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이번화는 녹음한 것을 속기 따서 증거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아이 이름이나 본명 나오는 거 제외 하고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현장감을 위해 그냥 두었습니다.
읽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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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으면 얘기해.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들을 게.”
아내는 수첩에 무얼 잔뜩 써왔고 그걸 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게.. 한 개인데 두 개 같은 거거든.”
첫 문장부터 느낌이 싸하다.
“유지하는 거.”
뭐를? 부부 관계를 아니면 상간남과의 관계를?
“내가 생각하는, 두 개 같은, 한 개인데 두 개 같은 거거든? 부부관계 유지하는 거. 유지하는 건데, 이게 유지가, 이게 유지를 하는데 자기가 저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사실 그 옵션은 생각도 안 해 봤었는데 아, 그렇게도 얘기, 내 의견이니까 그냥, ‘얘기할 수 있구나.’ 했던 것 중에 그냥 어차피 자기도 아직 30대고 나도 30대고 그냥 서로한테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고 지내.
그러니까, 음.. 그냥 좀 약간 쇼윈도 부부처럼 보일 순 있는데 그렇게 해서 지내는 거? 개인적인 거에 대해서 용인하고가는 거지. 지금 같은 케이스라고 하면 지금 둘 중에 1명한테만 그 케이스가 없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지금 오히려 그냥 주말에 만약에 하루는 만약에 나가서 놀기로 했어. 친구 만나기로 했어. 그러면 자기한테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고 ‘나 이번 주 토요일 날은 걔랑 토요일 날에 놀기로 했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응. 그렇게 이제 서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를 약간 어떻게 보면 약간 아메리칸식 같은 느낌으로, 그냥 그렇게 해서 그냥 하는 방법? 그런데 가족은 유지한 상태로. 아이한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거는 약간 좀 정해야 될 것 같긴 해.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라는 게 자기가 전에 말한 것처럼 니들끼리 하는 그 더러운, 무슨, 사랑인가, 아무튼 그거에 아이가 이제 있네, 이렇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런 것도 포함한다고 하면 그냥 아이를 만나는 건 이제, 아이를 만나거나 아이한테 뭔가를 주거나 이런 거나 이런 건 아예 그냥 배제하는 거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아내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계속 말했다.
“아이를 어떻게 할 거에 대해서 일단 먼저 정해야 될 것 같아. 아이도 그냥 아는 사람, 자기가 오늘 누구를 만나게 됐다 그러면 그 이모를, 아니면 그 삼촌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 그걸 이제 정해야 될 것 같고, 아이를 낄지 말지.”
서로 이런 자유로운 사생활을 존중하고 아이까지 데이트에 데려 나가자는 말이었다.
“응 그렇게 해서 지내는 거. 두 번 째는 그렇게 해서 지내는데 이제 그렇게 서로 용인하게 됐다, 라고 했을 때부터는 그냥 자기가 어떤 결정을 하든 뭐를 해가지고 나한테 더 이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으면 최종 결정이 되기 전에 그냥 모든 걸 다 쏟아 내고 나에게, 쏟아내고 그때 이후부터는 가정을 유지하기로 한 상태니까 웬만하면 사실 뭔가 오늘처럼 갑자기 얘기하다가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 순간이 또 있을 수 있고 일상생활 하다가 ‘아, 저 새끼랑 카톡 오늘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간섭을 하고 싶을 수가 있잖아. 그런데 그랬을 때 예를 들어서 서로의 삶을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기존에 불륜이든 뭐든 이런 거에 대한 이슈를 다시 언급하지 않는 거.”
혼란스럽다.
“가족을, 가정을, 그냥 이러나저러나 싫어도 그냥 가족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내가 얘기해 보고 싶은 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 있는 그런 플랜? 일단 하나고.
그것들이 이제 전제가 되는, 아까 그것들 있었잖아. 예를 들어서 아까 말한 것 중에 가정을 그래도 보전한다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이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해가지고 딱 정리를 했어. 만약 그 정리한 것들에 대해서 계속 지켜지지가 않아.”
아내는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이야기했고 나만 벌컥벌컥 마셨다. 일단 다 듣자.
“나도 자기한테 갑자기 반대를 하고, 반대 상황이 되가지고 어떤 사람 만나는 거에 나 혼자, 나 혼자 뭐야, 반대로 역지사지 못하고 갑자기 막 내로남불 하듯이 뭐라고 할 수 있잖아. 똑같은 상황인데. 그런 거에 대해서 따질 수 있는 범위는 뭔가 적어도 우리가 아이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범위, 아까 정해 놓은 거 있잖아. 그거 안에서는 뭐라고 서로 얘기할 수 있지만 그거를 벗어나서 자꾸 간섭을 한다 거나 아니면 우리 지금 계속 지금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고 생각 했었을 때 자꾸 약간 의도적으로 뭔가 방해하는 듯한 느낌? 예를 들어서 분명히 이때 만나기로 했다고 서로 얘기를 했는데 이때 갑자기 무슨 일정을 잡는다든가 그런 것들 있잖아.”
불륜을 방해할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사실 내가 자기 출장에 대해서 의도치 않게 갖고 있는 불만들 같은 거, 그러니까 ‘분명히 나 일정 있는데 왜 이렇게 잡지?’ 자기는 의도한 게 전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가는 건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자꾸 생긴다? 그렇게 하면 그러면 이제 그냥 쇼윈도 같은 관계라고 해도 가족을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은 거잖아. 그렇게 됐을 때는 그냥 이혼밖에 없는 거야, 내가 생각했을 때. 가족을 유지하는 그나마의 마지막, 뭔가 이렇게, 이렇게 정해 놓은 것들이 그랬을 때는 이제, 잠시만. 사실 내가 아까 적어 놨었었는데 지금 안 보여지네. 그러니까,”
아내가 잠시 수첩을 뒤적 거리며 말을 멈췄다.
