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커플 일상
개인적으로 오디오북을 참 좋아한다. 앉아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은 요즘,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은 정말이지, 귀를 즐겁게 한다.
종종 운동 삼아 혼자서 걷는데, 이때 심심치 않게 하는 게 이 오디오북이다. 오디오북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 30분 걸을 걸, 1시간도 넘게 걷게 하니 건강 면에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최근 듣고 있는 윌라 오디오북은 '참 괜찮은 태도'이다. 실은 어떤 책인지도 모른 채, 독자 평점만 보고 그냥 플레이 버튼을 눌렀었다. 그런데 '3일 다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다큐멘터리 디렉터이기도 한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아,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루는 작가가 싱숭생숭한 마음에 친구를 불러 술 한 잔을 기울였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아무 때나 친구 불러서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난 순간 그게 부러웠다. 작가는 디렉터로서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난 그녀에게 당연한 일상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영국인 남편은 오후 4시면 일을 끝내고 집에 온다. 어디 혼자 가는 법이 없으며(어떤 모임이든 꼭 나를 동반한다), 종종 요리와 가사를 도와준다. 게다가 주말에는 자주 청소를 도맡아 한다. 좋은 남편이다(이를 알고 생색내는 모습도 꽤 귀엽다).
그런 남편은 저녁을 먹으며 물어본다.
"저녁 먹고 뭐 할래?"
남편은 매일 저녁 이렇게 물어오지만, 사실 이곳에서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작해야 야간 드라이브 정도일까.
야간 드라이브하면 웃픈 얘기가 있다.
한 번은 내 성화에 못 이겨 남편이 야간 드라이브에 나섰다. 집에 있고 싶어 하는 자(남편)와 나가고 싶어 하는 자(나)의 대치란, 꽤 불꽃이 튀긴다. 어쨌든 나서 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꼭꼭 숨긴 채, 일단 출발했다.
사실 우리 동네에 딱히 볼거리는 없다. 주변이 온통 논밭이라, 야간 드라이브라고 하지만, 가로등도 별로 없는 깜깜한 2차선 도로를 주욱 달릴 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나는, 창문을 조금 열고 답답했던 마음을 바깥 창문에 뱉어 본다. 그런데 30분쯤 운전했을까, 남편이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쭉 달려온 지라, 꽤 멀리까지 오긴 했다. 더 오래 밖에 있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알겠다고 했다. 아니 그런데 남편, 갑자기 액셀을 계속 밟는 게 아닌가. 집에 가는데, 시속 110킬로로 달린다.
"누가 드라이브를 이렇게 해?!"
"이게 규정 속도야."
"차도 없는데 왜 이리 빨리 달려. 천천히 가도 되잖아."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자(남편)와 집에 빨리 가고 싶지 않은 자(나)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속도를 조금 조절하는 듯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기분상) 집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도 지방 도시, 지방 도시에서도 교외 지역에 살다 보니, 주변에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저녁이 되면 이곳은 레스토랑과 펍(Pub)을 빼곤 문을 닫는다. 레스토랑도 대부분 차를 타고 15~20분은 가야 하는 곳들이다.
물론 찾아 나가면 몇 가지 유흥은 존재한다. 하지만 비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된다. 오락, 카드 게임, 넷플릭스 등등. 그러나 집에서 하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도 둘이서 하는 것들은.
한국이었다면, 저녁이라도 쇼핑을 하거나 영화관을 갈 수도 있을 텐데. 친구들과 차를 한 잔 하거나, 맥주를 마실 수도 있을 거다. 아니, 이건 한국, 영국의 문제가 아닌가?
역시 이사를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