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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Nov 13. 2023

차 사고가 났다

중요한 피의자의 태도

오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전날부터  차량 주유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운동하는 스포츠 센터 옆에 테스코가 있어, 운동하러 가는 김에 주유할 참이었다. 영국은 이처럼 마트에 주유소가 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주유소로 운전해 들어가면서, 어디에서 주유할지 재빠르게 살폈다. 테스코 주유소에는 총 12개의 주유 공간이 있었는데, 제법 차 있었다.


가운데 앞쪽으로 비어있는 공간이 보였다. 그런데 그 뒤쪽에 검은 대형 차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흘끗 보니, 운전자는 주유비를 내러 편의점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테스코는 주유구에서 바로, 또는 이처럼 편의점 안에서 요금을 치를 수 있었다.


잠깐 머뭇거리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운전자를 기다리느니 그 앞쪽으로 가서 주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양쪽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량 사이를 지나, 앞쪽 주유구 쪽에 조심스레 주차했다. 영국에서 운전한 지도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주차할 때는 조심스럽다. 이건 성격이다. 꼼꼼한 듯, 덤벙대기에 조심스러움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차량에서 내려 주차가 잘 되었나 살피는데, 뒤쪽의 검은 대형 차량에 할아버지가 탑승하는 게 보였다.


'주차 라인에 너무 가깝게 댄 거 같은데. 다시 주차해야 하나?'


특히나 뒤쪽 차량이 대형 차량이라 마음에 걸렸다. 뒤쪽 차량이 지나가기엔 공간이 좁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에 아랑곳없이 뒤쪽에 있던 대형 차량이 내 차량 쪽으로 진입해 왔다. 내 걱정이 무색했으면 좋았으련만, 검은 대형 차량은 지나가면서 옆쪽으로 내 차량과 부딪혔다.


이때 접촉된 부분이 살짝 찌그러지면서, 이를 감지한 대형 차량이 다시 후진을 시작했다. 대형 차량이 후진하면서 다시 한번 내 차량이 찌그러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차량 뒤편에서 이를 고스란히 지켜보던 내 얼굴도 같이 찌그러졌다.


할아버지는 원래 주유했던 자리에 다시 주차했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 차량 운전자가 어떻게 나올지 겁이 났던 것이다. 자기 잘못임에도 나에게 윽박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국에서 5년 넘게 지냈지만, 영어로 누군가와 싸워본 적은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겁을 먹은 나는 남편의 마음을 살필 겨를도 없이 말했다.


"자기야, 차 사고가 났어."


차 사고라는 말에 남편은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다친 데는 없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차가 긁힌 거야. 난 주유하려던 참이라 차 밖에 있었고."


안심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미안해. 온전히 내 잘못이야. 보험 회사에 연락해 처리할게. 정말이지 미안하게 됐어."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핸드폰 너머로 들은 남편이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남편에게도 사과하며 내 잘못은 없었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둘은 연락처와 주소, 보험 회사 정보를 교환했고 핸드폰은 다시 나에게 넘어왔다. 남편은 나에게 괜찮은 지 물은 뒤, 얘기했다.


"사고 난 부분들이랑 상대 차량 번호판 사진으로 찍어서 나한테 보내 줘."


남편에게 알겠다고 얘기한 뒤, 전화를 끊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할아버지가 다시 한번 얘기했다.


"내가 너의 하루를 망쳤구나.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했던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의 떨고 있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로 크게 놀란 건 할아버지 쪽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선뜻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사고가 나서 정말 유감이에요(I'm so sorry for what happened)."


겨우 그 말을 하고 돌아섰다. 사실 너무 미안해하는 할아버지에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찌그러진 내 차량 앞에서 그 말이 순순히 나오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마음에 걸렸다. 괜히 남편한테 덥석 연락했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차량을 살펴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긁히고 살짝 찌그러졌을 뿐인데(녹이 슬기도 했다),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의 미안해하던 태도가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할아버지의 떨리던 손과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할아버지의 보험사로부터 이틀 뒤, 사고 처리 내역이 우편으로 날아왔다. 할아버지가 100프로 자신의 과실임을 인정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태도에 보험 처리를 괜히 했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하자, 남편은 이야기했다.


"차는 겉보기에는 미미한 흠집이어도 내부적으로 어떤 손상이 가해졌는 알 수가 없어. 특히 우리 차량처럼 오래된 차는 안까지 철저히 점검해 봐야 해."


이번 사고로 내부에 손상이 갔을 경우, 폐차해야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아니, 정말 살짝 찌그러졌을 뿐인데, 그런 큰 손상이 생겼을 수 있다는 건가.


차는 사고 다다음날, 견인되어 갔다. 부디 폐차되지 않고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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