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당근 Apr 13. 2022

제주 걷기의 즐거움(Feat 족저근막염)

제주를 여행하며 얻은 것

운동신경 없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나도 그나마 잘하는 운동이 하나 있다. 걷기다. 워낙 빨빨대며 쏘다니는  좋아하다 보니  걷게  것인지 선천적으로 튼실한 다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운동을 목적으로 일부러 걷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을 위해 걸어 다니는  운동으로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걷는  좋아하고  걷는 편이다. 특히 놀러 가면 신이  지치지 않고   걷는다. 이번에 버스로 제주를 여행하면서도  시간이 맞지 않아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나 걸어서 가는 시간이나 얼추 비슷하면 그냥 걸어가자 하고 걸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걷기엔 자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발에 이상이 생겼다. 좀 많이 걸었다 싶은 날은 왼쪽 발뒤꿈치 부위에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통증의 빈도와 강도가 차츰 높아졌다. 그렇다고 발바닥이 참을 수 없이 아프거나 걷는 데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아 제주에서 병원까지 찾아갈 건 아니었지만 점점 신경이 쓰였다.

      

‘이거 혹시? 에이, 좀 걸어 다녔다고 설마 족저근막염이….’     


주위에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은 친구가 있어 그 증상에 대해서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 증상과 흡사한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족저근막염이 의심되었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 없이 판단은 금물이지만.

      

「족저근막염은 발바닥에 있는 근육들이나 족저근막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가해져 발생되는 질환으로서 비만의 중장년, 특히 오랫동안 서고 걷는 직업 종사자나 스포츠 활동이 많은 사람에게 발생됩니다.」라는 전문의의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청년은 아니지만, 그리고 요즘 살이 좀 통통하게 붙긴 했지만 그래도 ’비만의 중장년‘은 아니지, 아냐.’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증상의 원인은 ‘스포츠 활동이 많은 사람에게 발생’이라고 혼자 우기고 있자니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올레길을 완주한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좀 많이 걸었을 뿐인데 족저근막염 증상이라니!

    

제주를 여행하며 올레길을 걷는 분들을 꽤 자주 마주쳤다.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올레길을 걷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졌는데, 발바닥에 이런 증상까지 생기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거리와 보폭을 조절해 걷는다고는 해도 온종일 걷는 게 어디 쉽겠나. 그러면 왜들 그렇게 걸을까?

그들처럼 올레길 완주, 아니 코스를 정해 제대로(?) 걸었던 건 아니지만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차를 타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서는 절대 만나고 느낄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이 비단 제주의 아름다운 숨은 비경뿐만은 아닐 거다.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다 보면 세상 속에서 찌들고 힘들었던 문제들을 잊을 수 있다. 그리고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 찬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걷는 동안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며 혼탁했던 마음속이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몇 주 동안 걸었다는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뭐가 제일 좋았냐는 물음에 그가 말했다.

    

“걷다 보면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게 좋았어요.”


그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홀로 걷다 보니 불현듯 그 사람의 말이 떠오르며 그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다.

      

제주 한달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내 왼쪽 발은 예상대로 ‘족저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제주를 여행하며 족저근막염을 얻었지만, 내가  것이 이뿐일까. 올레길 완주 같은 목표는 없었어도 홀로 제주를  맘대로 천천히 돌아다니며 뭔지 모르게 가슴에 차오르는 성취감과 자신감, 자연을 통해 느낀 해방감과 본연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리고   가지, 걷기의 진정한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제주 올레길,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어보리라 다짐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발바닥은 마사지용 릴리즈볼을 열심히 돌리면서 족저근막염 치료에 매진 중이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평화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함께 움직인다.

  휴대 가능한 평온함이다.」

에릭 와이너_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中      




매거진의 이전글 ‘안전주의자’가 여행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