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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16. 2024

산수국에서 수국으로 이사 가는 날

꿈삶글 11




떠남과 만남 그리고 부모



부모님 계시는 반월산에 밤꽃이 피어나고

제주도 길가에 구실잣밤나무꽃이 피어나고

이어도공화국에는 지금 수국꽃이 한창이다     


비는 어쩌면 하느님의 눈물인지도 모른다. 비는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비는 아마도 하늘일 것이다. 비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비를 좋아하는 반월산의 밤나무와 비를 좋아하는 제주도의 구실잣밤나무와 비를 좋아하는 이어도공화국의 수국을 생각한다. 다시 한번 생각하니 밤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만나 자식을 낳는데 수국은 씨앗을 낳을 수 없으니 어쩌면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몸을 떠나고 싶었다. 밖에서 비는 오는데 자꾸만 아버지의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도 함께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아직 모르는 바깥세상이 천 길 낭떠러지일지라도 나는 그냥 무작정 탈출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몸이 너무 뜨거워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다 탈출할 기회를 놓치면 나는 그냥 그곳에서 타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불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밖으로 뛰어내렸다. 나를 닮은 수 없이 많은 놈들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번개가 번쩍 하더니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날은 토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오는 날이었다. 토성은 약 9.7Km/s의 속도로 공전을 하는데, 이는 지구 시간으로 대략 29.6년이나 걸린다. 그러니까 토성은 약 30년에 한 번씩 지구에 가깝게 접근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아버지 몸에서 탈출한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토성에서도 나를 닮은 놈들이 번쩍 뛰어내렸다.     


나는 무작정 뛰었다.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나는 살기 위해서 무작정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무작정 뛰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땀을 흘리며 뛰었다. 그야말로 죽도록 뛰었다. 뛰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뛰고 또 뛰었다.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온몸을 흔들며 뛰고 또 뛰었다. 사람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본다면 어쩌면 헤엄을 친다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를 저어서 배가 간다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날아왔다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뛰고 또 뛰었다. 눈을 감고 뛰다 보니 내가 아버지 몸에서 탈출한 것인지 토성에서 뛰어내린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였다.

     

내가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 드디어 문이 열렸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그만 내 이마가 벽에 부딪쳤는데 짠 하고 문이 열렸다. 벽이 문이 되는 순간이었다. 벽이 글쎄 문이 되어 열리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환하게 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 문 안으로 들어선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나와 동시에 또 하나의 내가 함께 도착한 것이었다. 나팔 모양의 길 끝에서 나팔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를 만났다. 내가 아버지 몸에서 뛰쳐나온 놈인지, 토성에서 뛰어내린 놈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하여튼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어머니의 궁전 안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만난 어머니는 1937년 5월 27일에 태어나셨다. 아버지가 1931년 3월 26일 태어나셨으니 아버지보다 6년 늦게 태어나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 같은 수국 꽃이 지금 한창 이어도공화국에서 피어나고 있다. 이어도공화국은 삶과 죽음의 중간쯤에 있는 나라인데 나는 지금 많은 국민들과 함께 이어도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수국 꽃이 올해는 보라색으로 파마를 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곧 보라색으로 파마를 하시고 보라색 꽃 브로치를 하고 환하게 오실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지금도 중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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