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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3. 2023

왜 갑자기 그날이 생각나는 것일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38




 수술 전날 나는 모란동백을 들었다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고 마리안느에 가서 들었다







끊임없이 부대끼며




생각의 갈피들이 버스 속에서 부대끼며

즐긴다 창밖에서 자전거 탄 네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넘어졌다 넘어지며 자빠지며

미끄러지며 살자 끊임없이 부대끼며

가끔은 흔들리며 그 흔들림 속에서

보리밭 사이를 간다 멀리 산과 산 사이로

굽어 사라져 버린 길 속으로 돌아 들어가

나는 없다 온통 갈아엎어 놓은 땅

빈 논에는 토박이 새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보리 싹들이 몸 부대끼며 살아가는

보리논은 그래도 따스했다 속 깊이 파헤친 세상

그 속에서도 몸 비벼대며 살아갈 이웃이 있으면

가슴 따뜻하다 우리

겨울새들도 겨울 속에 갇혀

공동묘지의 비석 없는 무덤들도 함께

오래도록 기억된다 우리들은 아름답게

오랜 기억이고 싶다 그리고 꿈결 같은 바다     

바다가 있는 풍경 그 속에서 바다는

집착을 버리는 몸짓으로

내가 있는 시간 속으로 끊임없이 다가와 닿고          





강산 34분



사람들이 이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지하로 이사를 하면서

하늘나라에 간다고 말을 한다

땅에 묻혀 흙이 되면서

하늘의 별빛이 된다고 말을 한다


어제는 코로나19, 3차 백신을 화이자로 맞고


오늘은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서 

나의 가슴뼈를 들여다보고

가슴뼈를 묶어주었던 철사들을 보면서

고장 난 어깨 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를 받고

안마치료를 받고

전기치료를 받았다

한동안 오른쪽 어깨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엎드려서 오른팔을 위로 올리면 가장 아프고

그냥 있어도 아프고

움직이기 힘이 들 정도로 많이 아프다


아,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나도 이제 마지막으로 이사 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시나브로 이삿짐을 싸면서 생각한다

이번 생

지구에서의 이번 생은 그래도 참 따뜻하였다

지구에서 나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토성에서 온 나는 지구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다음 생에는 어느 별에서 또 한 생을 살 수 있을까


 


강산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4년 전 오늘 나는 참 예민해져 있었구나. 아침부터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고 수술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그런 와중에도 나는 간호사 몰래 빠져나가 노래를 들었구나. 나를 위로한다고 찾아오신 김종순 박사님과 송예진 후배님이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구나.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이제하 선생님께서 직접 불러주신 모란동백을 듣던 그날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강산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오전 7:55  ·           

                                

오늘 오전에 ct 촬영을 한다고

어젯밤부터

금식하고 조영제 먹고

0.9% 생리식염 주사를 맞고

간이 심전도 기계를 부착했다

나의 심전도를 보니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내 심장이 참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규칙적으로 쿵 쿵 힘차게 뛰지 못하고

쿠궁 쿠궁 잔파도를 이루며

힘겹게 힘겹게 쥐어짜고 있구나

미안하다

사랑하는 나의 심장아

너를 너무 힘들게 하여 너무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한없이 사랑하는 나의 하트여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의 심장이여

그렇게 힘들어도 쉬지 않고

끝끝내 잘 뛰어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


그런데 복도보다 병실이 더 열악하다

온도는 너무 높고 습도는 너무 낮다

통풍이 거의 되지 않아 공기도 나쁘다

이러다가 없는 병도 더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건물도 너무 늙었고 시설들도 너무 낡았다

북한과 전쟁놀이할 돈을 의료사업에 투자하면 좋으련만...,





강산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오후 2:30  ·                                              


흉부외과 전담 간호사님이신 김영은 간호사님은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다

주치의는 아마도 전공의 과정에 필요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름만 올려놓은 모양이다


김영은 간호사님 말씀에 의하면

오늘 ct 촬영에 이어서 내일 mri(?) mra(?)까지 검사를 해야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수술을 할지 결정된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에 검사한 심장 초음파 결과로는

대동맥판막 앞길이 많이 좁아진 상태이며(근종? 심실 벽 두꺼워짐?)

