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어떻게 하고 싶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문제를 일으킨 건 당신인데, 왜 나한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야? 용서를 하면 고마운 거고, 이혼을 하면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아내에게 되물었다.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나한테 선택권이 있어?”
나 역시 이혼 하자라고 바로 안 나오는 거 보니 비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지금 진정으로 바라는 건 뭘 까. 아까 아내가 울면서 사과할 때는 사실 이제라도 깨우쳤네 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당신이 이 사단을 만들었으니 하고 싶은 방향에 대해 말해봐. 그걸 듣고 내가 수용하든 거절하든 할 테니까.”
나 역시 결국 아내에게 미뤄버렸다. 아내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였고 우리는 다음 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누워서 생각해보니 아까 식탁에서 아내는 사과하지 않았다. 현장과 택시 안에서 사과를 했기 때문에 더 사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까 아내가 휴대폰을 초기화했다. 모든 걸 지우고 다시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일까?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회사로 출근한 다음 날,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인사 이동이 예정될 것으로 말이 나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고 그 중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친한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사내 카페로 이동해서 향후 있을 인사 이동에 대해 지레짐작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좋으시겠어요.”
같은 부문 내에 있는 다른 팀 여직원이 내가 주문한 커피를 건네주며 말했다.
“뭐가요?”
“지금 미국 주재원 나가 계시는 분 중에 한 분 돌아오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과장님이 다음 타자인거 모두 다 아는데. 아~ 나도 남편이 주재원 나갔으면 좋겠다.”
내게 부럽다며 말하는 대리님의 아이는 내 아이보다 한 살 많다. 현재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 생각보다 늘지 않는다며 주재원들을 부러워했다.
“확정된 것도 없는데요 뭐.”
“아니죠. 과장님은 애초에 주재원 가는 제안 받고 입사한 거잖아요. 아무튼 부러워요.”
주재원이고 나발이고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 와중에 미국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될 까. 아내가 상간남과 했던 카톡 내용이 떠올랐다.
[여보가 내년에 퇴사할 거라고 한 게, 남편 주재원 나가는 것 때문이었구나. 펜팔친구라고 하고 나중에 놀러갈 게.]상간남의 카톡에 아내는 [펜팔친구랑 뽀뽀하니 너는?]이라고 답했고 상간남은 [뽀뽀보다 더 한 거 할 건데?] 라는 답장을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아내도 나도 서로에게 여보라고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호칭은 자기였다. 여보는 뭐랄까 조금 더 나이들면, 중년 정도?에 사용하는 단어 같아서 미루고 있었다.
아내가 여행지에서 돌아오기 전, 영상통화 때 내가 울어버려서 아내는 눈치를 챘는지 아이패드에서 로그아웃 해버렸고 그 후의 대화는 알지 못한다. 당시 내가 본 내용에서는 미국으로 가기 전 유한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함께하자고, 연말에 2박 3일 펜션으로 여행 갈 계획도 짜둔 것을 보았다.
“다음 주에 공장에 출장 가시죠? 저희 팀도 같이 가래요.”
주재원 시행세칙상 첫 3개월은 단신 부임을 해야 한다. 업무에 적응하고, 집을 구하고 하는 시간이 필요해서인지 가족은 3개월 후에 부를 수 있었다. 물론 필요한 비자프로세스는 나와 동시에 진행하고 그 3개월 동안 집을 어떻게 할 지 정리하고 아내가 필요한 이사짐을 보내고 하는 기간으로 이미 아내와 어떻게 할 지 상의를 했었다. 만약 내가 이 상태에서 주재원 3개월 나간다면 아내와 상간남은 다시 불붙을 것이 뻔했다. 안 가고 싶다.
“저희 법인차 나눠 타야 하는데 저랑 주임님이랑 픽업 좀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저희가 아침 일찍 회사로 올게요. 회사에서 출발해도 되니까.”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지, 아내를 그 기간동안 처갓집에 들어가 살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안만나겠다고도 했고. 외국에서는 가족밖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 다시 부부관계가 좋아지지 않을까? 아니 이혼할 생각인데 뭐가 중요하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같이 살아? 근데 아들이 미국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 받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귀면서 영어를 익힐 것을 생각하면 또 아이 미래를 생각해서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초 단위로 심경이 변한다.
“과장님? 과장님??”
옆에 앉아있던 주임님이 팔을 툭툭쳤다.
“네??”
“픽업이요 픽업. 픽업해주세요.”
“아, 네. 그래요.”
흘려들었던 말을 다시 주워 대답했다. 이 와중에 또 집을 비우고 공장 내려가야 하다니. 내 직업이 원망스럽다. 오늘 밤 대체 아내는 어떤 말을 할 까. 그리고 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것 밖에 머릿속에 없었다.
지잉-
[결정 하셨어요?]
변호사에게서 온 문자다. 아, 오늘까지 답을 주기로 했었지.
[둘 다 진행해주세요.]
아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혹시라도 내가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이혼소는 중간에 취소하면 된다. 하지만 상간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할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 초안 작성했던 것을 보냈다. 이혼소, 상간소를 신청한 경위에 대해 보냈고 변호사가 이걸 바탕으로 다듬어서 내게 보내주어 내가 컨펌하면 변호사가 제출한다. 어차피 한 번에는 안 끝난다고 하니 첫 소장에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내가 증거가 없다고 생각해서 반박을 하면 하나씩 패를 까면서 얼마나 두 남녀가 얼마나 뻔뻔하게 거짓말하는지 까발리면서 민 낮을 드러내게 할 생각이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주방으로 이동했다.
“준비됐으면 얘기해.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들을 게.”
아내는 수첩에 무얼 잔뜩 써왔고 그걸 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게.. 한 개인데 두 개 같은 거거든.”
첫 문장부터 느낌이 싸하다.
“유지하는 거.”
뭐를? 부부 관계를 아니면 상간남과의 관계를?