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에서 셀카 찍다 얻은 고찰
사진 찍기는 이제 취미를 넘어서 일상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예전엔 나도 사진 수업을 들으며 작품(?) 사진을 찍는다고 주말마다 궁을 돌아다니기도 하고(사진 좀 배운다고 하면 모두가 찾는 곳이 고궁이다.), 새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취미 생활을 위한 투자라며 거금도 마다하지 않고 사들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디카와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성능이 좋아진 다음부터는 부러 디카를 들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사진 찍기는 거창한 취미라기보단 일상의 기록에 더 가까워졌다. 길을 가다 눈에 담아 두고 싶은 풍경이나 귀여운 길고양이라도 만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고, SNS에 올리지 않더라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거나 색다른 음식이나 예쁜 디저트를 먹을 땐 습관처럼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일상에서 이것저것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지만, 평소에 셀카를 찍는 일은 드물다. 미용실에서 바로 하고 나온 머리가 엄청 마음에 든다거나 하면 한두 장 찍어 볼 순 있겠지만,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스마트폰을 향해 한껏 미소를 지으며 셀카를 찍는 건 왠지 쑥스럽다.
그런 나는 나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도 셀카 삼매경에 빠진 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언젠가 어느 카페에서 혼자 몇십 분째 온갖 표정과 포즈로 셀카를 찍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스마트폰을 향해 미소를 짓고, 눈을 찡긋거리고, 볼을 부풀리기도 하고, 입술을 내밀기도 하며 셀카를 찍고 자기 사진을 확인하고 또 찍고 확인하고. 저러다 눈이나 입에 경련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쉬지 않고 셀카를 찍었다. 남들의 시선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을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셀카를 찍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제주를 홀로 여행하며 실은 나도 셀카를 꽤 많이 찍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워낙 많다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완전 인생 사진 건질 풍경인데!’
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 나도 멋지게 끼워 넣고 싶은데, 모르는 남에게 이렇게 저렇게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는 그래서 셀카를 찍었다. 물론 셀카 사진이 마음에 들리 만무했다. 얼짱 각도는 고사하고 배경이라도 함께 나오도록 길지도 않은 팔을 가제트 팔처럼 최대한 늘려 열심히는 찍었다. 하지만 셀카도 평소에 많이 찍어 봤어야 잘 찍는 법. 팔이 짧아서인지 기술 부족인지 찍는 족족 배경은 거의 안 보이고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꽉 차 보이는 덕에 여기가 제주인지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셀카 사진을 보며 후회했다. 혼자 다니면서도 그 무거운 삼각대까지 들고 다니며 셀카를 찍는 분들도 있던데, 작은 셀카봉마저도 준비해 오지 않았다니!
다음 날 마음 먹고 꽤 먼 거리에 있는 다이소까지 가서 셀카봉을 샀다. 사람 많은 여행지에서 혼자 셀카봉을 들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가며 사진을 찍는 건 상상만 해도 뻘쭘한 일이었지만, 셀카봉을 이용해 찍은 사진은 이전 셀카 사진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여전히 어색한 내 표정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경은 그런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셀카를 찍는 이유는 자신의 예쁘고 멋진 모습을, 행복한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아 간직하고 싶어서일 거다. 또 SNS에 사진을 올려 타인에게 보여 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일 수도 있다. 그때 카페의 그녀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나 역시 아름다운 풍경 안에 내 모습을 넣어(이왕이면 예쁘게. 그래서 그렇게 다들 여러 번 반복해서 찍는 거겠지.) 간직하고 싶은 자기만족의 마음이 컸다. 그리고 일종의 기록 장치로, 훗날 사진을 보며 그때의 감정과 분위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쉬이 잊히지만, 사진을 보다 보면 기억이 다시 찾아와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진다. 그날의 바다, 햇살, 바람, 그리고 내 모습에서 그때의 감정까지도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셀카 사진 속 내 얼굴은 왜 그리 하나같이 어색하던지. 너무 오랜 시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서인지 마스크를 벗고 웃는 내 얼굴이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떡하나. 마스크가 못생김을 가려주어 좋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백수로 놀면서 두둑해진 턱살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처지는 팔자주름을 가려주는 마스크를 쓰고 찍은 셀카가 더 맘에 드니 원. 이제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지만, 턱선이 살아날 때까진 당분간 사진 찍을 때 마스크를 벗긴 힘들 것 같다.
마스크가 좋은 단 한 가지 이유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