승모판막 주변의 석회화가 심해진 상태라고 한다

( 승모판막까지 문제가 생겼다 하니 수술이 좀 복잡해질 듯 )

그러니까 나의 왼쪽 심실이 문제 좀 많은 상태인 듯하다

네 개의 방 중에서 왼쪽 심실이 많이 좁아지고 아픈 듯

그렇지, 이게 다 내가 속이 좀 좁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좀팽이로 살아온 삶을 하루아침에 태평양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넓고 깊게 살도록 노력해야만 하겠다


누워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김기봉 교수님 칭찬이 자자하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 사망사고 소문이 눈발처럼 흩날린다

그런데 나는 Ct 검사실 천정에 붙어있던 나무 사진이 자꾸 떠오른다

잎과 가지는 자귀나무를 닮았는데 꽃은 붉은 하트 모양인데

검사실 사람들도 이름을 모른다는 그 나무와 푸른 하늘이 자꾸만 떠오른다





강산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오후 11:19 ·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

고마우신 송예진 후배님

눈도 오고 추운데 오셔서

너무나도 큰 힘을 주셔서

감사하고 고맙고 좋습니다


그 고마운 힘으로 꼭 성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오늘 밤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 선생님

이산하 시인님

황인숙 시인님

박철 시인님

기형도 시인 누님

그리고 박경하 가수

...,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밤입니다


이 크고 깊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반드시...,






제주에서 인사동까지      

이어도 13.06.06 18:37


오랜만에 공항에 왔다


제주공항 활주로에는

제주 4·3 희생자들이

아직도 많이 묻혀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그들의 영혼을 신나게 짓밟고 다닌다


거대한 시조새들이 아스팔트 아래

땅 속에 묻혀있는 영혼들을 깨우며

활주로를 돌고 있다


나는 그 거대한 쇳덩이

시조새의 내장 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까치를 닮은 바퀴 달린 무시무시한 시조새 한 마리가

내 영혼의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대가리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힘차게 아스팔트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너무 오랫동안 한라산만 바라보고 살았던 나는

너무 오랫동안 제주바다만 바라보고 살았던 나는

오랜만에 한라산 위에서 한라산을 내려다본다

아주 오랜만에 하늘에서 제주바다를 내려다본다

바다에는 아직도 내가 갇혀 살았던 멍텅구리배가 떠 있다



무거운 시조새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축축한 구름을 뚫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는 신의 눈에는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도

마음이 넓은 신들의 눈에는 귀엽게만 보일 것이다



나와 나의 마음을 가두었던 수평선도 어느새 사라지고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해안선도 이제는 경계가 사라지고

계곡들의 경계선들도 이제는 큰 산의 품 속으로 안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이제는 바뀌어야만 할 것 같다

이제는 이렇게 바뀌어야만 할 듯싶다

시작은 반이 아니라 반 이상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작고 아름답다

더 높은 하늘에서 지그시 내려다보는 신의 눈에는

이 지상이 얼마나 작게 보일 것인가

저 작은 땅에서

아옹다옹 땅따먹기 놀이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귀엽게 보일 것인가



그런데 인간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잠시 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늘의 시간

하늘에서는 나도 잠시 신을 닮아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하늘에서 살고 싶은데

나는 곧 착륙을 준비해야만 한다

나의 삶도 이제는 곧 착륙을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륙하지 못했는데

나는 아직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벌써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착륙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이륙보다 착륙이 더 위험하고 더욱 중요하다


다시 안전벨트를 꽉 조여매고

앞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얹고 버티며 착륙에 대비하기 시작한다



나와 나의 문학은 아직도 출발선 부근에 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엉겁결에 출발선에 섰다가

땅!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소리에 놀라

나는 그만 제대로 출발하지도 못하고

출발선 부근에 있는 숲 속으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너무 겁이 나서 그랬던 갓일까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헤매다가

나는 이제 겨우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너무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갈 곳이 없다
두두는 늦은 세 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길은 공사 중이고 두두 안에는 작은 의자들이 천장에 매달려있다
마로니에 공원 공사용 간이 담장에는 연극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오래된 은행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앉아있고
비둘기들은 부지런히 탁발수행을 하고 있다
오른발에 큰 상처가 있는 비둘기도 열심히 아스팔트를 쪼아대고 있다
간간히 참새들도 틈을 놓치지 않는다

갑자기 혜화역 2번 출구가 짹짹거린다
안산에서 단체로 왔다는 사백 명의 중학교 일 학년 학생들과 인솔교사들이 시끄럽다
비둘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날아오른다
시크릿 공연을 단체로 함께 보러 왔다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니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다
길 건너편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서울대학병원 담장 가득 눈물이 얼룩진다


