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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05. 2023

푸르른 봄날의 여행

너에게 나를 보낸다 40



이병률 시인과 함께 했던 남산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나의 봄날의 씨앗이었다

마음이 아프다 시를 써야겠다

마음이 아프니 시를 써야 한다

몸이 아프면 운동을 하고 마음이 아프면 시를 써라

배진성이 돌아왔다 배진성 시인이 돌아왔다

시야, 잘 있었느냐

내가 돌아왔다

나는 이제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도 이제 달을 따라간다

나는 젊은 시절에 

시는 사찰에서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사찰의 범종소리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는 언어로 만든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언어로 만든 사찰 처마 끝에 풍경 하나 달아놓고

물고기 한 마리 푸른 하늘을 푸르게 헤엄쳐서

당신의 푸른 가슴속으로 날아가는 바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 이제 내가 다시 돌아왔으니

우리 함께 푸른 바람의 춤을 푸른 풍경소리와 함께 출까요

나는 너에게로 가서 너의 가슴속에서 푸르게 살아보려고 

푸른 바람과 함께 푸른 너에게 푸른 나를 보낸다

나를 통째로 잘 받아서 우리 함께 아름다운 시로 살아보자




봄날의 여행




물구나무서기로 오는 새벽

잠 밖으로 따라 나온 숫 갈매기가

나이 크기만큼 열린 새벽 속으로

날아올랐다 몸으로 내린 햇살이 나를

넘어뜨렸다 벌렁 누워버린 그림자쯤으로

낮게 젖어있는 나도 일어서 걷고 싶었다

벌건 대낮에도 속살을 벗어던지는

분수처럼 제자리 뛰기라도 해야 했다

나는 강의실 귀퉁이 태양이 버린

그늘에 그늘로 앉아 그 속으로 달려오는 햇발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였다 기웃거리는

얼굴들이 까마득히 지워져 깊은 칠판처럼

나도 나를 비워버리고 개나리 빗어주는

남서풍 속살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된 나는

바람보다 오랜 기슭을 넘어간다

어깨너머로 휘파람처럼 물러서던 어린 날

모래톱에 묻어두었던 발자국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여울물 소리를 실패에 감으며

부르시던 어머니보다 나이 크기만큼 먼저

도착하여 뒤돌아보면 징검다리에 서 계시는

어머니는 늘 강아지쯤으로만 바라보셨다

그러나 나는 들꽃 속에 숨어 손바닥에

귀 기울이고 잠든 강아지풀을 흔들면 복실이로 

깨어나 꼬리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좋았다

오요요, 오요요, 오요요요, 요요요요요요 ………,

손금을 밟으며 기어 온다 나도

어머니 손금 속으로 기어들고 싶은데

문득 돌아와 보면 시가지의 가슴마다

초라하게 작아진 희망의 형식을 안고

바람은 바람을 불며 바람 불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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