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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너구리 DHMO Sep 27. 2022

김포에서 쑹산까지

대만유람기 2019 (1) [1일차-1] 

아침부터 정신없는 날이었다. 


우리 비행기는 13시 50분에 김포에서 출발하는 편성이었으나, 아내는 하필이면 그 날 12시에 삼성동에서 예정되어 있던 친구의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비행기를 예약한 지 두 주 후에야 깨달았다. 이런 바보들! 


고심 끝에 비행기를 취소...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결혼식이라는 것은 시작 30분 전부터는 으레 손님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아내는 조금 일찍 결혼식장에 가서 친구에게 축하를 전한 다음 최대한 빠른 교통편으로 출발하고, 나는 미리 캐리어를 끌고 김포에 가기로 하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자면 김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끊은 것이야말로 하늘이 도우신 것이 아닌가 싶다.

아내는 일어나자마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한 다음 집을 나섰다. 그에 비해서 나는 캐리어만 슬슬 끌고 나가면 되는 몸. 아내가 나갈 때쯤 비척비척 일어나서, 못다 싼 짐 정리를 하고 집안일을 좀 해 놓자니 어느덧 아침 열한 시 반이 되었다. 캐리어 두 개와 들짐 하나를 어찌저찌 끌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도착했다. 

미리 체크인과 수하물 위탁을 해 버릴까 싶어서 캐리어 두 개를 다 맡아서 왔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냥 아내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내 아내가 도착한 시각은 생각보다 이른 열두 시 반쯤. 체크인부터 면세 구역에 나와 면세품을 수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5분. 징검다리 연휴를 끼고 있는 시즌이라서 출국객이 많지 않으리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 괜스레 무안해졌다.  


우리 부부는 여행할 때 마치 의식이라도 하듯 늘상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출국 전에 꼭 공차를 들러 한 잔 시켜 먹는다는 것이다. 마침 대만도 가고 하니 미리 시동을 걸어 볼까? 하고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김포공항 면세구역에는 공차가 없었다. 

꼭 오뎅만 드세요... 제발...


대신 떡볶이 한 그릇에 오뎅 네댓 꼬치를 사 먹었는데, 떡볶이는 별로였지만 오뎅이 의외로 맛있었다. 


안녕, 김포!


이번에 이용한 에바항공EVA AIR, 長榮航空은 대만의 제2항공사다. 한국으로 치면 대략 아시아나항공쯤의 위치에 있다. 한때 헬로키티 도장을 한 비행기를 여기저기에 날렸던 걸로도 이름을 떨쳤던 전설의 산리오덕후 항공사다.

대만의 제1항공사인 중화항공中華航空에 비해 에바항공은 상대적으로 기내식이 별로라는 소문이 있다. 여행에서 식사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아내는 값싸고 동선이 편하다는 이유로 에바항공을 예약하면서도 이 소문 때문에 못내 불안해했다. 그리고 이륙 삼십 분 만에 마침내 나온 기내식! 

새우완자와 브로콜리, 생선튀김을 곁들인 볶음쌀국수, 양장피, 레몬 케이크.

다행히도 기내식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식 쌀국수의 식감은 영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흰살생선 튀김이 전혀 비리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국수와 잘 어울렸다. 양장피야 뭐 해파리 냉채마냥 익숙한 고향의 맛(?)이었고, 레몬 케이크는 음료와 같이 먹으니 먹을 만했다. 


비행 동안에는 산유테이 엔조三遊亭円丈의 <스승님, 제정신이 아니시군요!師匠、ご乱心!>을 읽었다. 일본 전통예능인 라쿠고落語의 에도 쪽 양대 단체 중 하나인 라쿠고협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분열되었으나 결국 오래 가지 못했던 사건인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을, 당시 해당 사건을 경험했던 필자의 눈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일종의 르포이지만, 라쿠고가 특유의 골때리는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비교적 술술 읽혔다. 

두 챕터쯤 읽었을 즈음부터 기체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낮달과 함께, 타이베이 101이 보이는 시내.

처음에는 푸른 바다, 그 뒤로 진녹이 우거진 산하, 다음으로는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과 분주히 움직이는 자동차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수록, 처음 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을 통해서만 봐 왔던 타이베이 101의 실물도 저 멀리 그 모습을 보인다. 


대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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