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김밥이 나에게 알려 준 것

글쓰기 공간의 중요성

by 오연서

오전 9시 글쓰기 시작!

3월부터는 나름의 루틴을 만들려고 다이어리에 하루를 기록했다. 지금 시간은 10시 30분. 계획대로라면 책상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노트에 끄적이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눈으로 빠르게 읽던 책을 덮는 순간, 배속은 찰랑찰랑. 오늘은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생각이 무색하게 나 지금 배고프니? 그래 배가 고프구나! 시계는 9시 2분.


보통 혼자 있을 때 나는 작업을 하다 점심을 먹는다. 그래서 오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책상에 앉았다. 평소에도 아침을 잘 먹지 않기에 당황스럽다. 계획표를 실행해하려는 첫날. 글 쓰자 작심하자마자 배가 미치게 고프냐! 어서 무언가를 달라고 나만 들리는 아우성이다. 입속에 침은 이미 폭발해서 흐르겠다. 노트와 펜을 챙겨 자세를 고쳐 보지만 집중은 되지 않고 유튜브 숏츠에서 본 요리들이 떠 다니기 시작했다. 주부가 된 지 한참이지만 요리를 창의적으로 잘하진 못한다. 다만 시간이 쌓여서 인지 글이든 영상이든 레시피를 보면 어느 정도 맛이 난다. 요리책 1권 내야 할까?


지난 주말에는 영상을 참고해서 보쌈 무김치와 배추겉절이로 제대로 보쌈을 해 먹었다. 야채 싫어병 고딩들은 맛있는 고기만 쏙쏙 집어 먹는다. 고기가 퍽퍽할 것 같은데 눈빛을 쏘면 빨간 양념의 생채소를 맥주와 함께 먹는 우리를 더 바라보니 평화로운 식탁을 위해서 서로 더 이상 눈빛 교환을 하지 않았다. 특히나 진한 빨간 양념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다.


배가 고프니 주말에 먹은 보쌈이 또 먹고 싶다. 그걸 지금 할 수는 없다. 그러다 아빠가 말아주는 김치김밥이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스치듯 봤는데 이거다 싶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진화가 덜 된 인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해야 하는 쓰기는 뭉그적거리며 딴생각을 하던 내가 당장 비어 있는 내 속을 채우는 일에는 고민이나 생각 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냉장고에 볶음김치, 달걀, 햄이 있어 김밥을 후루룩 말았다. 나는 치즈도 한 장 추가했다.


우리 집 냉장고가 항상 채워져 있지는 않다. 가장 최소한으로 장을 보고 그때그때 해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운 좋게 한 끼를 바로 뚝딱했다. 주말에 만들어 둔 볶음 김치가 아니었다면 김치김밥을 먹고 싶다 생각만 하다 계란밥을 쓰린 속에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배고픔이나 본능에 대해서 말하려 한 것은 아니다. 글쓰기에서는 공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작가님들이 많다. 남편은 가끔 빈집에 혼자 있는 내가 왜 카페나 도서관에 가냐며 궁금해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타인이 있는 다른 장소보다 훨씬 편하지 않냐고 묻는다. 오늘 다시 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눈에 보이는 집안일 때문에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집중해서 시간을 쓰러 간다고 말했는데..


자유의지가 집에선 약하다. 아무도 없기 때문에 너무 자유롭다는 것. 만약 내가 글을 도서관에서 쓰고 있다면 배가 고파도 참는다. 처음부터 배가 고프지 않게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갔을 것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집에 가서 다시 먹고 와야지 이런 생각은 안 했겠지.


누군가는 너의 의지가 부족해하고 말할 수도 있다. 보통의 사람이 글을 쓰는 건 그 부족한 의지를 모아 모아 써내려 가는 것이다. 나도 계획을 지켜야 해서, 귀찮아서 참고참고 글을 쓰다 아이가 집에 오던 오후 2시가 넘어 라면 하나, 식빵 한 조각을 먹으며 쓰기도 했다. 쓰는 게 너무 좋고 혼자 있는 시간에 최대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첫 책을 내야지 하는 강한 의기가 배고픔도 아픔도 뒤로 미루던 시기도 있었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작은 결핍을 나는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거창한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맛있게 챙겨 먹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배가 불러서 인지 탄수화물이 뇌를 깨운 건지 모르지만 즐겁게 써내려 간다. 눈에 보이는 빨래가 있지만 지금은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