1990년 여름 나는 극적으로

저 서울대학병원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내가 두두에 다시 다녀오는 동안 안산에서 온 중학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학로에서 사주를 보고 있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번에는 남양주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왔다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안산 중학생들과 달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학생들이었다

내 옆에 앉은 여학생이 설문지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크게 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설문을 조사하기 위해

남양주에서 대학로까지 대학생들을 찾아 원정을 나온 것이었다


그 여학생을 보자 나의 성북 학생회 시절이 떠올랐다

성북 학생회는 고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합숙 생활을 하며 철 지난 주간지 잡지책을 팔아 돈을 버는 단체였다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 앵벌이 단체였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여 학비를 벌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미 대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단 한 장의 설문지도 받아내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잡지책 한 권도 팔지 못하고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고 한숨짓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자처해서 설문지를 작성해 주었다


졸업 후 가장 고민거리를 묻는 설문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취업"이라고 체크했다

나는 잠시 시인이 아니라 대학생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귀여운 여학생에게

설문지를 잘 받을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성북 학생회 시절에 배운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그렇게 한 장의 설문지 받는 일에 성공한 그 여학생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용기를 얻은 여학생은

조금 전의 난감한 표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적극적으로 설문지를 받기 시작했고

심지어 다른 친구들도 그 여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병원 후문에는 오늘도 여전히

환자들의 쾌유를 빌며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이 계셨다



내가 1990년 6월에 부활한 서울대학 병원에 갔다

오늘은 환자가 아니라

추억을 찾아서 왔다

나무들이 참 많이 자라 있었다

병원에는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알리지도 않았었는데

오규원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알고

이 못난 제자를 찾아오셨을까

그리고 그때

오규원 교수님과 함께 나를 찾아왔던 후배는 누구였을까

꽃다발을 전해주고 갔던 그때 그 후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린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서울대학병원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있다



오늘도 많은 연극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혼을 불사르고 있다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낙산에 올라갔다

낙산 정에서

귀엽게 사랑을 속삭이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며

서로의 귀에 꽃을 꽂아주고

착 달라붙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나는 왜 저만한 나이에

사랑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을까



두두에서 드디어 만난 구본갑 선배님이 나는 참 좋다

그분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나는 참으로  존경스럽다

구본갑 선배님은 내가 아는 어떤 분 보다도 아름다운 분이시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참으로 행복한 만남이었다

너무 늦게 만난 분들이지만

앞으로 남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내가 존경하는 또 다른 두 분

김종순 회장님과

이능표 선배님이

부부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능표 선배님 댁에서 만난 타자기가 너무 반가웠다

나도 아마 타자기가 없었더라면

너무 악필인 나는 어쩌면

아직도 등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방에도 내가 처음 샀던 마라톤 타자기가 있다



나는 사실

이능표 선배님과

이창기 선배님의

문예중앙 시를 보고

서울예대의 존재를 알았고

서울예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능표 선배님과

이창기 선배님은

내 문학의 등대 이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회장님께서 손수 끓여주신 떡국을 먹고 나왔다


2층에서 주무시고 계신 분들은 카메라에 담아 오는 것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는데, 허락 없이 공개할 수 없어

나 혼자만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했다



용산과 서울역과 남대문과 남대문 시장과 명동은 오늘도 여전히 잘 있었다



내가 하숙했던 남산동 그 낡은 집은 헐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큰 건물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퍼시픽호텔 맞은편에

공사용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좁고 낡은 집에서 나는 1학년을 보냈다

그리고 2학년 때는 백마역 부근에서 자취를 했다 



푸르른 날에

공연 마지막 날이었다

강의실은 레스토랑이 되어 있었고

도서관과 매점은 없어져 버렸다 



교실이 좁아서 야외수업을 자주 하던 남산으로 갔다

그때의 그 목소리들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특히 나는 학교 때나 지금이나

와룡정이 좋다

와룡묘가 좋다



오늘은 안에 들어가 참배까지 하고 나왔다



특히 나는 입구의 계단이 좋다

오늘은 공사 중이었다



공사 중 이어도 나는 좋다

나는 이 계단에

특히 자주 와서

혼자 놀았었다

심장병 환자였던 내가,

내가 계단을 가장 무서워하던 시절에도

나는 이 계단만은 자주 왔었다



어쩌면 조금 불편한 것들이

나는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의 길도

이 계단과 같을 것이다



오늘 자세히 읽으니

와룡묘라고 적혀 있다

나는 와룡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와룡정이면 어떻고

와룡묘이면 어떠랴

어차피 같은 말 아니더냐



오늘따라 유난히

콧구멍이 크게 보인다



야, 이놈아

인상 좀 펴고 살아라 이놈아 



남산 순환로에 꽃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나는 밤마다

이 남산 순환로를 따라

남산타워까지 

홀로 걸어서

올라 다녔다

남산동에 살았던 나는

순전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홀로 쓰러져야만 했던 나는

나의 심장병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참 독한 놈이었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였던 나는

