가는 아침
하곡수매처럼 저 멀리 노인들이 손수레 밀고
끌고 오신다 빈 들판에 바람이 껍질을 벗고
지나간다 그 길가로 바람의 껍질이 차갑게 쌓여
있다 월경리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는 힘센 들짐승이다 그러한 아침
나는 다른 계절 속으로 떠나 눈길에 경운기
발자국을 만들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걸어서 간다
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선은
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
외톨이처럼
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춧대가 휘청거렸다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
새는 약속처럼
한꺼번에 떠났다
고추나무는
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
살벌한 평화처럼
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하늘은
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진다 다시
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
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
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
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
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 집은
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 지어
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매달린 우리는 건너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
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
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들의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몽둥이질
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
갈겼다 검은 까마귀는 떼로 몰려와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
흰 구름 변두리에 걸린 빛의 폐곡선에
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
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
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