“내가 듣기로 한 자리니까 일단 자기 말하는 거 다 들을 게. 들어 보고 말할 게.”
“응. 요약하면 아까 첫 번째 얘기한 거는 가정을 유지하면서 아이한테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서로 자유로운 사생활을 인정하는 거. 그리고 두번째가 아까 이혼인데 이혼은 이 경우가 남편이 나한테 그동안 소홀했던 거, 아쉽다고 했던 거를 좀 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나는 남편한테 가족 관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1번 케이스를, 방금 아까 말했던 1번 케이스를 서로 져 버렸을 때 이제 이혼이라는 걸 생각했고, 그리고 가족 유지하겠다고 해 놓고 계속 바람이네, 더러운 짓이네, 파렴치하다는 둥 그런 말을 하면 아까 그 앞의 상황에다가 플러스해서 이혼이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 라고 나는 이제 자기한테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했지. 그래서 두 개. 두 개인데 한 개 같은, 한 개 같은….”
아내가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끝냈다는 듯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정리하자면 부부관계, 가족관계는 유지하되 서로 이성 간의 자유로운 만남을 보장하고 원하면 아이도 데려 나갈 수 있다. 그것은 상대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거니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니냐. 그리고 이 관계로 가기로 협의했다면 더럽네 불륜이네 소리는 앞으로 일절 하지 말아라. 그럴 시에는 이혼으로 갈 수밖에 없다.
‘끝이네. ‘
내가 용서한다고 돌아올 상황도 아니었고, 아내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인정할 만큼 난 포용적이지 못했다. 진심으로 아내의 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끝인 거 궁금한 거나 해소하자.
“남편이 알았다는 거를 그 남자한테는 언제 공유했어?”
“그 날. 자기가 나한테 얘기하고”
역시였다. 아내가 그 날 밤 이야기 후에 자기 전에 휴대폰을 잡고 있던 것은 역시 상간남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날 밤에 바로? 그쪽 반응은 뭐야? 놀랐을 거 아니야 그쪽도.”
“놀라지. 놀랐고, 뭔가 일단 첫 번째 반응은 미안하다 그랬나?”
“누구한테?”
“나한테. 그냥 잘 지내고 있었던 사람한테 뭔가 남편을, 그냥 그래도 어떻게든 맞춰서 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런데 괜히 그게 이제 이렇게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이제.”
“그리고? 둘이 이제 대책을 세워야 될 거 아니야.”
“나한테 그냥 오롯이 결정하라고 말하지. 그리고 어제 어제 이야기했던 것과 똑같아. 그냥 잠깐, 그냥 몇 달 동안 막 진짜 심적인 그런 외로움을 채우는 친구 같은 느낌이라고 나는 처음에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그냥 미국 가기 전까지 이렇게 지내다가 어차피 나도 관둘 거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아내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당장 기분은 별로 헤어지고 싶지가 않네. ‘헤어진다’라는 개념이라는 게 적용되는지도 모르겠는데, 헤어지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나는 그거를 옵션에서 제외하긴 했어. 헤어진다는 걸.”
아내는 상간남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는 것도 확실해졌다.
“그건 이제 네 의견이고, 그 사람 의견은 어때? 왜 걸린걸 알았으면서도 대체, 자기는 지금 나랑 이야기를 하니까 지금 자기의 사고가 뭔가 다르다는걸 알겠어. 근데 그 사람은 내가 모르니까. 왜 그 사람은 걸렸으면 불안해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고 그러다 ‘이 관계를 더 이어 나가면 안되겠다. 우리 그만하자’ 라고 누군가는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기가 안 해. 그런데 그 사람도 안해. 그 사람은 왜 안 해?”
“아 몰라, 나 좋아했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유부녀인데도 좋아했었는데 그냥 그런 거 아닐까?”
둘 다 미쳤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이해할 부분이 있을까 싶어 들어봤는데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남자도 결혼 준비한다며.”
“맞아.”
한숨이 나왔다.
“둘 다 이해할 수 없는데, 당신은 지금 ‘난 결혼생활이 불행해.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보상을 받으며 날 치유하고 있어’라는 컨셉은 알겠어. 근데 그 남자는 아직 결혼을 안했잖아. 어떤 이유로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유부녀와 불륜을 하는 거야? 서로 자기들이 깨끗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잖아. 그럼에도 대체 뭐 때문에?”
“자기랑 비슷해. 걔 여자친구가. 그런데 일단 그런 선택을 한 거 자체는 우리가 잘못한 게 맞는 거겠지. 맞는 거고.”
나랑 비슷하다는 게 무슨 말일까. 서로 만나고 있는 상대가 비슷하니 바람피워도 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
그 후 아내는 지금 만나는 남자와 헤어져도 다른 남자를 만날 것이라고 하며 지금 남자와 헤어진다 하여도 자신의 의지이지 나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서로의 자유로운 연애생활을 존중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아내보다는 상간남에게 더 컸던 분노의 비중이 바뀌었다.
아내는 미쳤다.
이렇게 말을 다 듣고 나니 오히려 후련했다. 절벽에 매달려 억지로 잡고 있던 손을 이제 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더 미련도 없을 만큼 아내의 끝을 보았다.
그리고 진작 해야할 말을 이제야 뱉었다.
“이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