가족들에게 들킬까 봐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까지 멀리 가출을 하였고

서울로의 고등학교 진학은

순전히

합법적인 가출이었다



나는 내가 아파 쓰러지는 것보다

나의 병이 들통나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것이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 집안 형편에

도저히 심장병 수술은 엄두를 못 내는 것이었고

아픈 자식을 수술시키지 못하는 부모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순환로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주로 밤에 남산을 올랐다



지금은 길이 더 좋아져 있다

올라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



우리들의 서울은 오늘도 안녕하다

그런데 정말로 안녕한 것일까?



정말로 안녕하면 좋겠다



와, 이제는 전기버스도 보인다

서울투어 버스도 보인다



장미와 카네이션이 나란히 있다



참 아름답다



꽃도 예쁘고 사람들도 참 예쁘다



그런데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이나미 선배님과의 약속 시간에 늦겠다



남산타워는 오늘도 여전히 잘 발기되어 있다



하늘과 땅은 오늘도 이렇게

사랑을 나누고 있다



정자에도 역시 사람들이 많다



나뭇가지가 때로는 거웃처럼 보인다



벌써 단풍이 든 반역자들도 보인다



남산 한옥마을 쪽으로 내려와

충무로에서 지하철을 타니

안국동이 참 가깝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인사동 거리에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이나미 선배님께서 사주신 청국장이 참 좋았다

러시아까지 다녀오셨다는 이나미 선배님

조교이셨던 선배님을 만나 참 행복했다

그런데

선배님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내 말만 한 것 같아서 많이 쑥스럽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하였을까


참으로 말을 할 줄 모르는 내가 왜, 어째서.....,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 / 배진성

― 어머니, 시인의 월급은 가난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길을 간다

두엄자리 곁에 세워진 아버지의

낡은 지게를 지고 저물녘을 간다

참깨 베러 가신 어머니의 산밭으로

늦은 마중을 간다 오랜만에

바람을 비껴 여름 한쪽 끝으로

산길을 오른다

노을이 차마 곱게 익는다


일찍부터 외항선을 탄 만수

뱃사람이 된 만수네가 새로 장만한

논을 바라보며 들길을 간다

일곱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다시

행정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현길이,

이미 기울어 버린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팔아넘긴 논배미를 지나

쓸쓸하게 걸어간다 새를 쫓는 깡통소리와

반짝이는 반짝이의 마음들이 노을 속으로

새를 날려 보내며 또 내일을 염려하는 가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허수아비는

쓰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질린 비닐 얼굴들이

하늘까지 닿으려는 마음으로 솟아오르곤 했다


콩밭으로 바람이 기어들어가고 밤은

들쥐처럼 숨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산길을 내려온다 가끔

고개 치켜드는 벼 포기 사이로 추억들이

발소리를 숨죽이며 기어 나왔다 나는 참깨를 지고

어머니는 토란대를 이고 오셨다 가슴 조인

달빛이 풀어지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내려온다

― 어머니, 저 이제 시인이 되었어요

― 그래, 시인이 뭣 허는 것이다냐

― 예, 지금까지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에요

밤낮을 밤으로만 지내면서 말이에요

― 그러냐, 그럼 이제 취직이 됐단 말이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것이 아니에요

― 그럼, 시인이 뭣한 것인지 그러냐

오랜만에 네가 웃기까지 하고 말이여

― 예, 앞으로

우리들의 고향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노래? 그럼 인쟈 테레비에도 나온다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게 아니에요

― 그라믄, 시인 한 달 월급이 월마나 된다냐

먹고살 만한 직업이다냐

요즘 시상에는 돈이 최고더라

봐라, 만수는 돈 있승께 다들 걱정허는

장개도 쉽게 간다드라

돈 많은 이쁜 색씨가 낼 모래 온다드라

― 어머니, 하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앞으로 어머니를 팔지도 몰라요

앞으로 고향을 팔아먹을지도 몰라요

시인은 가난한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을 갈고닦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더욱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판 가득 출렁일 때 달빛은 우리가 걸어온 들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와 고향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팔아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땅의 눈물 같은 시 한 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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